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당근마켓 커뮤니티 ‘동네생활’에 올라온 글이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배달 음식 합배송시키실 분 계실까요? 음식 1인분 시키면 만원 정도인데 배달비가 3000원에서 4000원이라…”라는 글도 올라왔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동네생활 커뮤니티에 올해 1월 한 달간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 배달을 같이 시킬 사람을 구하는, 이른바 ‘공구(공동구매)’ 관련 글이 지난해 동월 대비 2배 늘었다. 바로 직전 월인 12월과 비교해도 15%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 미트박스. 육가공 업체·도매상 등 200여개 축산물 판매 회사가 식당, 정육점 등 25만 자영업자에게 직거래를 하게 해주는 모바일 플랫폼이다. 지난해 축산물 거래액 3200억원, 누적 거래액은 1조원을 돌파했다. 미트박스 경영진은 최근 거래액을 분석해보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트박스는 B2B(회사 대 회사) 플랫폼이라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곳만 등록, 축산물 거래가 가능하다. 가장 많은 구매처는 식당이다. 그런데 이색 사업장이 꽤 있었던 것. 미용실, 병원, 부동산, 학원 등으로 축산물 거래와는 일견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이다. 김기봉 미트박스 대표는 “미용실, 병원, 부동산, 학원 등에서 큰 비중은 아니지만 꾸준히 구매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기해서 한번은 직접 해당 사업장을 방문해 구매 이유를 물어봤다. 사업자로 등록해 고기를 사면 싸니까 동네 주민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미용실 원장이 대표로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과연 ‘공구의 민족’답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개했다.
공동구매.
말 그대로 한 제품을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할인받아 사는 개념이다. 예전에는 마을 단위로 지인들끼리 알음알음 해왔던 구매 방식이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카페 등 커뮤니티가 발달하면서 꼭 이웃 주민이 아니더라도 취미나 마음 맞는 동호회 회원끼리 이런 방식으로 물건을 싸게 구매했다. 물건 파는 업체 입장에서는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대량으로 제품을 팔 수 있으니 그만큼 할인을 해줄 여력이 생기는 ‘상부상조’ 모델이다.
최근에는 보다 전문화, 산업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공구 시장’ 쑥쑥 크는 이유는
▷SNS·라이브커머스 등 플랫폼 발달
공동구매가 쑥쑥 크는 이유가 뭘까.
소셜미디어(SNS) 발달이 첫 번째로 꼽힌다.
‘#공구’ ‘#공동구매’.
인스타그램에서 두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3월 초 기준 각각 273만개, 92만7000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이미 공구가 일상화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0년 SNS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SNS를 이용하고 그중 50%가 공구와 같은 SNS 마켓을 통해 쇼핑한다고 밝혔다.
특히 SNS 마켓을 성장시키고 있는 핵심 키는 ‘인플루언서’다. 사전적으로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뜻한다. 경영학에서는 유명 인사, 연예인 외 SNS를 중심으로 수많은 팬(폴로어)을 보유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를 지칭한다. 이들은 남다른 취향과 안목을 SNS상에서 스스럼없이 과시하며 영향력을 늘려나간다. 일부 인플루언서는 본인이 소비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공구’하면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관련해서 학계에서는 I2C(Influencer to customer)라는 신(新)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나이키가 아마존을 빠져나와 직접 자사몰 중심으로 판매하는 D2C 방식을 택했다면, 이어서 제조사와 소비자를 잇는 M2C(Manufacture to Consumer)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인플루언서가 직접 기획,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I2C로 e커머스 트렌드가 진화하고 있다. 또 인플루언서를 발굴하고 상품 소싱, 배송, CS(소비자 불만 처리) 등을 지원해주는 I2C 전문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련 업체로 더에스엠씨컴퍼니, 스노우볼커머스 등이 있는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SNS도 자체 커머스 기능을 적극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인스타그램은 계정에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숍’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인스타그램 앱 내 카메라를 켜서 제품을 시연할 수 있도록 AR 효과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예컨대 식기세척기를 판매하는 ‘인스타그램 숍’이라면, 폴로어가 카메라로 집 안을 비추고 해당 AR 효과를 적용해 식기세척기가 집에 배치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성장도 공구 일상화에 한몫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상품을 소개하는 판매 방식이다. 누구나 ‘셀러’가 될 수 있는 채널로 자리 잡으면서,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판매자가 되기 위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지역 기반 하이퍼 로컬(동네 생활권) 플랫폼 성장도 공구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당근마켓이 대표적이다. 예전만큼 이웃과 알고 지내기 어렵고 ‘동네’의 소속감이 약해진 현대사회에서, 당근마켓과 같은 플랫폼은 동네 주민을 한데 묶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배달 공동구매’ ‘택배 공동구매’가 가능해졌다.

