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 핀 육영수 생가..정지용·미주의 옥천 러블리 봄

2022. 4. 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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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육영수가 나고 자란 옥천 교동 저수지옆 구읍벚꽃길에 벚꽃이 절정기를 맞고 있다.
옥천 구읍 교동의 육영수생가의 연당마루 옆엔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자목련이 한창이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옥천 교동 내 600m 거리에 살던 02년생 정지용과 25년생 육영수는 한 마을에서 만날 일이 없었다. 육영수가 한창 클 때, 정지용은 모교인 휘문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였고, 최고 권위의 ‘문장’지 추천위원으로서 후진 발굴의 소명까지 맡던 때였다.

공통점은 둘 다 교육자였다는 것. 정지용이 이화여대 교수로 출강할 무렵, 육영수는 배화여고를 졸업한뒤 고향 옥천여중 교사로 부임했다. 정지용은 1950년 가을 퇴각하던 북한군에 납치된 지 얼마 후 폭격으로 숨졌기 때문에, 그해 겨울, 군인 박정희와 육영수가 결혼했다는 사실도 알 턱이 없다.

▶실개천 동네 선후배 정지용-육영수= 그러나 교동 마을의 실개천은 온 국민이 기억하는 두 동네 선후배를 이어준다.

교동저수지에서 나온 물이 실개천을 휘돌아 나가기 전, 또 한 가닥의 실개천이 옥천 교동리 ‘앞뜰’에서 흘러 정지용 생가터 옆에서 합류한뒤 금강을 향해 나아간다. 3정승이 났다는 교동집 앞 연꽃습지가 ‘앞뜰’이다.

전방의 장병들을 격려하는 육영수.
친정어머니 회갑 기념촬영. 육영수와 딸 박근혜가 오른쪽 두번째에 나란히 있다.

대나무밭. 후원, 과수원을 등에 지고 있는 배산 임수의 교동집은 바로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집이다. 최근 사저로 돌아온 박근혜 전대통령의 어머니이다.

육 여사 생가는 멋부림의 채색이 없는 한옥 전각 사이로 4월 자목련과 벚꽃이 한창이다. 그녀가 목련을 사랑했기에 서울 필운동 배화 캠퍼스엔 목련관이 있다. 연못가 다실 연당사랑 마루에 앉아 고택의 평화로움을 맛본다. 연꽃이 피는 여름날엔, 동네사람들-여행자들이 모여 차(茶) 시음회를 연다.

이 집은 1600년대 김정승이 처음 지어 살고 이후, 송정승, 민정승 등 3정승이 살았던 곳이다.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씨 후손에게서 사들여 고쳐 지었다. 후원과 과수원을 합치면 2만6400㎡이고, 전각들이 놓인 구역의 대지 만 1만㎡이다.

육영수의 방

▶평화로운 연당사랑, 아담한 육영수의 방= 대문 안으로 들어선 직후 보이는 창고엔 새끼줄·소쿠리·바구니·갈퀴·마른 연근 등이 가지런하게 잘 정리돼 있다. 전각은 사랑채, 아래대문채, 연당사랑, 안채, 정자, 사당 등 11개이고 연자방앗간, 뒤주칸 따로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전통창호는 용(用)자, 아(亞)자, 완(卍)자 살창 등 대칭형 기하학 문양이 안정감을 준다. 사랑채를 돌아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가 연당사랑과 행랑을 거느린채 중심부에 안착해 있다.

육 여사의 방은 안채 앞쪽에선 보이지 않는다. 안채 뒷편 대숲 옆 두어평 되는 아주 작은 방이다. 도자기와 재봉틀, 다리미, 앉아 공부하는 책상, 이불 등이 있고,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늘 이웃이 있다)’, ‘중용지덕’ 교훈이 걸려 있다. 충북 최고 부잣집 딸 방 치곤 너무 작아 소박한 마음이 엿보인다.

사랑채엔 육 여사의 영정사진이, 개인 방에는 힘겨웠던 육-박 부부 사진이 놓여있고, 안채 외벽엔 생전의 활동 사진이 걸려있다. 추운날 전방에서 고생하는 사병들을 격려하는 모습, 친정어머니 환갑잔치에 박근혜(70)·근령(68) 두 딸과 함께 참석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육영수는 49세때 괴한의 총탄에 맞아 숱한 의혹을 남긴채 숨졌다. 대문밖 앞뜰은 4월 밭전(田)자 연못이지만, 7월부터 연꽃 바다가 된다.

얼룩배기 황소가 지키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된, 믿고 가는 K컬쳐 핫플레이스다.

▶얼룩배기 황소가 지키는 옥천 인문학= 앞뜰 끝, 넓은 들에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 들어섰다. 수천년 옥천 문화를 다채롭게 경험하는 체류형 인문학 놀이터이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믿고 가는, 전국 최강 가성비의 K컬쳐 핫플레이스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을 중심으로 옥천 구읍 도보여행길이 펼쳐진다. 육영수, 정지용 생가, 옥천향교, 옥주사마소, 교동저수지 구읍벚꽃길, 문화재가 된 죽향초교 옛교실 등으로 이어진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이 초교는 ▷독립운동가 김규흥 ▷정지용 ▷육영수를 배출했다. 이들 3인을 포함해 요즘 기준으로 옥천 출신 저명인사 ‘톱10’은 ▷우암 송시열 ▷요즘 가장 핫한 연예인 중 한명인 국민 웃음 제조기 아이돌 이미주(러블리즈) ▷시인 류시화 ▷언론인 송건호 ▷균형의 정치인 이용희 ▷배구월드스타 김세진 ▷쇼트트랙 전이경이다. 인물의 면면이 다채로운 것은 자연·인문 여행지를 모두 갖춘 옥천을 닮았다.

