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폰트)가 상업적 사용이 금지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홈페이지 디자인에 썼다 저작권 위반 소송을 치른 디자이너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판결로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폰트인줄 알고 썼다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해 배상금을 물어주는 사례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일부 업체는 폰트 다운로드를 허용한 다음, 유튜브 영상이나 홈페이지 제작 등 영리적 목적 사용 후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 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달 창원지방법원 제1민사부(부장판사 양상익)는 폰트제작업체인 헤움디자인(주)이 인터넷 쇼핑몰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인 디자이너 A씨를 상대로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며 330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에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내렸다.

▲무료 폰트를 제공해 왔던 네이버 자료실 페이지 화면 갈무리. 지금은 이 자료실 화면이 사라졌다. 사진=오픈넷 제공.
▲무료 폰트를 제공해 왔던 네이버 자료실 페이지 화면 갈무리. 지금은 이 자료실 화면이 사라졌다. 사진=오픈넷 제공.

판결문에 따르면 헤움디자인(주)은 ‘HU 또박또박’ 폰트를 개발해 2013년 11월1일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했다. 이후 이 서체는 포털 네이버 자료실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등록됐다.

디자이너 A씨는 이 폰트를 네이버 자료실에서 다운로드해 유아용품을 온라인 판매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폰트라 저작권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헤움디자인(주)은 해당 사이트에서 자사가 비영리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한 폰트가 영리 목적에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후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형사의 경우 A씨를 창원지방검찰청에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나 검찰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민사 소송에서 사단법인 오픈넷이 피고를 대리하며 공익소송에 나섰다. 오픈넷은 “폰트를 사용한 자에 대해 저작권 침해 여부가 불분명함에도 불구 합의의 대가로 수백만원 상당의 폰트 패키지 구매 요구를 하고, 응하지 않으면 형사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피고와 오픈넷의 손을 들었다. 상업적 사용이 불가하다는 약관 내용이 분명히 제시됐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고, 사용범위를 알리는 안내 문구가 무료다운로드 클릭 위치와 상당히 떨어졌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연합뉴스

재판부는 영리적 사용을 하지 않는 계약이 이뤄졌는지 살핀 결과 “원고와 피고 사이에 무료로 비상업적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사용허락계약이 체결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무료다운로드’ 부분을 클릭해 다운로드받은 이 사건 폰트를 설치 또는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용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의 약관을 확인하고 버튼을 클릭하는 방식 등으로 동의하는 절차가 따로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네이버에서) 다운받는 화면 하단에는 ‘무료사용 범위는 개인이면서 비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고 기재됐다”면서도 ‘사용범위 프리-개인, 국내’라고만 기재돼있어 ‘개인이’, ‘국내에선’ 자유롭게 이 사건 서체를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는 점, 무료 사용범위를 제한하는 안내문구와 다운로드 버튼의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점을 감안해 서체 사용허락계약이 체결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오픈넷은 9일 입장을 내고 “사용조건이 분명히 제시되지 않은 경우 저작권법 위반은 물론 사용허락계약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있는 선례가 될 것”이라며 “최근 PDF 변환금지 또는 사용범위를 지나치게 세분화한 약관 조항이 주로 문제 되는데, 약관규제법상 불공정약관금지 조항에 따라 해당 조항의 무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오픈넷은 이어 “앞으로 폰트 저작권자들은 무료폰트라 하더라도 약관규제법에 따라 명확한 계약 내용을 고지해야 하고, PDF 변환금지 등 불공정약관 조항의 소지가 다분한 내용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며 “이용자들도 무료폰트라 해도 약관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고 사용한다면 부당한 저작권 합의금 장사의 피해를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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