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 1세대' 106세 김병기 화백 별세

이은주 2022. 3. 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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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현역화가
'한국미술의 산증인'
103세에도 개인전 열어
2014년 생전 당시 LA 작업실의 김병기 화백. 당시 98세였다. [중앙포토]


고 김병기 화백이 지난달 24일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택 이사장에게 해준 서명.[사진 가나문화재단]


국내 추상미술 1세대 화가이자 국내 최고령 현역 화가로 활동해온 김병기 화백이 1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106세.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근현대 미술의 산증인이었다.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한국 화단에서 추상미술을 개척했고, 2019년 103세 생일을 맞아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또 지난달 24일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의 부탁으로 사인북에 직접 서명을 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해왔다.

김 화백은 고희동, 김관호와 함께 서양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김찬영(1893∼1960)의 아들이다. 이중섭과 평양 종로보통학교 동창이었던 김병기는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운 선친의 뒤를 이어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문학수 등과 수학했다.

새로운 미술 세계를 접한 그는 귀국해 북조선문화예술총연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으나 북의 전체주의와 맞지 않자 1948년 월남했다. 월남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맡았다.
서울대 강사, 서울예고 설립 당시 미술과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으로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정착했다.

국내 화단에서는 점차 잊혔던 그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김병기:감각의 분할' 전을 열면서 복귀해 최근까지 국내에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한국미술사에서 사라진 김병기의 이름을 다시 불러낸 건 당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윤 관장의 주선으로 1986년 가나아트센터에서 22년 만에 첫 귀국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2015년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추상미술 형성 초기부터 서구 미술의 역사적 전개를 면밀하게 고찰한 김 화백은 현대적 조형언어로서 추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의 작품은 드로잉과도 같은 선(線)의 표현과 공간에 대한 실험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 .황톳빛·붉은빛 색면 위에 자를 대고 선을 그어 화면을 분할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화면엔 서울·평양·도쿄·뉴욕 등 그가 돌고 돌았던 곳이 담겼다.

고인은 2014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엔 서울과 평양이 남북의 양대 도시였다. 서울 사람들이 형태미를 중시하는 반면 평양 태생인 나는 그 형태를 낳게 한 리얼리티를 중시한다”며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고향 북한도 사랑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어 “난 실존주의자. 지금이 제일 행복하며, 매일매일 힘을 얻는다"며 "우리는 뭘 하든 철저하게 살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98세 때의 말이다.

윤 관장은 "고인은 살아있는 한국 현대미술사였다. 미술계가 거목을 잃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김 화백은 추상과 구상,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한국 미술사의 중심에서 역할을 했기에 그의 존재감이 뚜렷했다"며 "그가 떠남으로써 미술사의 한 시대가 마감됐다"고 말했다.

김병기 화백의 추상 작품. [중앙포토]
김병기 화백의 추상화[중앙포토]
김병기 화백의 추상화. [중앙포토]


2019년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여기, 지금(Here and Now)'을 열었고,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에도 신작을 발표했다. 2017년 101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최고령 회원으로 선출됐고 지난해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김형익, 김청윤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1호실, 발인은 4일 정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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