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젊은 층 외면받는 프로야구, 팬 퍼스트로 반전 꾀해야"

김상윤 기자 2022. 4.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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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 최초로 프로야구 수장 맡은 허구연 KBO 신임 총재
"프로가 도덕성 못 갖추면 팬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지난 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2시즌 프로야구 공식 개막전. 어린이 팬 두 명이 개막을 선언하고 시구와 시타를 했다. 지금까지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개막을 선언해오던 관례를 깼다. 지난달 29일 취임한 허구연 신임 KBO 총재는 이날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어린이 팬이 던진 공을 받았다.

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총재실에서 만난 허구연 KBO 신임 총재는“난 야구인이지만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라며“정치인·기업인 출신 총재들이 하기 어려웠던 일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지금 프로야구는 9회말 1사 만루 최대 위기에 빠졌다. ‘팬 퍼스트’를 앞세워 야구 인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개막전 전날 오후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 총재실에서 본지와 만난 허구연 총재는 “총재라고 폼 잡지 않고 항상 ‘팬 퍼스트’로 간다는 의미에서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며 “한국시리즈 시상식도 팬 위주로 확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즌 중 야구장 관중석에서 팬들과 경기를 같이 보며 이것저것 물어보겠다”며 “총재 산하 MZ세대위원회(가칭)도 이달 중 발족할 예정”이라고 했다.

올해 40주년을 맞은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떨어져 간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조사에서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31%에 그쳤다.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20대 젊은 층의 관심도가 2013년 44%에서 2022년 18%로 떨어졌다. 그동안 정치인과 기업인이 맡던 KBO 수장 자리를 맡은 허 총재는 “프로야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팬들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야구는 지금 비상사태… 올해 반전 이뤄내야

-취임 일성으로 “난 9회말 1사 만루에 등판한 구원투수”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직접 해설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 때 9회말 1사 만루 위기와 같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관중이 없었다.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있었고, 국제대회 성적도 안 좋았다. MZ세대는 야구와 멀어지고 있는데, 구단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이다. 이런 게 복합적으로 현재 위기를 만들어냈다. 팬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는 올해 반전을 꾀하지 못하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실제로 “요즘 야구 누가 보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정점을 찍고 하락세인데, 이거 대비 안 하면 우리는 정말 큰일 난다’는 얘기를 했다. 2017년 이룬 840만 관중도 사실 144경기 체제에 야구장이 커져서 달성한 거다. 인프라 덕분인데 야구계는 그걸 착각하고 자아도취에 빠졌다. 지금은 종목별 고정 팬이 그리 많지 않고 흐름에 따라 옮겨간다. 여자 배구가 도쿄올림픽에서 4위를 하고 시청률 1위를 했다. 축구에선 손흥민의 골이 터질 때마다 환호한다. 강백호(KT)가 작년 시즌 중 4할을 쳤을 때 오히려 큰 좌절감을 느꼈다. 외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텐데 우린 화제가 별로 안 됐다. 야구를 별로 안 좋아하는 분들도 ‘아, 쟤가 강백호구나’, 이래야 한다. 우리만의 리그가 돼선 안 된다.”

허구연(가운데 파란색 상의) 총재가 2일 창원에서 열린 2022 KBO 리그 공식 개막전에 어린이 팬과 함께 참석한 모습. 허 총재는 이날 관례를 깨고 어린이 팬에게 개막 선언과 시구를 맡기고, 자신은 홈플레이트 뒤에서 시구자의 공을 받았다. /허상욱 스포츠조선 기자

◇윤리·공정 없으면 우린 끝

-음주 운전, 승부 조작, 성범죄, 약물 복용 등 ‘4불(不)’을 금지 사항으로 지켜달라고 했다.

“젊은 세대가 요즘 굉장히 어렵지 않은가. 비슷한 또래 야구 선수가 거액 연봉을 받는 것만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클 텐데, 사고까지 치면 어떻게 납득하겠나. ‘쟤네는 뭐 하는 애들이냐’ 소리가 나온다. 프로 선수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팬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국내 프로스포츠 맏형인 야구가 선도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음주 운전은 더욱 그렇다. 음주 운전은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면허 정지, 취소 등 처벌을 받는다. 별도 상벌위 없이 이런 법적 조치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자동으로 내리는 방안도 고민해볼 만하다.”

-키움 히어로즈가 음주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강정호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임 총재가 과감히 결단 내리는 모습을 기대한다.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하겠지만 총재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KBO에서 ‘이 문제는 종전과 다르다’고 판단해 신임 총재가 올 때까지 승인을 보류한 건 굉장히 잘했다고 본다. MLB는 몇 년 전 구단 사장이 공공장소에서 부부싸움을 했다는 이유로 커미셔너(총재)가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프로스포츠계는 일반 법의 잣대로만 보면 안 되고 더 윤리적으로 가야 한다. 리그 명예를 훼손하는 건 총재가 그냥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도쿄올림픽 대표팀의 ‘노 메달’ 부진이 사그라지는 야구 인기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말이 나온다.

