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중고차 시장 진출..레몬마켓 바꾸는 '메기' 될까

김경민, 나건웅 입력 2022. 3. 2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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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하면서 중고차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소비자의 중고차 선택폭이 넓어져 중고차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기존 중고차업계는 시장 파이를 뺏긴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중고차 시장에 완성차 대기업 진출이 허용됨에 따라 중고차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매경DB)

▶중고차 ‘생계형 적합업종’ 제외

▷현대차 등 완성차업계 ‘환영’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기존 중고차업체 매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소상공인 비중이 낮아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건인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부터 대기업 진출이 막힌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돼왔다. 2019년 보호 기간이 만료됐지만 중고차업계가 다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며 수년째 대기업 진출이 막힌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빗장이 풀리면서 완성차업계는 일제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소비자 권익 증대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 현대차는 최근 발표한 중고차 사업 계획을 통해 수입차 브랜드에만 허용됐던 ‘인증 중고차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인증 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를 설립해 정밀진단, 정비를 전담할 ‘상품화 조직’을 꾸리고, 자체 검수를 거쳐 신차 못지않은 중고차를 시장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중고차 판매 기준은 구입 후 5년, 주행 거리 10만㎞ 미만, 200여개 항목 품질 테스트 통과 차량 등으로 한정지었다. 이른바 ‘고품질’ 중고차만 취급하면서 기존 매매업자들과 차별화하겠다는 의미다. 중고차 시장의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해 통합정보 포털 ‘중고차연구소(가칭)’도 오픈할 계획이다. 소비자가 타던 차량을 매입하고 신차 구매 시 할인해주는 ‘보상판매’를 하는 등 기존 중고차업계에서 보기 어려웠던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기아도 올 초 전북 정읍시에 중고차 판매를 위한 자동차매매업 등록을 신청해 중고차 시장 진출 채비에 나섰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현대차그룹 신차 가격 상승효과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 매출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빗장을 풀어준 만큼 현대차, 기아뿐 아니라 쌍용차, 르노코리아 등 다른 완성차업체도 머지않아 중고차 시장이 뛰어들 것이다. 완성차 제조사 입장에서는 자사 차량 인증 중고차를 판매하면 재구매율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완성차업계 관계자 의견이다.

렌터카업체 움직임도 분주하다.

국내 1위 렌털업체인 롯데렌탈은 올 하반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롯데렌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서비스를 선보이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중고차 판매, 중개, 렌털뿐 아니라 인증, 사후 관리 등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승, 정비 체험 같은 오프라인 서비스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국내 중고차 시장점유율 10%를 확보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내놨다. 롯데렌탈이 치고 나가자 SK렌터카 등 다른 렌터카업체들도 중고차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중고차 변화 이끄는 ‘강소기업’

▷‘혁신 기술’ 스타트업도 릴레이 창업

정부가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면서 국내 중고차 시장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중고차 시장은 오랜 기간 ‘레몬마켓(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이라 불릴 정도로 품질이 떨어지고 허위 매물이 많아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가 넘쳐났다. 워낙 시장이 불투명한 탓에 ‘호갱’이 되기 일쑤라 중고차 대신 ‘안전한’ 신차를 찾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 제조사가 직접 인증하는 고품질 중고차가 늘면서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허위 매물과 불투명한 시장 가격 등 그간 중고차 시장이 갖고 있던 여러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부품 정비, 차량 구독 서비스 등 모빌리티 관련 사업도 덩달아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레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387만2321대(지난해 기준)로 신차 등록 대수(174만8979대)의 2배 수준이다. 미국, 유럽(EU) 등 선진국은 이미 신차 대비 중고차 시장이 3배에 달하는 만큼 여전히 중고차 시장 성장 여력이 크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유럽은 이미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을 주도하며 시장 파이를 키우고 소비자 신뢰를 높여온 만큼 우리도 선진국 수순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은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 소비자 신뢰도가 높아지고 거래 규모가 늘어나 시장 파이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기업 진출이 결정되기 전부터 국내 중고차 시장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IT와 플랫폼 기술을 활용한 여러 강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뛰어들며 존재감을 높이는 중이다. 중고차 시장에 부족한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저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크게 ‘직영 중고차 매매’와 ‘중고차 중개’로 나뉜다.

