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소쟈긔? 두고보자"..판도라 상자 열리자 눈물 쏟은 그들

석경민 2022. 4.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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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싸이월드'를 키워드로 한 게시물만 약 12만개가 있다. 2일 서비스 재오픈 이후 최소 1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인스타그램 캡처

“흑역사 지우러 들어갔다가, 그때 그 감성에 코끝이 찡해졌네요.”
임모(28)씨는 지난 2일 싸이월드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자신의 미니홈피를 찾았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당시의 게시물을 지우기 위해서다. 임씨는 “막상 미니홈피에 들어가니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의 일촌명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당시 그리움에 눈물도 흘리며 주책을 부렸다”며 소회를 말했다.

지난 2일 싸이월드가 운영을 재개하자 임씨처럼 과거의 향수에 젖는 방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3일 싸이월드 운영사에 따르면 싸이월드는 이날 한국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순위 1위로 집계됐다. 앞서 ‘포켓몬빵’ 품귀 현상에 이어 다시 한번 밀레니얼 세대의 ‘레트로’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SNS 원조 격…제한적 서비스에도 ‘인증샷’ 열풍


싸이월드는 2000년대 전국적으로 유행한 국내 SNS의 원조 격이다. 그러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다국적 기업 SNS의 활성화로 인기가 떨어져 2020년 폐업 위기까지 몰렸다. 하지만 2021년 싸이월드를 인수한 싸이월드제트가 이용자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데이터 이관에 합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원 과정이 시작됐다.

싸이월드 운영자 측은 지난 1년여간 수차례 재출시 시기를 연기한 끝에 지난 2일 싸이월드를 재오픈했다. 현재 미니룸, 일촌맺기, 파도타기 등 일부 서비스에 대해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싸이월드 운영사 측에 따르면 사용자들이 가장 원하는 사진첩은 이달 중순 이후에나 복원될 예정이다.

싸이월드는 2일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사용자가 가장 기다리던 사진첩 등은 아직 복원하지 않았다. 싸이월드 측은 이달 중순 이후 복원이 완료될 것이라고 전했다. 싸이월드 캡처

이런 불완전한 재개에도 당시 싸이월드를 즐겼던 밀레니얼 세대들은 “흑역사이든 추억이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면서 환영했다. 인스타그램에는 2일 이후 ‘싸이월드’ 키워드로 올라온 게시물만 수천개에 달한다. 맘 카페나 블라인드 등 20대 후반에서 40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도 싸이월드 게시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일 싸이월드를 다시 찾은 유아린(27)씨는 “과거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냈는지 궁금해 로그인하게 됐다”며 “살펴보니 흑역사가 70이라면 추억이 30 정도지만, 추억이 흑역사를 이겨낼 만큼 더 깊다”고 말했다. 김나윤(33)씨도 “대학 시절 한창때의 추억이나 사진 등이 너무 그리워 지난해 몇 차례나 로그인을 시도했다가 오늘에서야 소식을 듣고 방문했다”며 “주변에서 온통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커뮤니티의 이용자는 “신랑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었는데, ‘완소쟈긔’ 전여친을 발견했다. 두고 보자”며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싸이 감성’이 뭐길래


그들은 ‘오픈런’ 하듯 싸이월드를 찾은 이유에 대해 ‘싸이(월드)감성’을 꼽았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싸이감성이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거나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용자가 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싸이월드 인증샷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유씨는 “싸이감성은 ‘촌스럽지만 순수한 네트워크’와 같은 느낌인 거 같다”며 “싸이월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유행했다. 오프라인으로 친했던 사람들 위주로 소통을 해서 더 순수하고 날 것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김나윤씨는 “지금 SNS는 이용자마다 개성이 강하다. 당시에는 비슷한 연령대와 집단에는 유행하는 노래나 사진 등이 동일했다. 그게 당시 이용자들 모두가 공감하는 감성을 만든 거 같다”고 말했다.

싸이월드 활동을 다시 시작한 이두환(40)씨는 “당시는 지금처럼 온라인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잘못된 글 하나와 사진이 언제든 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게 되는데, 당시는 그런 인식이 훨씬 약해 ‘싸이감성’이 생겼던 거 같다”고 했다.


“레트로 열풍…반짝으로 끝날 수도”


전문가들은 싸이월드 열풍 원인에 대해 ‘레트로’ 열풍에 주목했다. 장덕현 문화평론가는 “싸이월드 감성과 같은 복고 열풍이 유행의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과거 것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트렌드와 맞는 면이 있어야 한다”며 “지금 젊은 세대는 디지털 세계에서도 자기만의 공간과 표현을 중요시한다. 미니룸 디자인이나 음악처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요인이 맞닿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는 특히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와 맥락이 있는 복고인 싸이월드는 획기적인 아이템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수차례나 재오픈에 실패했던 싸이월드가 지속적인 인기를 누릴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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