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최다 메달' 이승훈 "나를 넘는 후배 나와야 해" [ST인터뷰]

이한주 기자 2022. 3.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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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 사진=권광일 기자

[가양동=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나를 뛰어넘는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4년 뒤에도 후배들이 나를 못 넘으면 나는 밀라노에 가 있을 겁니다"

이승훈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후배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이승훈은 한국 동계올림픽의 전설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같은 대회 10000m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하게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승훈의 활약상은 한 대회로 끝나지 않았다. 2014년 소치 올림픽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안방에서 열린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는 매스스타트와 팀 추월에서 각각 금메달,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나이로 35살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이승훈은 매스스타트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자(6개)로 우뚝 섰다.

2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이승훈의 매니지먼트사 IHQ 사무실에서 스포츠투데이와 만난 이승훈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돌아보며 "지난 올림픽까지는 '메달을 꼭 따야 한다',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올림픽은 가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 사실 대회에 나가기 전 '메달을 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너무 기뻤다. 동메달인데도 불구하고 금메달 못지않게 좋았다. 감격스러웠다"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승훈이지만 그에게도 힘든 시간은 있었다. 평창 대회 직후였던 2018년 5월 이승훈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빙상경기연맹 특정감사를 통해 후배 선수 2명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이승훈은 2019년 7월 1년 간의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는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당사자인 후배들하고 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아서 더 커진 것 같다"며 "지난 일이고 지금은 다 잘 지내고 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힘들었던 이승훈을 다시 일으킨 것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그는 "옆에서 항상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나는 후배들과 친구들이 있었고 피해자로 지목받았던 후배들도 나를 많이 응원해줬다. 덕분에 개의치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평창 대회 이후 이승훈은 네덜란드 실업리그에 진출했고 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는 "평창 올림픽 때까지는 말 그대로 죽어라 운동만 했다. 덕분에 그 동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과 결과가 따라왔다. 그런 시간이 처음에는 즐거웠는데 나중에 나이를 먹고 오래 하다보니 지치고 많이 힘들었다"며 "그 시기가 됐을 때 네덜란드를 가게 됐고 마음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조금 내려놔도 되겠다', '운동에 목 메이지 않아도 운동을 잘할 수 있고 재미있고 오래할 수 있겠구나' 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었을 때보다 지금 더 스케이트를 잘 타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운동을 계속 해 왔으면 지금 아마 그만 뒀을 거다. 네덜란드에서 해왔던 것처럼 즐겁게 운동을 하면 더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이승훈은 2021-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 출전해 매스스타트와 팀 추월 종목에서 베이징 행 티켓을 따냈지만 메달권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를 두고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는 "월드컵 성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월드컵 랭킹 1등이라고 무조건 금메달을 따는 것이 아니다. 월드컵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의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다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선수들이다. 처음부터 딱 그 정도 안에만 들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5위를 달성했다. 월드컵 성적은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 빙판 위에 서게 된 이승훈은 팀 추월 종목 준준결승전에서 김민석-정재원과 팀을 꾸려 출전했지만 3분41초89를 기록, 6위에 머무르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이승훈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게 현재 우리의 수준"이라며 후배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 장거리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없다. 장거리를 하는 선수들도 대부분 매스스타트만 시도를 하지 5000m와 10000m에서 세계 (무대)로 가보려고 하는 선수들이 없다. 그런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쓴소리를) 하게 됐다"며 "그런 후배들이 있어야 우리도 팀 추월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훈은 또한 "현재 후배 선수들 트레이닝을 시켜주는 일도 하고 있다. 찾아오는 후배들과 학생들은 대개 질문을 많이 한다. 저도 후배들이 물어보면 항상 아낌없이 알려준다. 그런데 나한테 물어보기 어려워서 인지 잘 묻지 않는 후배들도 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봤으면 좋겠다"며 "많이 물어보고 배워서 (후배 선수들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저는 앞으로도 운동을 즐겁게 할 것이다. 후배들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운동해 발전해야 한다. 나를 뛰어넘는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다. 만약 4년 뒤에도 후배들이 나를 실력으로 못 뛰어넘으면 나는 4년 뒤 (2026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밀라노에 가 있을 것이다. 스포츠는 실력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후배들의 성장을 바랬다.

이승훈 / 사진=권광일 기자


이승훈은 이후 열린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 유종의 미를 거두며 베이징 올림픽을 마쳤다. 그는 "경험했던 올림픽 중 가장 부담이 적었던 올림픽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메달까지 따게 돼 잊지 못할 대회가 된 것 같다"고 쾌활하게 웃었다.

12년 간 4번의 올림픽에 참가해 4개 대회 연속으로 메달을 수확한 '선수 이승훈'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이 남았다. 4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며 "그 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모른다. 너무 멀리 생각은 안 하고 있다. 운동은 계속할 것이다. 운동은 아직도 나에게는 너무 재미있고 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승훈은 "네 번의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항상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응원을 해주셨다. 너무 감사드린다. 앞으로 운동을 하던 무슨 일을 하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팬들에게 진심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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