‘직영 중고차’는 말 그대로 회사가 직접 매입한 중고차를 검증·수리한 후 소비자에게 되파는 방식이다. 회사 이름을 걸고 팔기 때문에 허위 매물이 없고 책임 소재가 명확해 사후 수리나 지원을 받기도 좋다. 현대차가 추진 중인 ‘인증 중고차’ 사업도 여기 해당한다. 이에 비해 ‘중고차 중개’는 회사가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다. 회사가 딜러와 매물을 검증하는 데다, 사후 중고 차량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일정 부분 책임도 지는 덕분에 기존 중고차 거래보다 신뢰가 높다.

직영 중고차 시장에서는 ‘케이카’가 앞서 있다. 2017년 SK그룹이 중고차 사업에서 철수할 당시, SK엔카의 직영 부문을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케이카는 업계 최초로 ‘중고차 온라인 비대면 구매’ 서비스를 선보인 기업이다. 매장 방문 없이도 차량 선택부터 결제까지 할 수 있는 ‘내차사기 홈서비스’를 2015년부터 시작했다. 2021년 기준 케이카 전체 구매자 45%가 비대면 온라인으로 차량을 구입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이커머스 매출 증대에 힘입어 지난해 실적도 순항했다. 매출은 1조9024억원, 영업이익은 711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3.8%, 88.6% 성장했다.

2000년 방문 정비 서비스로 시작해 업력을 쌓아온 ‘오토플러스’도 직영 중고차 시장 강자로 꼽힌다. 2015년 현대캐피탈과 인증 중고차 제휴를 맺은 데 이어 2017년 사모펀드 VIG파트너스가 인수한 후 몸집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오토플러스는 국내 유일한 ‘중고차 상품화 공장’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 경기장 2배가 넘는 크기의 직영 중고차 공장 ‘ATC’에서 오토플러스가 매입한 중고차를 정비·수리한다. 여기서 통과한 중고차만 ‘리본카(Reborn Car)’라는 자체 브랜드를 달고 시장에 나오게 된다. 260가지 점검 항목을 통과한 중고차만 취급하는데 ‘냄새 테스트’까지 진행할 정도로 꼼꼼한 검사로 유명하다. 정밀 검사 결과는 온라인 스토어에 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리포트로 정리해 공개한다. 오토플러스 관계자는 “중고차의 모든 결함을 정비하는 것은 아니다. 자잘한 스크래치처럼 안전상 문제가 없는 수준에서는 어떤 부분을 어디까지 고칠지 소비자가 옵션으로 결정할 수 있어 가격 경쟁력도 높였다. 차량 선택부터 옵션 결정, 구매까지 온라인 비대면으로 원스톱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딜러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고차 중개 플랫폼 기업들도 성업 중이다.

‘엔카닷컴’이 대표적이다. 케이카와 마찬가지로 SK엔카가 모태다. 거래 규모는 업계에서 가장 크다. 월평균 12만대 실거래 매물을 보유했고 연간 거래 차량이 120만대에 달한다. 국내 전체 중고차 거래의 30%에 달하는 수치다. 거래가 많고 업력이 길다 보니 ‘빅데이터’ 면에서 강점을 갖는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시세 정보 서비스가 특히 호평받는다. 자동차 등급별 시세는 물론 차량의 상태와 클릭 수, 구매 문의 수 등을 토대로 시장의 경쟁 상황까지 분석해 중고차 시세와 잔존 가치를 평가한다.

