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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전략’ 인터넷은행은 대출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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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신용점수가 700점대(KCB 기준·과거 4~5등급)인 직장인 A씨(36)는 지난 2월 급히 생활비가 필요해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로 300만원을 빌리려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지난해 10월 저축은행에서 전세자금에 보태려 2500만원을 이미 대출받은 것이 발목을 잡았다.

한 인터넷은행에서 연 14% 금리에 500만원을 겨우 빌릴 수 있었다. A씨는 “신용점수가 다소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한 시름 놨다”고 말했다.

올해들어 대출이 늘어난 인터넷 은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올해들어 대출이 늘어난 인터넷 은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올해 들어 인터넷은행의 대출액이 2조원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대출 잔액은 6조원 가까이 줄었다. 대출 금리가 치솟자 고신용자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한풀 꺾였지만, 중·저신용자가 인터넷은행으로 몰린 영향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3대 인터넷은행(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의 대출 잔액은 36조1439억원으로 지난해 말(33조4829억원)보다 2조6610억원(7.9%) 늘어났다. 토스뱅크 대출 잔액이 1분기 1조8000억원 늘었고, 케이뱅크는 7200억원, 카카오뱅크는 1037억원 늘었다.

이에 반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의 가계대출 잔액(703조1937억원)은 석 달 사이 5조8592억원 감소했다. 금리가 뛰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이 강화되며 고신용자의 대출 수요가 줄었다는 게 시중은행의 공통된 설명이다.

인터넷은행은 사업자 대출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달 처음으로 주담대 상품을 선보인 카카오뱅크는 시중은행보다 낮은 연 3%대 금리와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 등을 내걸었다. 토스뱅크도 지난달 비대면 개인사업자 대출인 ‘토스뱅크 사장님 대출’을 내놨다. 출시 한 달 만에 대출 규모는 1167억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 요구도 이유 중 하나다. 인터넷은행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목표치에 따르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올해 말까지 신용대출 잔액 가운데 중·저신용자 비율이 25%라야 한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토스뱅크는 42%가 중금리 대출 목표치다. 이에 따라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10월부터 고신용자 신용대출을 중단했고, 올해에도 중·저신용자에게만 신용대출을 내주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11월 중·저신용자의 대출 이자 한 달 치를 면제해주는 행사를 지난달 말까지로 연장했다.

신용등급 구간에 따라 일부 인터넷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싼 경우도 발생하며 ‘금리 매력’까지 생겼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 2월 3대 인터넷은행이 5~6등급에 내준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6.52~7.80%로, 국민은행(8.38%)보다 낮고, 신한은행(7.2%)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결과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 토스뱅크는 올해 1분기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잔액 기준)이 31.5%라고 5일 밝혔다. 지난해 말(23.9%)보다 7.6%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19~20%대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보다 2~3%포인트 늘 전망이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생계비나 생활비 위주의 중·저신용자 대출 수요가 많아 이들의 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위험 관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금리 대출 활성화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연체율이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대출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선 인터넷 은행도 신용도에 맞는 대출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선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실 수석연구원은 “올해 금융당국의 대출만기 유예나 이자상환 유예 등이 끝난 뒤에 금융권 전반의 부실률이 높아질 경우 인터넷은행의 (건전성)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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