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선택한 카드, '지역감정'이 불러온 나비효과

김형민 2022. 2. 2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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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역감정은 피장파장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호남 푸대접론' 등은 소외받은 지역의 타당한 항변일 수 있었다.
1971년 3월21일 서울 성동구에서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3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 박정희는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어. 그런데 이 선거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발견된다. 당시 굵직한 선거 이슈가 없던 야당은 ‘호남 푸대접론’으로 공화당 정부를 공격한다. 공화당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과를 거두고는 있었지만 기간산업이 영남에 편중됐고 농업정책의 실패로 호남 농민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된 상황이었거든. “경부선은 주로 외국제 객차를 운행하는데 호남선 객차는 유독 낡은 국산을 배치하고 있다. (…) 울산공업지구 등 영남 일대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마치 외국 시찰을 다녀온 느낌이었다(〈동아일보〉 1967년 3월27일).”

박정희 대통령은 “호남 푸대접론은 정부와 국민을 이간시키는 행위(〈경향신문〉 1967년 4월27일)”라고 일갈하며 “이 나라가 잘되려면 여당도 정신 차려야 하지만 우리나라 야당이 그들의 머리를 근대화해야 한다”라고 맹렬하게 반박했어. 야당의 호남 푸대접론이 “몸은 20세기에 살고 머리는 19세기에 사는” 구닥다리 야당의 음모라고 몰아붙인 거야.

선거 결과는 박정희의 무난한 승리였다. 하지만 득표 양상은 조금 달랐어.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당선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건 영호남 농민들의 몰표였다. 충청 이북은 야당 윤보선 후보에게 훨씬 많은 표를 줬지. 반면 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동서로 갈리는 양상이 나타났고, 득표율은 특이한 분포를 보였다. 대개 지역에서 박빙이거나 55대 45 정도로 한쪽에 근소하게 승리를 안겨줬지만 (심지어 푸대접론이 등장했던 호남에서도) 영남 지역에서는 65대 35처럼 ‘몰표’ 현상이 나타난 거야. 박정희 후보는 110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영남에서만 130만 표로 격차를 벌렸다.

제3공화국 헌법에는 3선 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별의별 공작과 무리수 끝에 3선 개헌을 이뤄내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지게 되지. 이 선거에서 맞닥뜨린 야당 후보는 이후 ‘살아 있는 한국 현대사’가 될 사람이었다. 바로 김대중이야. 일찍이 김대중을 정치적 적수로 꼽았던 박정희는 196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에 출마한 김대중을 낙선시키려는 목적으로 목포를 몇 차례나 방문하는가 하면 국무회의를 열어 공약을 쏟아낼 정도로 신경을 썼어. 하지만 결국 대선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김대중을 만나고 말았다.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40대 야당 후보가 일으킨 바람은 상상 외로 거셌단다. 중앙정보부가 언론사에 “김대중 유세에 몰리는 청중 수를 부각시키지 말라”고 압박하다가 기자들의 반발을 산 건 한 예일 뿐이야. 박정희 자신도 절박했단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한 번 더 뽑아달라’는 정치 연설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라고 선언했을 만큼 말이야(이 공약은 ‘유신헌법’이라는 매우 비극적인 형태로 실현되지).

김대중이 절규한 지역감정 조장 유인물

이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관권과 금력을 동원한 부정선거는 기본.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만약 부정과 조직적 방해가 없었다면 김대중씨는 한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지. 참고로 김대중 본인과 그 주변 동교동 사람들이 투표한 수천 표가 무효표로 처리됐다. 투표용지에 선관위원장의 도장이 잘못 찍혔다는 이유였어. 대통령 후보 본인의 표가 관청의 실수(?)로 무효표가 된 셈이야.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

