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방송사 최초 광주 투입 북한군 인터뷰'의 최후

정철운 기자 입력 2022. 2. 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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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 2021년 조사보고서
"국정원, 방송 3년 전 이미 사실무근 및 허위 진술 결론"
탈북자 정씨, "나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짓말 인정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2021년 하반기 조사 활동 보고서'에서 2013년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해 자신이 1980년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이라고 주장했던 탈북자 정○○씨(방송에는 가명 '김명국'으로 등장) 조사 결과를 내놨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에서 이미 정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씨 주장이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채널A는 이런 기본적 사실관계 취재 없이 그의 거짓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며 한국사회에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했다.

▲2013년 5월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방송 화면. 가운데가 김광현 동아일보 기자. 모자이크 처리된 사람이 정아무개씨다.

조사위는 “국가정보원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자료를 제공 받은 결과, 이미 북한 특수군 침투 주장이 사실무근 및 허위 진술이라고 결론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정원은 자신이 광주에 직접 남파됐다가 계엄군과 교전 후 복귀했다고 주장하는 정○○에 대해 2009~2010년 직접 면담조사를 3회 실시했고, 정○○이 동향 출신 이○○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5·18에 참여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며, 특히 정○○의 최초 입국 당시 작성한 합동신문조서 확인 결과 당시 조사 과정에서 5·18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적시했다”고 밝혔다.

채널A 방송 3년 전 이미 국정원에는 답이 있었던 것. 그러나 2013년 방송으로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국정원은 자신들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채널A는 박근혜정부 첫해 첫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3일 남겨둔 5월15일 정씨 주장을 인터뷰 형식으로 내보냈고, 프로그램 진행자로 직접 정씨를 인터뷰한 김광현 동아일보 기자는 방송에서 “(정씨) 증언이 제대로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순간이었다. 채널A 공채 1기 기자들은 성명을 내고 “보도국의 게이트 키핑 능력 자체가 재고돼야 할 시점”이라고 비판하면서 진상 조사를 요구했으나 진상 조사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 당시 권순활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본인(정○○)이 그 진술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부분도 감안해 달라”고 했으며 “(정씨 주장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날짜별로 어떻게 했고, 어떻게 돌아갔고, 어떻게 왔다고 한 부분을 통째로 거짓말한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며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나 합리적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5월6일자 JTBC 보도화면 갈무리.

조사위 또한 국정원 조사 결과와 별개로 정○○씨를 조사했다. 정씨는 “과거 발언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임○○ 및 이○○에게 나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지난해 JTBC와 인터뷰를 통해 “1980년 당시 평양에 있었다”고 실토했다. JTBC는 “(정씨가)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북한군 개입설을 이용하려는 세력과도 고리를 끊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조사위는 “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5·18 당시 북한군의 침투를 묘사한 논픽션을 펴내는 등 북한군 개입설을 적극 주장해 온 이○○은 (조사에서)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문제의 채널A 방송에 출연했던 인물이다.

지난해 조사위는 정씨와 이씨를 포함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6명을 조사했다. 조사위는 “북한군 장교 출신으로 1990년대 일부 언론에 북한 체류 시 5·18에 대한 북한군 침투설을 들은 적 있다고 언급했던 최○○은 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자신의 발언은 기자들의 질문에 우쭐해 한 것으로, 근거가 없다고 진술했다”며 조사 결과를 정리한 뒤 “일부 북한 이탈 주민이 제기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런 주장들 중 상당수가 허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했던 TV조선·채널A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위 관계자는 “조사 대상 범위에 있는 것은 맞지만 방송에 출연했던 탈북민 발언에 대한 진위 파악이 우선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채널A 방송 이틀 전인 2013년 5월1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선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가 출연해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라고 주장했다.

이번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9년 전 방송은 명백한 허위방송이었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난 만큼, 방송사들로서는 9년 전과는 다른 차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놓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13년 5월1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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