각종 스타트업도 맹활약 중이다. 2015년 창업한 피알앤디컴퍼니는 ‘헤이딜러’는 스마트폰 앱을 통한 ‘내차팔기 서비스’에 힘입어 최근 누적 거래대금이 5조원을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앱에 차량 사진, 정보 등을 올려 딜러들로부터 견적을 받은 뒤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한 딜러에게 차량을 판매하면 된다. 인공지능(AI) 차량 이미지 인식 기술 등 최신 IT 기술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이 밖에 오프라인 차량 정비소와 제휴를 통해 중고차를 거래하는 ‘카몬스터’, 모바일 중고차 플랫폼 ‘첫차’를 운영하는 ‘미스터픽’, 차량 빅데이터를 수집해 사고·정비 이력과 예상 세금 수준을 알려주는 ‘카툴’도 중개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고차 중개 플랫폼 외에도 스타트업이 뛰어든 분야는 다양하다. ‘체카’는 중고차가 소비자에게 인도되기 전까지 인증과 상품화를 전담한다. 성능 점검은 물론 판금·도색, 휠·타이어 수리, 소모품 교환 등을 경기 수원에 위치한 통합인증센터 한 곳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한다. 중고차 입고부터 출고까지 스마트폰으로 차량 점검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체카는 품질을 보증한 중고차를 주차타워에 들여놓고 판매하는 ‘중고차 자판기’ 사업도 추진 중이다.

중고차 구매 시 정비사가 동행해 차량을 점검해주는 ‘카바조’, 스마트폰 사진 촬영으로 중고차 수리 비교 견적을 받아볼 수 있는 ‘카닥’, 중고차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더트라이브’도 각광받는 스타트업이다.

온라인 비대면으로 중고차를 판매하는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다. 오토플러스가 운영하는 ‘리본카’에서는 260가지 항목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신차 대비 현재 중고차 품질과 가격 수준을 보여준다. (오토플러스 제공) ​

▶중고차 시장 판도 어떻게 변할까

▷“독과점” vs “파이 커진다” 의견 갈려

중고차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브랜드 파워를 갖춘 대기업 인증 중고차가 인기를 끌면 상대적으로 영세 판매업자의 중고차 판매량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세 중고차 매매업체들은 대기업 완성차업체가 시장을 독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경매로 매물을 확보해 판매하는 중고차 시장에서, 자금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춘 대기업이 들어올 경우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이 자명하다는 판단이다. 중고차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 결국 소비자 후생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병규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 전남조합장은 “대기업의 독과점과 영세 종사자들의 몰락, 그리고 고객 피해가 우려된다. 신차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하는 현대차, 기아의 경우에는 고객에게 기존 차량을 자사에 팔도록 인센티브를 줄 여력도 있다. 이렇게 되면 독과점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고차업계 관계자도 “대기업 사업 모델과 정면충돌하는 ‘인증 중고차’ 시장은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기업이 양질의 중고차를 이른바 ‘싹쓸이’해 갈 경우 중소기업과 영세업체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차량만 남고,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 현대차도 자체 상생안을 마련한 상태다. 현대차는 인증 중고차 대상 외의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중고차업계에 공급하기로 했다. 시장점유율도 올해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로 제한하기로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를 비롯해 르노, 쌍용, 한국GM 등 완성차 5개사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했을 때 2026년 합산 점유율 전망치는 7.5~12.9% 수준이다. 5곳을 다 합쳐도 국내 1위 중고차업체인 케이카 점유율(4%)의 2~3배에 불과하다.

물론 걱정 어린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다’며 대기업 진출을 오히려 반기는 이도 적잖다. 중고차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지고 신뢰가 높아지면 스타트업들이 뛰어드는 ‘틈새’ 또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중고차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기업이 진출해도 당장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기존에도 케이카, 엔카닷컴 같은 대형업체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다. 대기업 진출로 이커머스·수리·정비·인증 등 중고차 연관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오히려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아직 더 커질 여력이 충분한 중고차 시장이 대기업 진출로 선진화되면 중고차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전체 파이도 커질 것이다. 대기업 시장 진입 비율을 제한하고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방안을 활용하면, 최근 문제 되는 영세업체와의 상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김경민 기자,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2호 (2022.03.30~2022.04.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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