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 포기한 대출 9000억, 저축銀 "부실 터질라" 속앓이

윤진호 기자 2022. 4.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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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대출 상환유예 끝나면
2금융권 위주로 금융불안 우려

배달업에 종사하는 3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생활비가 모자라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3000만원을 빌렸다. 석달 전부터는 다리를 다쳐 일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고 휴대폰 요금도 연체했다. 그는 연체 3개월이 넘으면 채권추심업체에서 빚 독촉을 당한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보고 차라리 개인회생 신청을 하는 게 나은지 고민 중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등에 대한 대출 상환 유예 조치가 여러 차례 연장되면서 2금융권을 중심으로 머잖은 미래에 부실(빚 상환 불가) 가능성이 큰 ‘위험한 대출’이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오는 9월 대출 상환 유예 조치가 끝날 경우 대규모 대출 부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금융권 대출은 2020년 초 314조8000억원에서 지난 1월 350조6000억원으로 2년 만에 35조원 넘게 늘어났다.

그래픽=송윤혜

◇못 받을 대출 연체, 회수 가능액 앞질러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대출 중 연체 기간이 1년을 넘어 사실상 회수를 포기한 대출(추정 손실)이 지난해 말 기준 8948억원에 달했다. 이런 추정손실 규모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말(6429억원)과 비교하면 39% 늘었다. 연체 기간이 3~12개월이면서 부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회수 의문’ 대출도 같은 기간 32% 늘어 1조2960억원을 기록했다. 연체 기간이 길어서 떼일 가능성이 큰 대출이 특히 많이 불어나 ‘연체의 질(質)’이 나빠졌다는 뜻이다.

연체된 대출 중 그나마 돌려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대출은 오히려 줄었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중 주택 같은 담보가 있어 어느 정도 회수가 가능한 대출은 2019년 1조4361억원에서 지난해 말 1조1898억원으로 17% 감소했다. 떼일 가능성이 큰 대출 연체액(1조9389억원, 추정 손실 및 회수 의문 대출 합)이 회수 가능성이 있는 대출보다 훨씬 많아진 것이다.

저축은행의 ‘못 받을 대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코로나발(發) 경기 부진이 길어지면서 은행 고객보다 신용도가 낮은 2금융권 대출자들의 장기 연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자영업 경기 악화로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를 잃었거나 가게 문을 닫은 소상공인이 지난해 말까지 계속 증가했다. 경기가 확실하게 반등하지 않는 이상 연체된 대출 중 상당 부분은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처 중”이라고 했다.

◇자영업 대출 손실 불가피…인수위 “배드뱅크 검토”

정부는 지난달 코로나 방역을 위한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의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오는 9월까지 연장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네 번째 연장 조치다. 지난 1월말 기준 만기가 연장되고 있는 대출은 116조6000억원, 원금 상환 유예는 11조7000억원, 이자 상환 유예는 5조원 규모다.

게다가 저축은행의 대출 연체액에는 자영업자 상환 유예분이 포함되지 않았다. 만일 오는 9월 유예 조치가 끝나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부실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2금융권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자영업자 대출 상환 유예 연장을 발표하며 금융회사에 “유예 조치가 끝나고 나서도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과도한 상환 부담을 안거나 금융접근성이 일시에 낮아지지 않도록 대출 연착륙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금융당국과 은행 등은 유예된 대출을 긴 기간에 나누어 갚도록 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들은 코로나 사태 때 연장된 대출 중 상당 부분은 회수를 못 할 것으로 보고 대손충당금(대출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아 놓는 적립금)을 추가로 쌓으며 대처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적잖은 자영업자가 대출을 갚지 않은 상태로 가게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된다. 어느 정도 손실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코로나로 손해를 본 자영업자의 금융지원을 위해 이른바 ‘배드뱅크(bad bank, 부실채권 전담 은행)’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드뱅크는 부실 자산 및 채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을 뜻한다. 은행 등이 자영업자의 부실 대출 채권을 배드뱅크에 팔면, 배드뱅크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해 대출을 재조정해 연착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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