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다인종 국가 될 준비, 얼마나 하고 있나

입력 2022. 4. 7. 10:34 수정 2022. 4. 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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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생활치료센터 의료진과 간단한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의료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외국인 계절노동자 입국과 더불어 갑자기 늘어난 외국인 환자의 관리였다.

미국의 연구에서 사회 경제적 수준이 언어 능력과 치료 결과 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했던 것처럼, 한국의 보고서에서도 건강보험 가입같은 여러 요소들이 외국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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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건강보험료는 내고 있지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정승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여름 생활치료센터 의료진과 간단한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의료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외국인 계절노동자 입국과 더불어 갑자기 늘어난 외국인 환자의 관리였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기도 해봤지만 한계가 있었고, 다문화센터 통역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언어도 있었다. 마침 한국어에 능통한 환자에게 통역을 부탁했는데, 그 환자가 퇴소한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하였다. 외국인 환자가 동시에 여러 명 입소하면, 도저히 다른 일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라고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의료 이용에서 언어는 환자 본인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여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하고, 또 의료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여 향후 질환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한 소아 응급실에서는 부모의 "제한된 영어 능력"이 퇴원 후 소아 환자의 재내원에 어떤 영항을 미치는지 연구하였다.(☞ 바로 가기 : 제한된 영어 능력과 소아 응급실 재내원 증가의 연관성)

연구진들은 부모가 영어를 제1언어로 쓰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어, 부모의 "제한된 영어 능력"이 소아 환자의 응급실 퇴원 후 재내원, 특히 재내원하여 입원하는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분석결과는 연령, 인종과 민족, 질환의 중증도와 복잡성, 응급실 도착시간을 보정하였을 때, 부모가 제1언어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 재내원의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내원하여 응급실에서 퇴원하는 경우는 15% 더 높았고, 재내원하여 입원까지 했던 경우는 28% 더 높았다. 다만, 연구진이 보험 상태를 추가 보정한 경우에는 부모의 제한된 영어능력이 소아 환자의 재내원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들은 보험(사회 경제적 수준 지표)이 제한된 영어 능력과 재내원 사이의 관련 메카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 주민의 수가 총인구의 4.3%를 차지하는 한국에서도, 언어로 인한 의료이용 제한의 문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국내 이주민들 또한 "제한된 한국어 능력"으로 인한 의료 이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0년에 출간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8.2%의 응답자가 건강문제로 의료기관에서 진단, 검사 또는 치료가 필요하였으나 서비스를 받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바로 가기 : 서민건강연구소 2021년 3월 11일 자 연구보고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비용부담(54.1%)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서"라고 답한 사람도 27.9%나 되었다(복수 응답). 또한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의 비율이 60.6%로 내국인(68.2%)에 비하여 낮았는데, 그 중에서 건강검진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 사람은 79.8%에 불과하였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에 대해서도, 한국어 뉴스를 이해하지 못해 같은 나라사람들과 나누는 SNS를 통해 정보를 얻다 보니 잘못된 내용을 믿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연구에서 사회 경제적 수준이 언어 능력과 치료 결과 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했던 것처럼, 한국의 보고서에서도 건강보험 가입같은 여러 요소들이 외국인들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이주민에게 건강보험 당연가입을 적용하면서도 이에 대한 안내와 통번역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은, 부족한 한국어 언어 능력 때문에 많은 이주민들이 의료보장에서 배제되게 만드는 시작이었다.

지난 2월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 중이었던 베트남 출신 외국인이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감기 증상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몇 차례 병원 치료를 요청하였지만, 끝내 병원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외국인이 여러 불리한 여건 속에서 사망하였음에도, 이후 외국인 환자와 밀접접촉자의 관리에 대한 후속 대처와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2020년 11월 기준 약 215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고, 외국인 주민 자녀 수는 25만 명이 넘는다. OECD에서는 거주 외국인의 비율이 5% 이상인 경우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고 하니, 현재 이 비율이 4.3% 수준인 우리나라도 곧 국제 공인 다문화·다인종 국가가 될 예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문화·다인종 국가가 될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을까?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병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빨리 점검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freepik

*서지정보

- Portillo, EN, Stack, AM, Monuteaux, MC, Curt, A, Perron, C, Lee, LK. Association of limited English proficiency and increased pediatric emergency department revisits. Acad Emerg Med. 2021; 28: 1001– 1011.

[정승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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