갑질·도촬 등 '인격권 침해' 분쟁 급증.. 소유권·채권과 대등하게 인정

이해완 기자 입력 2022. 4. 12. 10:40 수정 2022. 4. 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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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유종 기자

■ 10문10답 - 법무부, ‘인격권’ 명문화 추진

사전에 피해 방지 ‘예방청구권’ 명시… 재산손해 없어도 손배청구 가능

학폭 등 유형 다양화되면서

‘법적 보호’ 사회인식 보편화

2004·2014년 입법화 무산

그동안 판례로만 인정돼 와

법안 하반기 국회 제출키로

64년만에 정식 명문화 눈앞

오스트리아·스위스 등 도입

‘법인도 인격권 주체’등 규정

침해여부 입증·배상규모 쟁점

소송늘면서 배상액은 커질 듯

법무부가 그동안 판례로만 제한적으로 인정되던 인격권 및 인권 침해 배제·예방청구권을 명문화하는 민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지난 5일 입법예고 했다. 관련 입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64년 만에 인격권이 기본법인 민법에 정식으로 도입된다. 불법녹음 촬영, 직장 내 갑질, 학교폭력, 온라인 폭력, 가짜뉴스 유포, 디지털 성범죄,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종류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가 다양한 국면에서 발생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급증하고 있어 이뤄진 후속 조치다.

인격권이 민법에 들어오면, 재산상 손해를 입지 않았어도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지난 1월 한 방송사에 통화 녹음파일 등을 제공한 인터넷 언론사 관계자들에 대해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여사는 소장에서 “피고들의 불법적인 녹음 행위와 법원의 가처분 결정 취지를 무시한 방송으로 인격권과 명예권, 프라이버시권, 음성권을 중대하게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언급된 ‘인격권’은 현행 민법에는 명문화돼 있지 않다.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래 인격권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적은 없다. 개별 사건에 대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 등을 통해 그 실체가 인정됐을 뿐이다. 인격권 관련 분쟁은 주로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형사 처분을 받는 방식으로 해결돼왔는데, 형법상 죄에 해당하지 않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지 않으면 위법한 행위로 피해를 본 개인이 구제받을 방법은 제한 적이었다. 인격권이 명문화되면 기존보다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권 침해로 인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전망이다.

1. 인격권

인격권이란 사람이 자신의 생명, 신체,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등과 같은 인격적 이익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말한다. 인격권은 ‘일반적 인격권’과 ‘개별적 인격권’으로 구분된다. 일반적 인격권은 인간이 지니는 인격적 이익의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권리이며, 개별적 인격권은 일반적 인격권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권리를 말한다. 개별적 인격권에는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등에 관한 권리를 비롯해 자신의 인격적 품위와 사회적인 평가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인 명예권,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성명이 부당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성명권, 자신의 얼굴이나 모습이 타인에 의하여 사용되지 않을 권리인 초상권, 사적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사생활권 등이 있다. 기존의 민법 체계가 소유권과 채권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대등한 권리로 인격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저해하고, 심각하고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등 개인에게 전인격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로 인해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재산 침해 외에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도 법적으로 위법한 행위이며, 인격적 이익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보편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2. 신설되는 민법 제3조의2

법무부는 민법 개정안에 제3조의2 조항을 신설하고 ①항에는 “사람은 생명·신체·건강·자유·명예·사생활·성명·초상·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②항에 “사람은 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침해를 배제하고 침해된 이익을 회복하는 데 적당한 조치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고, 침해할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그 예방이나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나 불법촬영 및 녹음, 가짜뉴스 유포, 개인정보 유출 등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가 다변화 및 심화하고, 이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증가하면서 인격적 이익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법령 개선 필요성이 주목받아 왔다. 인격권은 1100개가 넘는 민법 조항 가운데 앞쪽에 추가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3. 인격권 침해 예방청구권

법무부는 과거 민법상 인격권을 정의하는 내용의 입법 때와 달리, 이번 입법예고에서 처음으로 인격권 침해 예방청구권을 개정안에 명시했다. 앞서 법무부는 예방청구권 대신 금지청구권을 준비한 바 있다.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사후적 손해배상청구권만으로는 권리 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법무부는 민법 제3조의2 ②항을 신설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인격권 침해의 중지를 청구하거나 필요할 때 사전적으로 그 침해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예컨대 당사자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편집된 영상 등도 인격권 침해가 우려된다면 사전에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언론 보도를 예로 들면) 보도 않기로 한 사적 이야기를 녹음하고 그걸 보도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을 때 예방청구권을, 직장 내 부당한 일이 진행될 기미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걸 담보하게 하는 그러한 예방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 재산권처럼 보호한다는데 기존 손해배상과 차이는

