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이무생에게 자꾸만 설득당하는 이유
아이즈 ize 이여름(칼럼니스트)
이 불혹의 '어른 남자'에게 자꾸만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휴먼 로맨스 드라마인 JTBC '서른, 아홉(극본 유영아, 연출 김상호)'. 6회차 방영을 끝마친 이 작품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깊은 고민에 빠지기 쉬운 삼십 대로 들어섰거나, 불혹을 앞둔 길목에서 충분히 공감할 거리를 안겨준다. 그러나 동시에 불륜을 소재로 서사를 풀어나가는 탓에 반응은 호불호로 엇갈리는 중이다.
극 중 주인공인 차미조(손예진)의 친구 정찬영(전미도)과 김진석(이무생)은 서로의 주변에서 모호한 관계를 이어 나간다. 두 사람은 애틋한 연인 사이였지만 진석이 유학을 떠나며 헤어졌고, 진석은 하룻밤 실수로 자신의 아이를 가진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정신적인 관계를 이어 나갈 뿐 아니라 찬영이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이 명확한 불륜 관계는 더없이 애틋하게만 그려진다. 물론 진석의 아들이 다른 남자의 아이임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래도 불륜은 불륜. 이 명확하고도 모호한 관계성으로 인해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서른, 아홉'은 좀처럼 공감대를 찾지 못할 구석을 만들어냈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캐릭터든, 악역처럼 못난 캐릭터든 그럼에도 캐릭터가 처한 사정과 그에 따른 감정을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몫이다. 진석 역의 배우 이무생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극의 설득 지점을 만들어낸다. 굴지의 연예 기획사 대표이자 부유한 집안에서 굴곡 없이 자란 탓에 늘상 차분하고 감정표현이 두드러지지 않는 남자. 찬영이 이혼하라고 떼를 쓰거나 자신이 여태껏 키워온 아들이 친아들이 아님을 알았을 때도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첫사랑인 찬영이 췌장암 4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무너져 내리는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나, 천천히 차오르지 않고 팍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현실적이었다. 성인 남자가 이토록 처절하게 울 수 있을까. 사랑하는 상대가 시한부임을 알게 되는 장면은 그간 국내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 오던 '클리셰'이지만 캐릭터나 관계성의 옳고 그름을 잊을 정도로 엄청난 몰입감을 자아낸 그의 연기는 참으로 신선했다. 지난 4회에 등장한 해당 장면은 다른 주연들의 장면을 제치고 '서른, 아홉'의 공식 클립 영상 중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클립이 됐을 정도다.
'서른, 아홉'이 방영될 초반에서는 관록의 손예진,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진가를 보여준 전미도 등 여성 배우들에 비해 남성 배우들의 인지도가 떨어지지 않냐는 우려도 일었다. 이무생은 여성 중심 서사에 많지 않은 분량에도 등장하는 족족 울림이 큰 장면들을 탄생시킨다. 삶의 우연성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복잡다단한 마음은 배우의 눈빛과 표정을 타고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경쟁작으로 방영되는 청춘 로맨스의 명장면들 못지않은 깊고 진한 설렘이 일 정도다. 절제된 듯하면서도 적재적소에 툭 튀어나오는 날 것의 어른스러운 감정 표현들은 캐릭터의 올바름을 떠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의 절절한 마음을 내비치며 극에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사랑 앞에 나이나 세월도 장사 없다는, 말 그대로 불혹의 '순정'을 TV 너머의 시청자들 또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힘이라니. 언제 어디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늦은 행동이 얼마나 큰 후회를 불러일으킬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의 갑갑함이 얼마나 클지 그 덕분에 작품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끔 만든다. 간만에 '찐'으로 마음을 울리는 반가운 배우의 등장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데뷔 16년 차인 이무생은 그간 크고 작은 역할들을 소화하며 강한 인상을 남겨왔다. 시청자였던 MBC '하얀거탑'의 중반부 우연한 기회로 출연하게 된 이후 연기력을 인정받아 JTBC '밀회'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MBC '봄밤'까지 안판석 PD의 작품에 4차례나 출연했다. '봄밤'에서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비열한 인간인 남시훈으로 악독한 얼굴을, tvN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탈북민 출신 청와대 대변인 김남욱으로 절제된 감정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특히 지난해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윤기로 분한 JTBC '부부의 세계'로는 대중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동료 의사인 지선우(김희애)에게는 끝없는 순애보를 보이다가도, 지선우를 괴롭히는 전 남편 이태오(박해준)에게는 날선 모습을 보이는 입체적인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에 여심은 흔들렸다. '이무생로랑'이라는 별명까지 얻어 단단한 팬덤을 형성했을 정도. "인간 이무생보다는 작품 속 캐릭터로 더 비쳐지고 싶다"고 밝힌 그는 대중에 주목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고, 비로소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단정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지녔지만 배역과 캐릭터에 따라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서늘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매력에 시청자들은 울고 웃는 중이다.
80년생인 이무생은 배우 조정석, 조승우, 인교진 등과 동갑이다. 난데없이 여심을 파고든 이 불혹의 배우는 요란스럽지 않게, 꾸준히 매 작품으로 대중의 마음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매력 앞에서 나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 다정함과 서늘함을 오가는 그가 앞으로 채워 나갈 필모그래피에 잔뜩 기대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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