“야구 대표팀은 ‘병역 면제 대표팀’이란 인식이 강하다. 2018년 아시안게임 때는 전원 프로 선수였다. 그러니 팬들이 ‘약팀 상대하며 병역 면제받으러 가는구나’ 한다. 더욱이 옛날에는 우승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선발 과정이 투명하지 않으면 팬이 가만있지 않는다. 9월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있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에게 ‘선수 선발에서 다시 잡음이 나오면 이제 야구는 끝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총재 되기 전 해설위원일 때 염경엽 KBO 기술위원장에게 ‘아마추어도 뽑으라’고 했다. 인도네시아·홍콩 상대로 우리 대학 선수들이 못 이기겠는가.”

◇야구인이지만 야구만 아는 사람 아냐

-야구계에 50년 넘게 몸담으며 선수와 감독, 해설위원을 거쳐 총재 자리까지 올랐다. 예전부터 총재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올 시즌을 앞두고 KBO 이사회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설로 시작해서 해설로 끝내려 했는데, 이걸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한국 야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구단들이 원하니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야구 인생 항로를 바꿨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고별 방송도 하고 싶다. 나중 얘기겠지만, 팬들이 원하고 방송국이 원하면 총재 임기를 마치고 특별 해설로 나설 수도 있다.”

-야구인 출신이라 마케팅 등 야구 외적인 분야에는 약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동안 야구 해설만 하지는 않았다. KBO 야구발전위원장을 수년간 맡으며 대외협력 업무를 계속했다. 유영구 총재, 구본능 총재에게 인프라 관련 아이디어를 냈고, 그분들이 10구단 체제 초석을 다지고 완성하는 과정을 쭉 봤다. 또 KBO보단 작은 조직이지만 한 스포츠 정보 업체 대표이사를 30년 정도 했다. 조직을 관리하고 재무제표를 봤던 건 여기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야구밖에 모른다고 하는 건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법학 석사 학위는 그냥 땄겠는가.”

◇프로스포츠의 신발 속엔 압정이 있다

-프로야구 산업화도 꼭 풀어야 할 문제인데.

“윤석열 당선인이 불필요한 규제를 두고 ‘신발 속 돌멩이’라고 했다. 지금 프로스포츠의 신발 안에는 압정이 있다. 이를테면 2020년에 잠실구장 광고 수익금 172억원 중 서울시가 광고권 가치평가액 82억원을 포함해 127억원을 가져갔다. 나머지 45억원을 LG와 두산이 22억5000만원씩 나눠 가졌다. 심지어 구장 사용료 30억원은 각 구단이 15억원씩 별도로 낸다. 그러니 프로 구단이 매년 적자를 보는 거다. 오세훈 시장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시의회 쪽도 만나서 설득해야 한다. 이런 건 기업인이 총재가 되면 하기 어렵다. 자연인이 총재가 되니 할 수 있는 일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는 기업 홍보 가치가 있었다. 지금은 삼성이 야구를 잘한다고 휴대전화가 더 팔리지 않는다. 이제 하나의 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프로스포츠는 언젠가 껍데기만 프로일 뿐이다. 구장 광고권과 운영권 문제를 해결해야 산업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뉴미디어 중계권을 보유한 통신 3사와 포털 컨소시엄이 소셜미디어에 경기 영상 업로드를 제한한 것이 논란이다.

“중계 계약을 하면서 계약금을 많이 받는 건 좋다. 그런데 유튜브 쇼츠라든지, 소위 ‘움짤’ 이런 걸 막아버렸다. 소탐대실이다. 지금은 몇억원씩 더 가져갈지 모르지만, 우리가 가진 패를 다 버리는 거다. 현실적으로 계약 기간인 내년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완화하면 좋겠다. KBO 유튜브도 더 활성화할 것이다. 내가 직접 나가서 팬들 질문에 답하고, 심판위원들도 나와서 답해주고 이런 걸 해보자는 거다. 뉴미디어에서 뒤지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

-취임식에서 “지자체가 갑질하면 구단이 연고지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신구장 착공이 시장 예비후보들의 반발로 무산될 위기에 몰린 대전을 겨냥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잘못 전달됐다. 대전을 콕 집어서 얘기한 게 아니다. 어떤 지자체라도 프로스포츠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디까지나 구단이 가겠다는 의사가 있을 때 총재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대전구장 예산을 1600억원 가까이 확보했고 조감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치인들이) 반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1~2년 전에는 얘기를 해야 했다. 왜 이제 와서 이러는가. 일각에선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는데, 건설비 5000억~6000억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오히려 묻고 싶다.”

-남은 임기 2년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먼저 5년, 10년 단위 KBO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팬 퍼스트’가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대전구장과 잠실 MICE 개발, 부산 사직구장 신축 등 현안도 있다. 또 미국의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일본의 미야자키나 오키나와처럼 ‘남해안 벨트’를 조성하려 한다. 거기서 프로 2군이 봄·가을 캠프를 하고, 학생 선수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석열 당선인이 체육 정책 비중을 더 높였으면 한다.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우승팀을 초청해서 맥주 파티를 하는 거다. 야구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축구·농구·배구, 올림픽까지 다 해당된다. 이런 게 체육에 주는 힘이 굉장히 크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더 좋지 않겠는가.”

☞허구연

195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남고·고려대를 졸업했다. 1970년대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작년까지 MBC에서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해쓰요’(했어요), ‘베나구’(변화구), ‘슨슈’(선수) 등 특유의 경상도식 발음과 재밌는 해설로 인기를 끌었다.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규칙위원장, 야구발전위원장 등을 거쳤고 지난달 야구인 출신 최초로 KBO 총재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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