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0% 이상’ 금리 효과를 내건 청년희망적금이 자격 및 형평성 측면에서 각종 논란을 낳는 가운데, 금융위원회가 당초 상품 설계 당시 수요를 예측하는 근거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지표를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 보장 정책·재정 전문가는 이를 두고 “금융위가 너무 쉽게 봤다”며 쓴소리를 냈다.

2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지점에 '청년희망적금'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24일 통계청 일자리 소득 자료 등을 종합해 보면, 2020년 기준 청년희망적금 가입 자격인 연 3600만원 이하 소득을 지닌 20대의 일자리 규모만 약 257만개 정도로 추산됐다. 일자리를 기준으로 한 만큼 중복 집계가 포함됐고, 집계 방식상 연 3600만원 이하 구간을 정확히 추출할 수 없어 오차는 있을 거로 예상된다.

하지만 금융위가 예상한 수요인 ‘38만명’은 터무니없이 작은 수치라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특히 청년희망적금 가입 가능 연령은 단순히 20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만 19~34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격 요건이 되는 청년 규모는 훨씬 광범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손민균

◇ ‘257만+α>38만’ 차이 왜… 금융위 10년 전 ‘재형저축’ 참고해

금융위가 지난해 9월 작성한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 설명자료’와 비교해 보면, 수요 예측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금융위는 당시 ‘저축 장려금’ 지원 예산으로 456억원을 책정했는데, 이는 38만 계좌(38만명) 몫에 해당한다.

금융위는 산출 근거로 “과거 시중은행 재형저축(2013~2015년) 운영 시 청년층 계좌 추정 규모 33만~43만의 평균치인 38만 계좌 가입 예상”이라고 언급했다.

재형저축은 서민들의 자산 증식을 목적으로 내놓은 저축상품으로 2013년 출시돼 2015년 판매 중단됐다. 연령 제한 없이 연봉 5000만원 이하 근로자 등이 대상이었으며 비과세 혜택이 있었다. 분기당 최대 300만원, 7년 만기를 채우면 농어촌특별세 1.4%만 부과하고, 이자·배당소득세는 면제해주는 식이다.

재형저축 판매가 시작된 2013년 당시 한 직장인이 은행 창구에서 재형저축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여 년째 사회 보장 정책 및 재정을 전문으로 다뤄온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재형저축은 단순히 세제 혜택이 유인이었던 상품으로, 예산으로 높은 이자를 지원하는 이번 상품과는 사람들의 ‘관심도’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특히나 해당 근거는 무려 10년 전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인구도, 일자리 유형·수도 훨씬 많아진 지금 상황과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가 한정된 예산에 전형적으로 ‘끼워 맞추기’ 식 수요 예측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일고 있는 이른바 ‘금수저’·'외국인’ 등 형평성 논란도, 따지고 보면 수요 예측 실패가 초래한 ‘선착순 게임’이 본질적 원인이라고 최 실장은 꼬집었다.

최근 청년희망적금 가입 자격을 놓고 “금수저 알바생은 적금에 가입할 수 있는데, 소득 3600만원을 겨우 넘는 흙수저 직장인은 적금에 못 든다”, “내국인도 가입이 어려운데, 외국인은 소득만 있다면 가입할 수 있다”는 등의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최 실장은 “실질적으로 (형평성 논란의 당사자)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선착순 가입처럼 변질하면서 ‘박탈감’ 문제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논의가 튀게 됐다”고 말했다.

◇ 대선후보까지 ‘사업 확대’ 조짐… “수요 예측 작업부터 다시해야”

논란에도 해당 사업은 앞으로 크게 확대될 거로 보인다. 우선 금융위는 예산을 늘려 오는 3월 4일까지 자격 조건이 되는 모든 신청자를 받기로 했고,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2021년 중 최초로 소득이 발생한 청년에 대해서는 해당 연도 소득이 확정되는 7~8월경 이후 가입을 재개하는 방안에 대해 관계 부처 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금융위는 청년희망적금 투자 예산을 ▲2023년 1371억9000만원 ▲2024년 1372억1000만원 ▲2025년 1372억3000만원 등으로 점차 늘릴 계획이다. 이재명, 윤석열 등 대선 후보들도 청년희망적금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저마다 내건 상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9월 작성한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 설명 자료’ 중 청년희망적금 사업 부분의 내용.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금융위는 2025년까지 매년 사업 규모를 확대할 전망이다. /금융위 제공

금융권에서는 사업을 확대 시행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수요 예측 작업부터 다시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해당 작업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대상을 확대해 논란을 잠재우는 것은 ‘땜질’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최 실장은 “일단 통계청·국세청의 2020년 통계 자료를 기준으로 삼되, 여론조사 등의 방식으로 신청 의사가 있는 이들의 비중을 대략적으로라도 뽑아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수요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틀리더라도 예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통계청 자료로 성기게 추산을 해보더라도 가능 인원을 대략 500만명으로 잡아볼 수 있을 텐데, 금융위의 예상치인 38만명은 여기에 10%도 안 되는 수치”라며 “전체 정책 대상 집단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제대로 조사해보는 것은 정책 설계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청년희망적금 출시 첫날 KB국민·신한·NH농협은행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접속 지연 안내문.

한편 청년희망적금은 만 19세 이상~34세 이하(1987년 2월 21일까지 출생자) 청년이 일정 소득 요건(2020년 기준 총급여 3600만원 이하)을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

매달 50만원 내로 2년간 저축하면 은행이 기본 연 5%의 금리를 주고, 만기에 따라 정부가 예산으로 1년 차 2%, 2년 차 4% 등 ‘저축 장려금’을 추가 지급한다. 은행에 따라 우대금리 최대 1%포인트(p)가 추가로 주어지며, 비과세 혜택도 있다.

출시 첫주부터 가입 신청자가 폭주하면서 은행 애플리케이션(앱)과 창구 등에는 혼선이 빚어졌다. 금융위는 가입자 현황을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