박정희는 색깔론도 동원했다. 남로당(남조선노동당) 군 총책이라는 전력 때문에 야당으로부터 매섭게 공격받았던 박정희와 그 정부가 김대중을 좌경 용공 인사로 몰아간 거야. “선거를 한 달쯤 남긴 3월 하순부터 간첩단 사건이 잇달았다. (…) 투표 4일을 앞두고는 지하당 간첩단 13명을 검거했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외무장관 최규하가 직접 김대중을 겨냥했다. 김대중 후보의 언론·체육인 등의 남북 교류, 4대국 안전보장안 등 공약에 북한이 지지를 표명했다(〈프레시안〉 김택근 연재 ‘김대중 평전 〈새벽〉’).” 국방부 장관도 나섰어. “(예비군 폐지론으로) 국가의 존립과 민족의 흥망에 중대한 위협을 주고 있다(〈조선일보〉 1970년 11월5일).”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이후 한국 현대사에 가로놓일 거대한 트라우마의 장벽을 쌓는다. 지역감정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한 거야. 앞선 선거에서 ‘나라를 망칠 이간질’ ‘19세기식 잔재’라고 자신이 맹비난했던 그 수단을 집어들었지.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의 말. “신라 이후 천 년 만에 나타난 박정희 후보를 다시 뽑아서 경상도 정권을 세우자. 쌀 속에 뉘가 섞이면 밥이 안 되는 법이다. 경상도 표에 전라도 지지표가 섞이면 조가 섞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하여 경상도 지역에는 ‘전라도 사람들이여 단결하라’는 선전물이 뿌려지고, 김대중 후보의 벽보 밑에는 ‘호남 후보에게 몰표를 주자’는 격문이 나붙었어. 김대중은 유세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뿌려진 유인물을 꺼내들고 절규한다. “내 이름을 도용해 이런 유인물을 돌린 공화당 사람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유인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라도 사람들 단결하자. 나는 경상도 사람이 끄는 차도 안 탄다.”

앞서 얘기했듯 윤보선 등 야당 측이 박정희를 향해 ‘호남 푸대접론’을 제기한 바 있었고, 김대중도 ‘경상도 정권’을 운운한 적 있다. 그러니 지역감정을 이용한 건 피장파장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산업화 과정에서 경부축선에 위치한 영남 지역이 혜택을 보고, 농업이 기반이던 호남이 피해를 보았으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호남인들이 타향살이를 감내해야 했던 건 역사적 사실이거든. 호남 푸대접론 등은 소외받은 지역의 타당한 항변일 수 있었다는 얘기야.

양비론의 가장 큰 해악은 맥락과 전후 사정을 생략해버려서 결과만 가지고 양쪽에 동일한 책임을 지운다는 데 있어. 이를테면 고등학교 일진이 누군가를 괴롭히다 피해자가 목숨 걸고 달려들어 싸움이 벌어졌는데 학폭위에서는 “둘 다 때리고 맞았으니 양쪽 모두 징계한다”라고 하는 식이지. “지역주의는 영남 지역의 선행적이고 공세적이며 권위주의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호남 지역의 그것은 수세적이고 방어적이며 저항적이라고 할 수 있다(김태일 영남대 교수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토론회 발제문’).” 아빠는 이 의견에 공감하는 바야. 하나 더한다면 지역주의는 정치적 문제만은 아니었어. 대체 언제, 무엇에서 기원했는지 모르나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 차별은 박정희 정권 이전부터 존재했다. 문제는 ‘지역감정’이 아니라 ‘전라도 혐오증(유시민)’에 기반하고 있었으니까. 이 이야기는 차후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이야기할 때 되돌아보도록 하자꾸나.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95만 표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다. 이 결과를 용납하기 어려웠던 그는 선거 후 조카사위 김종필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 “선거를 하다 보면 앞날을 제대로 내다보고 건전하게 나라를 열어갈 위인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뽑힐 수 있어. 그럴 땐 조국 근대화라는 혁명 과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어. 그러니 내 좀 특수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로부터 2년도 채우지 못한 어느 날, ‘좀 특수한 것’의 진수를 경험하게 된다(다음 편에 계속).

김형민(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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