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명신 "기억 안 되는 배우이고 싶어요"

박정선 2022. 3. 7. 1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명신

배우 박명신은 자유로운 새다.

작품의 혹은 캐릭터의 틀에 갇히지 않고 어디서든 날아다닌다. 배우라는 직업에, 혹은 연기 선생이라는 직업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가야 할 길로 나아간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대중의 눈에 쉽사리 익진 않지만, 어느샌가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영화 '모가디슈'에 이어 tvN 드라마 '불가살'과 JTBC 드라마 '공작도시'까지, 박명신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매체에 얼굴을 비쳤다.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해야지' 혹은 '더 유명해져야지'란 '욕심'과는 거리가 먼 그를 많은 제작진과 시청자가 먼저 찾은 덕분이다.

연극 무대에서, 강단에서, TV에서, 스크린에서 여전히 자유로운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박명신은 "그냥 기억 안 되고 싶다. 그래야 항상 새로울 것"이란 그다운 철학을 전했다.

박명신

-'불가살'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중간에는 시청률이 조금 안 나오고, '고구마 드라마'라는 소리도 듣고, 조금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끝까지 다 보고 나서는 '그래도 참 좋은 드라마를 내가 했구나'란 생각을 들어 기분이 좋았다. 작품을 처음 선택할 때도 그랬지만, 요즘 너무 드라마들이 그악스러워지잖나. 이 드라마 또한 피가 낭자하거나 그런 요소가 있을 법하지만, 결과적으로 동화적이고 착한 드라마다. 그래서 '내가 착한 드라마를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설정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듯한데. "어린 시절부터 전래동화나 여러 소설을 읽는다. 나의 경우엔 연극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이런 식의 황당한 전개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끝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슬프고 착한 드라마가 될 거라곤 상상 못 했다."

-많은 제작비를 들인 기대작이었다. "대작이니까, '촬영 환경 자체가 되게 좋겠지'란 생각을 했다.(웃음) 세 개의 시대가 나오면서 1인 3역을 하는데, 세 가지 역할이 다 다르다. '연극에서도 못했던 연극적인 연기를 내가 할 수 있겠다'란 기대감이 있었다. 거기다 대작이라니까. 하하하."

-연극적인 연기를 설명하자면. "무녀 역할, 그런 식의 셰익스피어에나 나올 것 같은 캐릭터다. 연극에서도 이런 식의 연기는 거의 해보지 않았다. 대본을 봤는데 '연극에서도 못 해본 걸 드라마에서 한단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명신

-'공작도시'와 '불가살'에 동시에 출연했는데, 혼동을 주지는 않을지 우려하지 않았나. "전혀 우려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혼동한다는 것에 책임감을 안 가지려고 했다.(웃음) 내 연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봤을 때, 절대로 혼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도 돌아다니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 하하하."

-'불가살'의 마스코트였다는데. "의상이나 헤어나 상황이 귀여움을 많이 떨잖나. 귀여움의 극치다. 하하하. (후배 배우) 친구들이 저를 귀여워해 줬다.. 의상 하나씩 입고 나올 때도 '너무 귀여워'라고 하더라. 나도 모르게, 그러다 보니 연기가 귀엽게 됐다."

-러블리한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엔 나도 생각을 못 했다. 감독님도 처음엔 귀엽고 러블리한 캐릭터로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영향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이 여자가 원래 가진 과거의 비극성과, 비극이나 역경을 견딘 사람들이 가진 유쾌함 그런 것이 있잖나. 그게 좀 (러블리한 캐릭터 덕분에) 잘 산 것 같다."

-연기하며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나이를 먹으니까 눈물이 잘 안 나온다.(웃음) 예전 같으면 눈물이 뚝 떨어져야 될 정도인데, 지금은 맺힐 정도다. 한번 울고 나면 그다음은 눈물이 죽어도 안 나온다. 하하하."