국내 최초의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투게더. 최근 공동구매 분야를 늘려 명품, 보석, 요트까지 취급한다. (아트투게더 제공)

지난해 9월 서비스를 시작한 공동구매 팀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는 5개월 만에 회원 수 100만명 돌파, 월 거래액 40억원 돌파 등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웨이즈 제공)
▶공구, 계속해서 진화한다
▷시계·명품·보석에 이어 요트까지 ‘공구테크’ 한다
‘배달 공구’처럼 공구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분위기다.
근래 특히 주목받는 것은 공구테크(공구를 통한 재테크)다. 이 중 가장 대중화한 분야는 아트테크다. 미술품을 사려면 큰돈이 든다. 이를 소액 투자할 수 있게 만든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2030세대 사이에서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옥션블루가 지난해 말 국내 주요 미술품 공동구매 서비스 업체 5곳 판매액을 합산한 결과 시장 규모가 501억원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서울옥션블루 산하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인 ‘소투(SOTWO)’에만 지난해 말 기준 회원 수가 4만5000명을 넘겼다. 회사 측은 올해 국내 미술 공구 시장 규모가 1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술품 외에도 공구테크 분야는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정판 신발은 물론 시계·명품·보석에 이어 최근에는 요트까지 취급한다. 아트투게더가 이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고가 한정판 제품을 공구하고 가치가 오르면 되팔아 차익을 올린다’는 사업 모델 아래 하이엔드 보석 전문 기업인 ‘르플리’와 손잡고 보석 공구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트투게더는 이 밖에도 1만원대 투자가 가능한 다양한 명품, 고급 요트 공구 상품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해외 주식 투자 시 발생하는 높은 환전 수수료를 공구를 통해 낮춰주는 서비스도 있다.
국내 AI 핀테크 스타트업 콰라소프트는 애플, 메타 등 해외 주식을 사려는 개인투자자를 한데 모아 자사 앱 ‘오월’에서 공동구매 방식으로 주문을 이행해준다. 이렇게 하면 주식 거래 환전 수수료를 0.05%(통합 기준)로 확 낮출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공동구매 방식을 통해 환전 비용을 최소화하는 ‘외화 환전 방법’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알고리즘을 활용해 최적의 조건으로 환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간 구매에 ‘공구’ 방식이 적용되기도 한다.
한국로봇산업협회는 최근 현대로보틱스, 트위니, 레인보우로보틱스 등 국내 대표 로봇을 최소 5%에서 최대 40%까지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로봇 공구를 진행, 로봇 대중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최근 일반인의 ‘공구’ 모델을 적극 벤치마킹해서 공업용 부품, 소재 등을 각 협회 차원에서 공동구매해 원가 절감 효과를 극대화하는 실험에 나서고 있다.
▶기업화하고 있는 공구
▷中 공구 시장 19조원…핀둬둬, 알리바바 제쳐
핀둬둬.
중국 e커머스 시장에서 알리바바, 징동닷컴을 위협하는 새로운 강자다. 2015년 첫선을 보인 이래 급성장을 거듭해 2020년 4분기에는 알리바바를 꺾고 이용자 수 1위에 올랐다. 핀둬둬가 급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공구’가 있다. 핀둬둬에 가입하면 혼자 살 때와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격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할인율이 올라가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SNS를 이용, 지인을 끌어모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신규 회원이 급격히 늘어났다. 핀둬둬 성공 이후 중국에서는 싱션유쉔, 스훼이퇀 등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이 속속 등장했다. 조사 전문 업체 아이리서치는 중국 온라인 공동구매 시장 규모가 지난해 880억위안(약 16조8000억원), 올해에는 1020억위안(약 19조4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시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동구매 관련 앱으로 공구마켓, 올웨이즈, SKT T딜, 옐로우쇼핑, 주부상식, 봉순이마켓 등이 성업 중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MAU는 올웨이즈가 96만, 공구마켓이 73만, SKT T딜이 34만으로 ‘3강’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모바일인덱스 관계자는 “최근에는 시간대별로 몇 명이 모이면 할인을 해주는 타임커머스, 몇 명 이상 모여야 할인이 되는 팀커머스 등 다양한 조건을 내거는 게이미피케이션(목표와 보상을 게임처럼 하도록 유도) 방식의 앱이 각광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올웨이즈의 성장세는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9월 서비스를 시작한 올웨이즈는 5개월 만에 회원 수 100만명 돌파, 월 거래액 40억원 돌파 등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더욱 눈길 끄는 건 이 회사의 올해 12월 거래액 목표치다. 올웨이즈 운영사 레브잇의 강재윤 대표는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어 연말이면 월 거래액 4000억원을 자신한다”고 공언했다.
