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악의 마음' 정순원, 첫 대본리딩부터 걱정 덜어낸 이유

황소영 기자 2022. 3. 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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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원
배우 정순원(35)이 '천의 얼굴'을 자랑하며 브라운관을 섭렵하고 있다. 지난해 tvN 월화극 '어사와 조이' 차말종 역으로 분해 인간 말종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분노 지수를 높였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바다'에선 엔지니어 공수찬 역으로 등장, 월수에 감염됐을 때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떠한 하나의 틀에 얽매인 연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 그 상황에 집중해 열연을 펼치며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방송가에서 그를 향한 러브콜이 뜨겁고 이에 열일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형사로 활약했다. 최종회까지 단 1회를 남겨두고 있는 SBS 금토극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하 '악의 마음')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뛴 기동수사대 에이스 남일영 역으로 분해 액션에 있어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감탄을 불렀다. "너무 행복했던 작품"이라고 입에 미소를 띤 정순원은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악의 마음' 종영 이후 JTBC 드라마 '모범형사2'와 티빙 오리지널 '유미의 세포들2'로 돌아온다는 그는 변함없는 관심을 당부했다.

-'악의 마음'이 호평 속 막을 내리게 됐다.

"나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을 매번 챙겨볼 정도로 재밌게 보고 있다. 촬영 현장을 가든, 지인들을 만나든 '악의 마음'이 너무 재밌다고, 좋다고 해줘 기분이 좋다. 따로 연락도 많이 온다. 시청자분들의 '연기적인 면에서 구김이 없다'라는 댓글을 봤다. 뿌듯했다."

-배우 김소진과 차진 콤비 호흡을 자랑했다.

"뮤지컬부터 같이 한 사이라 서로 알고 지낸 지 벌써 10년이 됐더라. 유준상 감독님과 '스프링 송'도 같이 했다. 친한 누나, 동생 사이라 촬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다. 소진 누나랑 신을 어떻게 연기할지에 대해 어려운 이야기도 서로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액션 신도 강렬했다.

"건강하고 훌륭한 육신은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몸 쓰는 걸 좋아했다. 태권도, 풋살, 러닝은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과거 드라마 '쌈, 마이웨이'를 촬영하면서 극 중 UFC 선수 역할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액션 신을 소화하면 쾌감이 있다. 범인 역보다는 범인을 잡는 경찰 쪽이 훨씬 더 쾌감이 있는 것 같다."

-팀워크가 정말 좋아 보인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김원해 선배님부터가 권위적인 것 없이 후배들을 잘 챙겨주고 입체감 있게 잘 다듬어주는 스타일이다. 제일 선봉에 서는 (김)남길이 형도 마찬가지로 단역으로 오는 사람들까지 츤데레처럼 세세하게 챙기는 부분이 있다. 섬세하게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리더의 빛이 발했던 것 같다. (진)선규 형이랑 (김)소진 누나랑은 대학로부터 함께해왔기 때문에 첫 대본 리딩 때부터 여기가 혜화역인지 상암인지 모를 정도로 친밀감이 느껴졌다. 연극배우 출신들이 많아 리딩 자체만으로도 호흡 자체에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정말 바쁘게 보냈다.

"하반기에 작품이 몰리면서 10일 동안 집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나왔다. 너무 즐겁게 일을 하다가도 딱 쉬는 날이 되면 힘들더라. 그때 피로가 몰려왔다. 몸이 이제 버티기 힘들구나 싶었는데, 올 상반기에 '악의 마음'까지 끝내고 '모범형사2'만 촬영 중이라 요즘은 좀 시간이 남는다. 사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육아까지 같이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매니저 친구에게 '정말 내 인생에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고.(웃음) 지금은 쉬는 날이 좀 있어서 회복하고 있다. 사람이 간사한 게 시간이 생기고 나니 또 바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순원
-지치지 않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제일 큰 부분은 연기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다. 요즘 일자리를 잃은 분도 많고 일이 없는 동료들도 많다. 그 시기에 세 작품('유미의 세포들2' '어사와 조이' '악의 마음')이 동시에 돌아간 건 큰 축복이다.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결과물을 봤을 때 확 타오르는 게 있어서 그게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또 집에 들어갔을 때 아기를 바라보며 우리 아기 기저기 값을 벌어야 한다는 게 원동력이 되더라."

-'악의 마음'도 좋았지만 '어사와 조이' 차말종 역할도 재밌었다.

"유종선 감독님이 만들고 싶은 차말종과 내가 만들고 싶은 차말종이 처음부터 상당히 흡사했다. 현장에서 믿고 맡겨주셔서 개인적으로 날아다녔던 것 같다. 대본을 읽으면서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잘할 수 있다, 잘하고 싶다는 자신감이 확 생겨서 내면의 아픔을 가졌지만 위트를 가지고 무겁지 않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해 서울예술대학교를 진학했더라. 본래 꿈이 배우였나.

"유치원 때부터 꿈이 막연하게 TV에 나오는 거였다. 그땐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꿈을 가지고 있다가 중학교 3학년 방학 때 사촌누나가 꿈이 그런 거면 시험을 보라고 했다. 그때 사촌 누나가 계원예고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다니고 있을 때다. 예고가 있다는 걸 처음 알고 시험을 봤다. 그렇게 예고에 진학하게 되면서 '배우란 직업을 가지고 싶다' '연기라는 걸 하고 싶다'라는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됐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응원이 있었겠다.