금강도 꽃후경. 옥천 봄향기는 구읍 벚꽃길 꽃구경부터다. 교동저수지에서 군북면 소정리까지 8㎞ 이어진 이 길은 중간 지점부터 금강 줄기가 보인다. 바람 불어 좋은 날, 꽃잎이 흩날리면 누가 걸어도 화보 주인공이다. 구읍 벚꽃길은 자전거 타기 좋은 향수 100리 길의 출발 구간이기도 하다.

정지용생가에 들어서면 명자나무꽃과 얼룩배기 황소 조형물이 반긴다.

▶황국신민서사비 밟고 초당으로= 아버지가 한약상을 하며 택택하게 살던 정지용의 집과 가산은 대홍수때 떠내려가면서 가난해지고 부모직업란도 농업으로 바뀐다. 초당인 생가는 1996년에 복원됐는데, 실개천을 건너는 다리는 일제시대, 모교인 죽향초등학교에 서 있던 황국신민서사비이다. 일제 잔재를 요즘 여행객들이 짓밟고 생가안으로 간다.

사립문을 열면 명자나무 붉은 꽃이 반기고, 두 채의 초가집 앞마당엔 또다시 얼룩배기 황소 조형물이 서있다. 방문은 늘 열어놓는다.

옥천은 자연·인문 관광지를 모두 갖추었다. 사진은 조헌 묘소 인근 화인산림욕장

정지용은 1920년대~1940년대에 활동했던 최고의 시인으로 신인 등용문인 ‘문장’ 추천위원을 하면서 윤동주,박목월,조지훈 등 후배들의 길을 터주었다. 복권 후 1989년부터 시작된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는 박두진,김광균,오탁번,유안진,정호승,김지하,도종환,나태주,신달자,김남조 등으로 쟁쟁하다.

입구의 밀랍인형이 실물 같아서 흠칫 놀라는 문학관에는 빛으로 지용의 시어를 관람객 손에 비춰주는 ‘손으로 받아 읽은 시’도 있다.

마음을 양식을 채우는 동안 배가 꺼져 있다면, 읍내 일미해장국의 해제비(해장수제비), 대박집의 청산 어탕국수, 금강올갱이의 올갱이국밥 등 옥천별미를 찾으면 되겠다.

해제비

▶조선의 교육특구 개척 조헌= 여행의 범위를 조금 넓히면 교육자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의 특별한 족적을 만난다. 보은현감때 옥천과 인연을 맺고 전인교육에 몰두하다 임란때 의병장이 되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한뒤 전사했다. 조헌 선생은 칠백의총에 묻히지 않고 옥천군 안남면에 안장돼 있다. 숨지기 전 율곡 이이의 제자였던 그는 옥천을 ‘조선의 교육특구’로 만든다.

옥천에는 국립대 성균관의 지방캠퍼스인 향교가 두 개(옥천·청산)나 있다. 전통문화체험관과 육영수생가 사이에 있는 옥천향교는 외삼문이 분리돼 있고, 까치발 위 공중에 떠있는 전각에 아궁이가 끼워져, 온기를 잘 분산하기 위해 기울어져 있는 게 이채롭다.

옥천 이지당

사립 대학으로는 창주·삼계·목담·쌍봉·덕봉서원 등 5곳이, 서당으로는 이지당·후율당·덕양서당·경율당·경현당·예곡정사 등 6곳 있었다. 조헌은 향교-서원에서의 강학과 토론은 물론 이지당·후율당 등 중등교육기관을 직접 경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과 정지용생가 사이에 있는 옥주사마소는 생원,진사시험 합격자들이 후진을 양성하고 정치를 논하던 석박사급 연구기관이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인 만큼 경제활성화, 자금융통, 빈민구제(의창) 기능까지 맡았다.

조헌 묘소

▶에코(Eco) 인문학= 안남면 조헌 선생의 묘소 입구는 민들레가 반긴다. 근엄한 공간인데 드넓은 잔디밭에 아이들이 놀기 참 좋다. 700명의 의병이 전사한 뒤 조헌 선생 동생이 형 시신을 업고 옥천에 묻었다고 한다. 4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자목련과 낙락장송들이 고귀한 자태로 묘소를 호위한다. 맞은편 언덕엔 그를 태웠던 말의 애마지묘도 있다.

인근 화인산림욕장은 아는 사람만 알던 에코여행의 보석이다. 하늘에서 보면 나뭇가지 뻗어나간 모습을 한 4㎞ 산책로는 연못에 반영된 청정숲 데칼코마니를 시작으로, 두 갈래 걷는 동안, 메타세쿼이아, 낙엽송, 잣, 두충, 구상, 편백, 참나무, 적송 등이 이어진다. 정홍용 씨가 고향 산에 수십년간 좋은 나무들을 심고 가꾸었다.

옥천 청성면의 독산 상춘정

동쪽 청성면 보청천의 섬, 독산 상춘정은 개나리에 둘러싸인채 벚꽃길의 호위를 받고 있어 한폭의 그림이다. 신하균·여진구·최성은의 드라마 ‘괴물’에 등장했던 어탕국수의 원조, 청산면 벽화거리와 천년탑이 멀지 않다.

옥천은 장쾌한 여행스테디셀러 ▷부소담악 ▷수생식물학습원 ▷둔주봉 한반도지형 ▷향수바람·호수길 ▷용암사일출 ▷장령산 외에도, 그때 그 사람, 그 시절 그 문학을 만나고 청정생태를 흡입할 아기자기한 인문·자연 콘텐츠를 많이 가졌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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