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화성이주 꿈, 실현 가능할까?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2. 3. 18. 12: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기훈의 天地人]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③/③
우주 사업을 벌이고 있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왼쪽)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위키피디아

☞ ②/③편에서 계속

우주의 비밀을 알려주는 새로운 메신저에 대한 질문이 끝났다.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에게 우주 전체의 생성과 진화를 다루는 우주생태계 연구와 인류의 화성 이주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이슈 3 : 우주생태계 연구

—우주생태계(cosmic ecosystem)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다.

“138억년전 우주가 처음 생긴 직후에는 우주의 물질들이 거의 균질하게 퍼져 있었다. 거의 균질하다는 말은 아주 미세한 불균질성이 존재했었다는 말이다. 그 불균질한 물질의 분포가 이후 중력에 의해 모여들어 뭉치면서 지금과 같이 은하나 암흑물질이 마치 거미줄처럼 분포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또한 우리가 속한 은하수와 같은 개별 은하도 이러한 물질 불균일성이 중력 진화를 통해 점점 커가면서 다양한 모양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처럼 우주가 처음 생긴 뒤에 초기 물질들이 모여 별이 되고 은하를 이루면서 현재의 우주 형태로 발전된 과정을 일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우주생태계 연구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나? 사례를 들면?

“최근에는 가이아(Gaia) 위성이 별간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해 내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우리가 속한 우리 은하 내에서 원소의 조성, 예컨대 니켈의 분포가 비슷한 별들을 추려내 그 별들의 공간 분포와 운동 상태로부터, 예전에 함께 생겨나 같은 집단에 속했던 별들을 가려낼 수 있다.

그 별들은 우리 은하에 잡아먹힌 위성은하를 구성했던 별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지금은 잡아먹힌 위성은하의 화석을 찾는 셈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우리 은하가 다른 위성은하를 병합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병합되기 이전 위성운하의 위치와 모양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구에서 3억광년 떨어진 머리털자리 성좌에서 두 은하가 병합을 하고 있다. 2004년 촬영된 이 사진에서 두 은하는 긴 꼬리 때문에 '쥐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사례를 하나 더 들면?

“우리 은하의 중심에 태양 질량의 400만배가 되는 초거대 블랙홀이 있다. 망원경 1개당 건설비용이 1500억원에 달하는 하와이의 켁(Keck) 천문대에서 초거대 블랙홀 주변을 공전하고 있는 별들을 여럿 찾아냈다. 이 별들의 궤도를 가지고 그 초거대 블랙홀의 존재와 질량을 측정했다. 또 일반적으로 대형 은하들은 중심부에 이러한 초거대 블랙홀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블랙홀은 빛을 빨아들여서 볼 수가 없는데 존재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최근 세계 천문학자들이 공동작업으로 ‘사건의 지평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을 직접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또 그 블랙홀이 자전함도 확인했다. 천문학자들은 왜 큰 은하에는 이러한 초거대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그런 초거대 블랙홀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은하 전체 질량의 1000분의 1 밖에 안되는 이 초거대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형성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우주의 구성

—앞에서도 블랙홀 이야기가 간혹 나왔는데, 블랙홀이란 대체 무엇인가?

“스티븐 호킹 박사는 블랙홀에 대해 3가지 정보 밖에 없다고 했다. 질량, 스핀(회전운동량), 전하량이다. 돌지 않는 블랙홀은 질량 정보만 있다. 도는 블랙홀은 질량과 스핀이 있다. 전하를 갖고 있는 블랙홀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그는 블랙홀에 대해 질량, 스핀(회전운동량), 전하 등 3가지 정보 밖에 없다고 말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생태계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알아낸 성과는?

“원-에이(Ia)형 초신성이라고 부르는 특정 종류의 초신성은 최대 밝기가 모두 같다. 이 초신성들의 간격이 서로 멀어지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천문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은하의 3차원 분포와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종합한 결과 우리 우주에 우리가 아는 보통물질은 5% 뿐이고, 암흑물질(dark matter)이 27%,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68%를 차지함을 알게 됐다.”

폭발하면서 강한 빛을 내고 있는 원-에이(Ia) 초신성. 과학자들은 백색왜성이 주변 물질과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하나가 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아직 연구중인 사항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우주의 95%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분포했는지 잘 모르는 상태다. 물질의 양과 물리적 성질, 또 우주 시공간의 특성에 따라 물질 진화의 양상도 달라진다. 그래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 전체의 진화 과정을 알아내려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암흑물질이 블랙홀이 된 것인지, 별이 블랙홀이 되고 그 블랙홀이 병합되어 거대 블랙홀이 된 것인지 등등 아직도 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부지기수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밀하게 측정해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해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SKA, 직경 30m급 차세대 망원경, 베라 루빈 망원경 등이 완공되면 더 많은 정보를 줄 것으로 고대하고 있다.”