-일인다역의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역할마다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그 인물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연기를 잘 만들어서 하는 사람은 못 된다. '이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들이 이렇구나'란 생각이 들면 거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럼 거기에 맞는 에너지가 나와서 조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다."

박명신

-영화 '모가디슈'에서 '깻잎 논란'을 먼저 연기한 선구자다. "류승완 감독님이 그 장면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긴 했다.(웃음) (내가 등장하는) 다른 장면에 더 집중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영화상 그 장면은 편집됐다. 찍고 나서 며칠 후에 감독님이 '깻잎 장면 죽이더라'고 하더라."

-깻잎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인의 정이다. 떼줄 수 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작품은 선택하지 않는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면 한다. 고사했던 적이 한 번 있긴 하다. 격정 베드신이 있는 작품이었다. 격정 베드신은 자신이 없었다."

-한예종 연극원 1기다. "현장에서 후배들을 자주 만난다. 1기이고, 졸업한 후 한예종에서 강의를 오래 했다. 후배들이 나를 기억해줘서 현장에서 만나면 아는 척도 해준다. 배우 이희준이 제자이고, 이번 '불가살' 감독님과 인연이 된 것도 제자 박정민이 추천한 것이다. 김고은 같은 경우는 내 수업을 안 들었고, 박소담과 이유영, 변요한은 다 제자다. 정말 뿌듯하다. 다 잘하더라. 내 덕에 잘하는 것 같아서. 하하하. 어쩌다 만나면 '누구 덕에 연기를 잘하게 됐나'라고 한다. 그럼 '사부님 덕이죠' 이런다.(웃음)"

-제일 사랑하는 무대는. "내가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은 다 좋아한다.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연극을 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 협업 과정을 오래 가져가고 비중이 작건 크건 처음부터 끝까지 이 무대가 내 것이다. 주인공이든 아니든 내 무대다. 매체 연기로 가면 약간 부품 같은 느낌이 든다.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하고 영화를 감독 예술, 드라마를 작가 예술이라고 하잖나. 그런 것처럼 연극이 가장 재미있긴 하다."

-교수로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너희가 느끼는 대로 그냥 해라'다. 연기는 떨리는 일이다.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저절로 되는 건 없다. 용기를 내야 한다. 첫 시간에 늘 그런 이야기 한다. 나는 너네의 엄마가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든 연기를 잘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너희가 연기를 잘하면 나는 기분이 좋다. 너희가 하고픈 만큼 열심히 하고, 너희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받고 인간성 버리고 싶지 않다. 화를 안 낼 거니까 성적으로 책임을 지고 자기가 한 행동에서 그런 식의 인식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길 한다."

-삶의 철학이 궁금하다. "연기도 그렇고, 애써서 일부러 하는 걸 잘 못 한다. 뭔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걸 이루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란 생각을 한다. 이 순간을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뿌리적인 노력을 하면서, 이 결과의 순간이 슥 나오게 하려고 한다. 뿌리 작업할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

박명신

-연기에 대한 애정이 큰 듯하다. "연기는 할수록 더 좋아지진 않지만, 완성 지점이 없으니 계속 끊임없이 한다. 조금씩 계속 도전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도전할 만한 일인 것 같다. 연기를 대체할 다른 재미있는 일이 나타나면 갈 텐데 아직 안 나타났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해 약사를 하다가 배우가 됐다. "(배우의 일을) 운명적으로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계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약사 이력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다. 내가 이런 식의 연기를 만났는데 이걸 어떻게 포기하고 약사를 계속할 수 있겠나. 많은 이들이 자기가 하고픈 일을 만났음에도, 경제적 안정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한다. 그게 난 이해가 안 간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그냥 기억 안 되고 싶다.(웃음) 사람들이 내가 나오는 어떤 작품을 볼 때마다 '아 이런 배우도 있었지' 이랬으면 좋겠다. 굳이 사람들에게 '박명신이란 배우가 있었지'라고 안 남아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럼 볼 때마다 신선한 배우로 남을 거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ongang.co.kr 사진=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