올웨이즈가 이런 공격적인 목표치를 제시하는 이유는 뭘까. 강 대표는 입점 업체, 고객 모두가 유리하도록 사업 모델을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물건을 팔고 싶은 업체가 입점을 타진하면 AI(인공지능)가 알아서 할인 판매가를 제시한다. 이를 받아들이고도 이윤이 남는다고 판단되면 올웨이즈 앱에 상품을 게시할 수 있다. 상품 소싱을 담당하는 MD(머천다이저)를 없애고 입점 수수료도 한 자릿수 %로 책정하니 제 발로 찾아오는 업체가 줄을 선다는 후문. 앱 가입 고객에게는 상품별로 정해진 팀 구매 인원을 모아 오면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고객이 자발적으로 ‘함께 구매하기’ 링크를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신규 회원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레브잇은 창업 1년 만에 끌림벤처스, 미래에셋, KB인베스트먼트 등 투자사로부터 11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급성장하고 있는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도 이런 공구 성공 공식을 적극 받아들였다. 그립은 지난해부터 공동구매를 진행하고 있다. 특정 인원이 채워져야 거래가 되고, 라이브 방송 중 셀러와 소비자가 댓글로 응원을 주고받는 식이다. 그립 관계자는 “2020년 250억원이었던 그립의 누적 거래액은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할 만큼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스타 폴로어 10만명을 보유한 ‘매언니’ ‘오공구’로 유명한 인플루언서 오서형, 황미애 부부는 공구 과정에서 알게 된 고객 니즈를 바탕으로 화장품 브랜드 ‘자덱’, 패션 브랜드 ‘어그스트’를 잇따라 출시했다. (‘매언니’ 인스타그램 캡처)
▷가격에서 품질, 취향으로…인플루언서가 기획부터 참여
앞으로 공구는 어떻게 진화할까.
전문가들은 ‘세포마켓’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다. 세포마켓은 세포처럼 시장이 1인 판매 채널로 세분화하는 것을 뜻한다. 1세대 공구가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면, 2세대 공구는 인플루언서가 주도하며 폴로어는 그들의 취향과 일상에 소개된 제품, 인플루언서가 기획에 참여한 제품을 구매하는 세포마켓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용태 더에스엠씨컴퍼니 대표는 “인플루언서는 소비자와 소통이 활발해 제품 사용 시 느끼는 불편함과 아쉬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상품 기획 단계부터 개입해 새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의 성공 방정식이 될 것이다. 특히 자기 개성과 자기 표현에 확실한 MZ세대는 제품을 사더라도 남들과 같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취향이 담긴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스타 폴로어 10만명을 보유한 ‘매언니’ ‘오공구’로 유명한 인플루언서 오서형·황미애 부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식품, 소품, 침구 등 다양한 공구를 진행해왔다. 생리대, 유산균 등은 공구 3일 만에 1억원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런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수요를 파악, 최근 화장품 브랜드 ‘자덱’, 패션 브랜드 ‘어그스트’를 잇따라 내놓을 수 있었다. 오서형 자덱 대표는 “주요 폴로어인 3040세대와 소통하는 가운데 이들 연령대에 맞는 제품을 기획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코스맥스 등 주요 생산 업체와 손잡고 상품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브랜드를 선보이게 됐다. 앰플은 폴로어의 적극적인 호응 덕에 초도 물량 5000개가 한 달 만에 완판됐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당근마켓 같은 지역 기반 하이퍼로컬 플랫폼이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이웃 기반 공구 방식에 익숙한 5060세대가 온라인 시장에 적응하면서 시장 자체가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종전 하이퍼로컬 플랫폼이 공구 기능을 확대하거나 중장년층을 겨냥한 신규 하이퍼로컬 공구 플랫폼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공구도 성장통을 겪을 공산은 있다.
모두가 인플루언서나 공동구매 판매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소비자의 ‘인플루언서 공구 옥석 가리기’가 이미 ‘진행형’이기 때문. 호박즙 공구를 진행하다 품질을 두고 소비자와 갈등을 빚었던 인플루언서 ‘임블리’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플루언서 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정성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다. 취향, 품질이 좋은 제품을 내놓거나 전문성이 있는 인플루언서만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정보화 시대에 소비자도 ‘똑똑한 구매’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인플루언서가 과연 그런 역량이 있는지, 마진을 과하게 챙기진 않는지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이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9호 (2022.03.09~2022.03.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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