"내 뒤엔 부모님이 계셨다. 늘 '많이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하시는데 배우란 꿈을 가지고 공부하고 달릴 수 있게 그냥 뒤에서 묵묵히 바라봐주고 응원해주신 것만으로 큰 지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과 더불어 현실과 부딪쳤을 때 결핍이 날 더 독하게 만들고 달릴 수 있는 힘이 됐다. 다른 일을 해볼까 보다 연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연기를 잘하면 인지도와 돈은 따라올 거라고 강하게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연기를 잘하기 위한 생각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내가 참 기특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분야의 일은 전혀 한 적이 없나.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군대 다녀와서 대학에 복귀해야 하는데 집안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고등학교 은사님이 연기학원을 운영했는데 나와서 애들 좀 가르치라고 하곤 강사료를 줬다. 이후엔 어차피 복학 안 할 거면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인데 다른 생각을 왜 하느냐면서 대학로에 가서 오디션을 보라고 했다. 그때 오디션을 보고 데뷔작을 만나 꾸준히 공연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밥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와 영화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꿈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면서 스스로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규 형의 소개로 현 소속사 대표님을 만났고 그때 제안을 해주셔서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로 초반 넘어왔을 땐 쉽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정순원
-매체 연기에 적응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다행히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카메라에 대한 메커니즘을 공부해왔기 때문에 카메라 적응은 좀 더 유리했던 것 같다. 공연하면서 캐스팅 디렉터들이 오디션 제안을 많이 하지 않나. 소속사가 없을 때 처음으로 큰 드라마 역할을 한 게 MBC '몬스터'였다. 박훈 형이랑 같이 세트장에 갔는데 형이 '순원아 긴장할 거 없어. 빨간 불 들어오면 액션 하면 돼'라며 카메라 원 투 쓰리를 알려주더라. 근데 가만히 듣고 있다가 '형 나 방송연예과 나왔어' 하니 '미안하다, 그럼 나 좀 알려줘라'라고 하더라.(웃음) 그때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근데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장은 다르지 않나. 작품을 하면서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매 작품이 공부였다."

-작품마다 색이 다른 카멜레온 같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배우로서 그런 말 듣는 게 너무 좋다. 대학로에 친한 배우 윤나무, 임철수, 강기둥, 오의식 등이 있는데 이들은 내 얼굴을 보면서 '정말 연기 잘해야 한다' '형이 내 롤모델이다. 어떻게 그렇게 생겼는데 연기로 밥을 먹고 사느냐'라고 농담조로 얘기하곤 한다. (웃음) 내가 연기를 잘하기보다는 날 잘 봐주신 감독님들의 촉이 더 좋은 것 같다. 날 믿고, 새로운 날 발견해서 다른 색의 캐릭터를 맡겨준 여러 감독님들께 감사하다."

-요즘 고민은.

"OTT도 있고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배우를 찾는 곳은 많지만 그러기 때문에 살아남는 사람만 살아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잘하는 사람, 재밌는 작품만 살아남는 것인데, 여기서 어떤 연기를, 어떤 흐름을 읽어야 할까 고민하는 것 같다. 그리고 딸이 그제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육아를 잘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같다."

-올해 결혼 5년 차다.

"아내가 아이 키우면서 친정이나 시댁의 거리가 멀어 도움을 못 받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나 나가기 전에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지 물어봐주고 챙겨주고 같이 집에서 대사도 맞춰주고 그런다. '어사와 조이' 때도 대사 맞춰주면서 '어우 진짜 정순원 못 된 모습이 보인다'라고 하더라. 부부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다투기도 하지 않나. 그럴 때 나오는 독하고 나쁜 모습이 나오니 연기할 필요가 없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2006년 뮤지컬 '천상시계'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17년 차가 됐다.

"기억력 자체가 좋지 않다. 좋았던 기억은 가지고 있지만 힘들었던 시간들은 빨리 잊는 편이다. 작품을 돌아보면 그때그때 생각은 난다. 문득 얼마 전에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 그게 느껴지면서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대학로에서 패기 넘치게 휘젓고 다녔던 때보다 성숙해진 것 같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연기적으로도 힘이 좀 빠진 것 같다. 1층에서 2층 정도 올라온 수준인 것 같다. 뒤에서 수고했던 날 보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20대 때로 돌아가고 싶나.

"아쉬움도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더 잘해야지'가 있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완벽했으면 인생이 재미없었을 것 같다. 최근 책을 읽었는데 우리가 왜 목표를 100점으로 잡아야 하느냐, 그러면 부족함을 느끼는 것밖에 남는 게 없다는 내용이었다. 60점이나 80점을 목표로 잡으면 여유가 있으니 현 점수도 만족스럽고 앞으로 올라갈 길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여유와 아쉬움을 남겨두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내 모습을 보게 됐다. 난 사람한테도 큰 걸 바라더라. 그러니까 잔소리를 하고 아쉬움을 가지고 그런 것 같아서 사람에게 어떠한 큰 기대도, 연기에 대한 아쉬움도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걸 보완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다 보면, 계속 그렇게 탐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하다 보면 내 나이 60, 70까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좌우명이 있나.

"요즘 딸을 보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근데 그 앞에 '정직하고 당당하게'가 붙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정직하지 못하거나 누군가를 끌어내리거나 슬프게 하고 잘 사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정직하게 당당하게 잘 먹고 잘살자."

-배우로서의 목표는.

"가족끼리 모여 3사 연기대상을 챙겨보는 게 연말 재미였다. 그런 무대에 후보나 수상자로 올라갈 수 있다면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경사고 행운일 것 같다. 내가 한 연기로 상을 받아보고 싶다. 꿈에 그리는 순간이다. 또 영어를 잘해서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고, 점점 내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감독님이든 제작진이든 시청자든 '정순원이 나와? 그럼 봐야지'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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