그동안 재산권에 대한 손해 중심으로 배상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법무부는 기본법인 민법에 인격권 정식 명문화를 통해 기존 손해배상 범위나 배상액 크기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인격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에서 피해보상이 쉬워지고 배상액도 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이제 정신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때 인격권이 침해됐고 이로 인해 정신적 손해배상이 있다는 논리 구조가 성립된다”며 “이러한 점은 판례나 학설로 구체화할 것이고, 지금도 인격권 관련 판례가 있지만, 분야가 넓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소송이 많아지고 판례도 많아지면서 배상액에서도 장기적으로 액수가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5. 향후 입법 절차

법무부는 지난 5일부터 입법예고 기간 40일을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 기간 관계 부처 의견 또한 제출받을 예정이다. 이후 차관·국무회의를 거쳐 올해 하반기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것이 법무부의 계획이다. 법무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6. 2004년과 2014년 명문화 추진은 왜 안 됐나

법무부는 1999년 법조계와 학계 전문가로 이뤄진 민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 5년이 넘는 작업을 거친 끝에 인격권 명문화 등을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를 2004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민이나 국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법무부는 2009년 기존 분과위원회보다 규모를 대폭 확대한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했다. 민법개정위원회는 5년간 논의 끝에 2014년 인격권을 명문으로 규정하는 개정안을 마련할 것을 다시 제안했다. 다만, 당시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지는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에 인격권을 다시 민법에 명문화해 입법예고한 것은 불법녹음·촬영,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사이버상 인격 침해 등 인격권 침해 유형이 다양화되고 국민의 관심도도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법안을 보완해 정부입법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7. 법인도 인격권 주체가 되나

법무부 개정안은 사람이 아닌 법인도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이 만들어지면 인터넷 게시물 등으로 법인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 더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다만, 이 경우 법인의 인격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기업을 상대로 한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비판 등을 광범위하게 ‘법인의 인격권 침해’라고 주장할 수 있어 기업에 대한 감시 기능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법무부는 “판례상으로 법인도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아주 높은 경우, 허위광고·허위기사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구성할 수 있고, 이를 전제로 근거조항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8. 해외 사례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등은 일반적인 인격권을 법에 규정하고 있다. 실례로 오스트리아는 민법에 일반적 인격권 및 금지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2020년 12월 민법 개정을 통해 직장에서 고용인에 의해 피고용인이 그의 평판 및 사적 영역이 침해당했을 때 이에 대한 금지를 요청하거나 위법 상태를 제거할 것을 청구하는 권리를 명문화했다. 오스트리아는 민법상 인격권이 도입됐기에 이를 근거로 소송을 통한 구제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례는 CCTV 촬영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라고 한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국민의 백신 접종 의무와 관련한 사안이 인격권 문제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독일과 일본 등은 판례를 통해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다. 독일은 19세기 중반부터 민법에 일반적 인격권 규정을 두는 시도를 계속했다. 하지만 형법상 명예보호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돼 결과적으로 민법상 규정으로 명문화하는 데 실패했다. 다만 독일은 민법 총칙에서 성명권을 규정하고, 불법행위 부분에서 신용 등 기타 개별적 인격권을 규정하고 있다. 개인의 명예는 형법에 근거한 모욕죄·명예훼손죄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이미지의 불법적인 유포로부터의 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예술저작권법도 별도로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민법상 일반적 인격권을 규정하는 것보다 판례를 통해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도 상당한 이점을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법률은 현실과 틈이 있고, 경직된 측면이 있어 유연성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9. 소송 남발 가능성

인격권의 적용 범위가 기존보다 확대될 경우 인격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함에 따라 관련 소송도 늘어날 수 있다. 이와 관련 법무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소송을 무분별하게 제기한다는 의미의 ‘남소(濫訴)’에 이를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법 개정안 제3조의2 ②항에선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을 규정한 만큼, 신속하고 적절한 민사적 구제의 길이 확대돼 인격권 침해 행위에 대한 고소·고발 의존도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인격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지면 인격권 침해 입증, 인정되는 배상 규모 등이 법적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법무부는 “인격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손해와 이에 대한 손해배상 등의 문제는 앞으로 판례나 학설로 구체화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신적 피해를 기준으로 인격에 위법한 침해가 있었는지를 따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인격권 개념이 법에 명시돼 있지 않던 과거에도 법원은 인격적 피해가 인정되면 위자료 지급을 명령해 왔다. 그간 쌓인 판례가 있어 인격권 도입으로 인한 혼선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0. 인격권 신설한 법무부 법무자문위원회(미래시민법포럼)

이번 개정안은 법무부 장관의 자문기구인 법무부 법무자문위원회(미래시민법포럼) 인격권분과위원회에서 논의해 제안된 법안을 기초로 마련된 것이다. 법무자문위원회는 1972년 대통령령에 따라 설치된 법무부 내 가장 오래된 위원회이다. 미래시민법포럼은 미래 시민사회를 위한 기본법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법률가,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2021년 10월 새롭게 출범한 법무자문위원회에 특별히 부여된 명칭이다. 현재 법무자문위원회에는 22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며, 법률가 10명, 과학계 4명, 산업계 3명, 경제·미래·사회·철학·교육학 전문가 각각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해완·윤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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