135억년 전 우주, 어떻게 측정?

—이번에 쏘아 올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우주론 연구에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우주 창생 후 3억년까지 본다. 우주가 138억년 전에 생성됐으니 지금보다 135억년 전의 현상을 본다는 것이다. 현재에서 점점 멀리 있는 우주의 빛을 보게 된다는 것은 점점 과거의 빛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초기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망원경으로 별이나 블랙홀이 처음 태어난 시점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도달한 빛이 1년 전에 생긴 빛인지, 135억년 전에 생긴 빛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적색이동(red shift) 현상으로 알 수 있다. 우주 공간이 팽창하므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만일 아주 멀리 있는 어떤 천체가 가시광을 방출했다면 팽창하는 우주 공간을 통과해 오면서 점점 그 빛의 파장이 길어지게 되어, 최종적으로 우리가 그 천체의 빛을 볼 때에는 파장이 긴 빛으로 보이게 된다. 이를 적색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빛은 그 진행속도가 유한하므로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우리 눈에 보이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즉,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오래전의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어떤 천체의 적색이동을 측정하면 그 천체가 우리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그 천체의 모습은 그 거리를 빛이 날아오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과거의 모습이 된다.”

천체가 관측자에게서 멀어지면 그 천체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면서 점점 붉어진다(적색이동). 반대로 천체가 가까워지면 점점 푸른색을 띠게 된다(청색이동). 이를 도플러 효과라고 한다./위키피디아

안 연구원이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였던 수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현재 우리 사무실에서 수소가 내는 라이만알파선 광자(photon)의 파장을 재면 121.567 nm(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이다. 그런데 적색이동이 되어서 그 파장이 10배인 1215.67 nm가 되면 적색이동이 9가 됐다고 말한다.

생성 초기에 뜨거웠던 우주가 3000℃ 정도로 식었을 때 양성자와 중성자가 합해지면서 중성수소가 생기고 빛이 발생했다. 이 때 나와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마이크로파로 관측되는 그 빛을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라고 한다. 그 빛의 적색이동은 1000쯤 된다.”

—우주론 연구를 하려면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 용량이 보통 많지 않을텐데.

“망원경이 커지고 검출장치의 성능이 좋아지고, 또한 넓은 영역에서 여러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는 등 관측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가 생산되게 됐다. 데이터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이 분석하려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AI(인공지능)가 필요하다. AI의 기계학습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

천문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들었다. 복잡하고 고단하고 외로운 이 연구의 일차적 목적은 우주의 이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인류가 다른 행성에 삶의 터전을 잡을 수 있을지, 다른 행성의 외계인과 교류를 하게 될지 여부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의 이론적 연구가 먼저 이뤄져야 그 바탕 위에서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창업자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로켓을 발사하며 우주 탐사에 나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 연구원에게 인류의 새로운 정착지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우주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또 있을 것이라고 보나?

“우주과학자들이 태양계 안에서 우리가 살만한 대체 행성을 찾고 있는데, 아직 지구만한 행성은 없다. 현재까지의 발견으로 보면 태양계 밖에서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일반적이고, 그 외계 행성 중에는 지구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것이 있다. 또 그 중에는 생명체가 발생할 몇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것도 있음을 확인했다. 거기에 진짜로 생명체가 있는지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등으로 확인하려 하고 있다.”

인류가 화성에서 살려면 대기가 지구와 달라서 우주복을 입고 생활해야 한다. 사진은 영화 '마션'의 한 장면./20세기 폭스

—화성은 어떤가? 인류의 새로운 정착지가 될 만한가?

“가까운 미래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기의 양이 지구보다 훨씬 적다. 화성에 산다면 항상 머리에 산소호흡기 헬멧을 쓰고 우주복을 입고 살아야 하는데 쉬울까? 땅 속에 들어가서 지하도시를 건설하는 방법은 통할지도 모르겠다.”

프록시마 센타우리

—화성 외의 다른 정착지는?

“사실 적극적으로 우주 개척에 나서는 사람은 외계 행성으로의 이동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센타우르스 별자리에 있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는 약 4.3광년이다. 거기에 아주 작은 탐사선을 보내 지구 같이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외계 행성계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행성 프록시마 센타우리 b의 상상도. 지구보다 좀 크다. 표면이 말라 있지만 물이 완전히 없지 않아 인류가 이주할 수도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유럽남방천문대

—4.3광년이면 빛의 속도로 4.3년을 가야 하는데 그 먼 거리를 탐사선이 어떻게 가나?

