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사 연구 권위자,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 별세

이혜인 기자 2022. 2. 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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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근대의 풍경> <공장의 역사> 등 영국 사회사 관련 책을 다수 남긴 이영석(李永石) 광주대 명예교수가 지난 13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이 교수는 최근 지병으로 전주예수병원에 입원해있던 중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1953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국에 유학한 적은 없지만 대학원 시절부터 영국사 연구에 매달렸다. 1989년에 산업혁명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의 내력을 살펴보면 궁벽한 산촌에서 자란 유년 시절을 비롯해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대의 반민주주의, 산업화·민주화 열풍,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돌발 등이 그의 학문적 여정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사학회 회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학문에 매진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대학교 4학년 때인 1979년 발생한 남민전 사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친구는 감옥에 있는데 나태하게 살 수 없다고 다그치며 학문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영국의 근대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나, 이후 영국 사회사, 경제사, 노동사, 사상사, 제국사, 비교사 등으로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또 논문과 저술, 번역 등 여러 방면에서 학자로서 활동했다. 리처드 에번스의 <역사학을 위한 변론>(1999)을 번역한 것을 계기로 사회사·생활사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다시 돌아본 자본의 시대>(1999),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2003) 등을 펴냈다. <사회사의 유혹>(2006), <영국 제국의 초상>(2009), <공장의 역사: 근대 영국사회와 생산, 언어, 정치>(2012),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2015) 등 저서와 <영국민중사>(1989),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2007),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2020) 등 번역서를 남겼다.

1990년부터 광주대 교양학부와 외국어학부 교수로 있다가 2019년 정년퇴직했다. 이후 연세대에서 영국사와 서양사를 강의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클레어홀과 울프슨칼리지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서양사학회와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2년에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우수학자로 선정되었다.

고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역사 관련 글을 쓰고 그 글을 묶어 <삶으로서의 역사>(2017)를 펴내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책은 읽지 않지만 페북에 실린 글은 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동안 써온 논문과 책들이 가치가 있고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결과물들을 해체해서 대중소비용 메뉴판에 내걸면 어떨까”라고 페이스북 글쓰기의 이유를 밝혔다.

부인 최옥희씨는 연합뉴스에 “일주일 전쯤 병상에서 곧 나올 책 <사회사로의 초대> 에필로그를 써서 출판사(푸른역사)로 보냈다”며 “불꽃같이 살다가 불꽃처럼 다 태우고 떠났다”고 밝혔다. 책의 에필로그에 고인은 “일생 비주류로 살았다. 일류대학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파가 아니다”라며 “나의 삶의 궤적이 그들(젊은 연구자 등)에게 조금이라도 인상을 남겼다면 과분한 상찬이자 기쁨”이라고 썼다.

유족은 최씨와 사이에 아들 이승일씨와 며느리 홍현희씨가 있다. 빈소는 전북 전주시 효자장례타운 201호실(조문은 15일 오전 9시부터 가능)에 마련됐다. 17일 오전 11시 발인을 거쳐서 장례식장 옆 효자추모관 나무 밑에 묻힌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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