안 연구원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요만한 우주선에 빛을 반사하는 가벼운 돛을 달고 그 돛에 강력한 레이저 빛을 쏘아 가속을 하면 빛의 10분의 1 속도까지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43년이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43년간 그 먼거리를 이동하면서 사진 등을 보내려면 통신을 유지해야 하는데 가능한가?

“그것도 풀어야 할 기술적 과제이다.”

갈 길 먼 한국 천문학

안 연구원과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시간이 광속(光速)으로 지나갔다. 인터뷰 시작한지 3시간이 넘어 시계가 벌써 6시 10분을 지났는데도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회의실 내 대형 프로젝터에 다양한 사진과 그래픽을 띄우고 몸짓으로 행성들의 움직임을 3차원적으로 그려가면서 우주 원리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해나갔다.

열정이 넘치는 그의 말을 더 듣고 싶어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꺼내 오후 6시 55분에 예정되어 있던 KTX 귀경 열차 예매를 취소했다. 재미있는 우주 이야기를 좀 더 듣고 나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인간은 하루가 24시간 밖에 안되는 물리 법칙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한국 천문학 연구의 현실과 개선점을 골랐다.

—천문학 연구를 한지 30년이 넘었다. 한국의 천문학 연구 상황은 어떤가?

“한국은 G10(주요 10개국)이라고 평가 받는다. 이런 국제적인 지위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천문학 연구 수준은 매우 부진한 편이다. 외국의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는 것은 하고 있지만, 우리가 직접 우주 데이터를 얻는 수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워싱턴주와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해 있는 라이고(LIGO) 중력파 관측소 프로젝트에는 전세계 과학자 1000명이 참여하는데 한국인은 10~20명 정도이다. SKA 전파망원경 프로젝트와 하이퍼 카미오칸데 중성미자 측정 프로젝트에도 그 정도의 비율로 참여하려는 수준이다.

우리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1%도 안되니 어디 가서든 1% 정도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G10 국가에서 과연 이 정도 참여로 만족할만한지 의문스럽다. 1% 지분으로는 노벨상을 못받는다. 우주론도 그렇고, 다른 자연과학 분야도 그렇다.”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천문연구원 본원./한국천문연구원

—외국과 비교하면?

“세계 각국의 GDP(국내총생산)와 인구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천문학 연구 수준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 5000달러 수준이니 우리와 비슷한 나라로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를 과학강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버고(Virgo)라는 중력파 망원경 프로젝트를 주도할 정도의 과학 강국이다. 근대 과학의 창시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나라이다.

이탈리아는 천문학 박사 학위자 수가 1000명 정도 된다. 한국의 경우 350명 정도이니 우리 나라의 3배에 이른다. 스페인도 천문학자수가 우리의 2배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와 비교하면 우리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일본도 유럽 강국과 같은 반열이다. 천문학 뿐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 같은 기초과학이 모두 그렇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기초과학은 아직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탈리아 따라가려면

—우리나라가 이탈리아 수준이 되려면 인력이 얼마나 늘어야 하나?

“박사 학위 소지자가 현재 35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향후 20년간 1년에 35명씩은 배출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정년이 지난 사람이 은퇴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향후 20년간 매년 50명 이상의 박사 학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유학생까지 포함해도 한해 10명 정도 밖에 배출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천문학이 발전하겠는가? 생산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 현상을 고려하면 천문학 연구가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1636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 한국은 이탈리아와 경제 규모가 비슷하지만 천문학 분야 인력과 연구 수준은 한참 못미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위키피디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산을 더 늘려야 하나?

“문재인 정부 들어 기초과학 연구비는 크게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부족한데 연구비만 대폭 늘리면 과학자들에게 과로하라는 말이 될 뿐이다. 더군다나 천문학 연구는 점점 대형화 되어가고 있고, 우리가 이러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주도하려면 사람이 부족하면 곤란하다.”

안 연구원이 잠시 숨을 멈추더니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투자해서 기초과학 연구소를 추가로 설립하고 연구원을 고용하면 젊은 학생들이 미래를 보고 기초과학을 전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학생 정원과 교수 채용도 늘어나게 된다. 박사 1명 양성하는데 10년 걸리므로 이런 일을 지금 시작해도 정상 궤도에 오르려면 10년이 걸린다.”

기초과학연구소 추가로 세워야

—이미 다양한 정부 연구소가 많아서 예산 문제 때문에 추가로 연구소를 세우기가 쉽지 않을텐데.

“물론 정부 출연 연구소를 하나 세우는 일은 정말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회 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오찬을 하다가 기초과학 연구소를 세워 달라는 요청 또는 민원을 제기했더니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은 대덕 과학 연구 단지에 있는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다 기초과학 연구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구소들은 정부 정책 실행의 기반이 되는 과학 기술 지식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공학 또는 응용과학 위주의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전시 대덕 연구단지는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소들의 집합지이다. 사진은 대덕 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원

—한국에 기초과학 연구소가 몇 개나 되나?

“극히 최근까지도 기초과학 연구소는 사실상 천문연구원이나 고등과학원 등 몇 개에 불과했다. 천문학자들은 그나마 역사적인 이유로 국립천문대에서 시작된 한국천문연구원이 존재하는 덕택에 기초과학을 연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다른 분야 학자들이 부러워한다. 그 이후 기초과학원(IBS)이 생겨서 어느 정도 희망의 싹은 틔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연구 프로젝트를 9년간만 시행하는 9년 일몰형으로 운영된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초과학원에도 대들보 노릇을 하는 물리연구소, 화학연구소, 생물학연구소, 천문학연구소, 수학연구소 등을 설치하여 장기간에 걸쳐 운영을 보장하게 하고, 특정 유망 분야는 지금처럼 9년 일몰형으로 운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체제를 개편하여 안정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국내에서 순수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는 매우 드물다. 사진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한국고등과학원 홈페이지.

—기초과학 연구 인력수를 외국과 비교하면?

“미국의 웬만한 주립대학과 비교해도 한국의 대학들은 물리학, 수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 학생 수와 교수 수가 턱없이 적다. 가령, 미국의 오하오주립대 물리학과에는 학부생 500명과 대학원생 200명이 재학중인데, 서울대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대학의 연구 인프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안 연구원이 일본 교토대의 유카와 이론물리학연구소 이야기를 꺼냈다. 유카와 연구소는 원자핵 가운데 중간자의 존재를 입증하고 그 질량을 측정해 2차 대전 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유카와 히데키(湯川 秀樹) 교토대 교수를 기념해 설립한 연구소이다.

“유카와 연구소의 천체물리 연구실은 1년 운영비가 30억원인데, 그 지하실에 있는 수퍼컴퓨터는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보유하여 전국의 과학자들이 사용료를 지불하고 쓰던 수퍼컴퓨터와 비슷한 성능이었다. 그런 연구 장비를 중성자별 충돌 및 중력파 생성 시뮬레이션을 하는 연구실에서 거의 단독으로 사용하여 계산 코드를 만들고 실제 최종 계산은 세계 제일의 교(京)라는, 그들이 K-컴퓨터라고 부르는 고성능 수퍼컴퓨터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일본 유카와 연구소

—유카와 연구소는 어떻게 설립됐나?

“2차대전 패망 직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여 일본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준 유카와 히데키 박사를 위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차려준 연구소이다. 정부의 지원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성금을 모은 것으로 안다.

최근 중력파 연구를 하는 국내 천체물리학자들이 서울대에 설립한 중력파 우주연구단이 정부의 과학 난제 도전 융합사업으로 선정되어 첫발을 내딛었다. 이러한 연구소의 연구가 일본의 교토대학 유카와 연구소의 중력파 연구실 수준으로 정상궤도에 오르자면 앞으로 인력과 인프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뜻을 가진 개인이 이러한 사업에 기부한다면 피땀 흘려 쌓은 국부를 나라의 미래와 유능한 인력에 투자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 교수를 기념해 만든 일본 교토대의 유카와 이론물리학연구소. 풍부한 시설과 자금으로 이론 물리학 연구에서 앞서가고 있다./유카와 연구소

안 연구원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일본 이야기가 계속 됐다.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 체제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해야 할 뉴스가 있다. 장기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이, 더군다나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처지인데도, 2022년부터 대학 기금이란 명목으로 총 1000억달러(약 120조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해 연 3~4%의 운용 수익금으로 대학의 과학연구, 인프라 확충, 박사 학생 지원에 사용한다고 한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과학논문 평가에서 세계 4위에서 11위로 추락했다. 이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과학 기금을 조성하게 됐다고 일본 문부성이 설명했다. 일본 국민들이 창출해낸 국부의 일부가 미래를 위해 사람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국민이 피땀 흘려 창출한 우리의 국부도 미래 인력에 투자되는 제도적 장치가 확고하게 마련된다면 한국이 더 강건한 과학기술 국가가 되지 않겠나?”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천지사방에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우주를 연구하는 한국천문연구원 건물이 다른 국책연구소에 비해 매우 소박하게 느껴졌다.

☞ ①/③편으로 되돌아가 보기

(‘이어 보기’ 아이콘이 작동하지 않으면 검색창에 ‘안상현 우주’를 입력하세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