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 하얀 섬, 신안 증도

김민수 2022. 2. 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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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1.2km 길이의 화도 노두길

눈 소식이다. 전라남도 서해안 지역에 폭설이 온단다. 겨울철 눈이 내릴 무렵에는 파도가 높고 강풍이 불기 마련이다. 여객선 결항은 당연지사. 바다를 건널 수 없으니 꿩 대신 닭이다. 그래, 증도로 가자.

김 양식에 쓰이는 어구가 가득 쌓여 있다

●모두 하얗게

폭설전야, 증도에 도착 후 예약해 두었던 태평염전 내 천일염힐링캠프에 여장을 풀었다. 캐러밴은 화장실, 취사시설, 침대, TV 등을 갖춘 나름 편리한 숙박시설이다. 캠핑카나 트레일러처럼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기분만큼은 역동적이며 또 아우팅의 베이스캠프로도 그럴듯하다. 내릴 듯 말 듯 잔뜩 흐렸던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다. 몇 번이고 창밖을 내다보다 결국 침대에 몸을 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특보를 믿어 보기로 했다. 바람이 캐러밴 몸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요란한 밤, 하얀 꿈. 얼마나 자다 깨기를 되풀이했는지.

고깃배가 바다로 나가려면 눈보라가 그치고 기온이 올라야 한다

아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소리를 지를 만큼 많은 눈이 쌓였고 또 내리고 있었다. 기대했던 폭설이다. 높은 건물이 없는 탓에 마치 섬 전체가 시베리아의 하얀 평원쯤으로 변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증도의 설경은 산지가 많은 강원도와는 전혀 다르다. 위압적이지도 않고 또 교통에 대한 걱정도 없다. 하늘, 들판, 염전의 경계가 사라졌다. 끝없이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배낭을 짊어지고 눈길로 나선다. 쌓인 눈에 부츠 발자국이 깊게 새겨진다.

눈 내리는 겨울 정취에 흠뻑 빠져 버린 여행자

●청정, 무공해, 느림

증도는 2007년 슬로시티, 2008년 갯벌도립공원, 2009년 유네스코 생물보전지역, 2010년 국가 습지보호 구역, 2011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갯벌 생태 보물섬이다. 섬을 상징하는 단어가 청정, 무공해, 느림이 되어 버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증도대교가 개통된 2010년 이전과 비교해 봐도 섬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 늘어나고 조형물이 몇 군데 세워진 것 외에는 한결같은 모습이다. 증도에선 공사 차량조차 보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관광 인프라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섬이기 때문이다.

섬의 반이 갯벌이면 그 나머지 반은 염전이다. 바닷물이 물러가고 드러난 갯벌은 오염의 흔적이 없다. 그곳을 터전으로 수많은 생물이 살아간다. 짱뚱어다리와 화도 노두교에서 그 생명력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태평염전으로 대표되는 증도의 염전은 친환경, 생태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 우전해수욕장, 짱뚱어해수욕장은 휴양지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 중이다. 증도의 순수 자연을 여행하기 위해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든다. 다리가 놓인 섬이 지향해야 할 모델을 보는 것 같아 찾아갈 때마다 즐겁다.

부지런한 제설작업 덕분에 차량이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눈이 많아진 까닭

눈길을 걸어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섬에서 눈을 맞은 것은 2017년 울릉도 나리분지 이후 처음인 듯하다. 눈 여행은 다분히 감상적이며 스폿보다는 분위기에 의존한다. 특히 푸르름과 생명력이 빛나던 계절의 자연을 기억하고 있다면 감동은 더욱 커진다. 눈 속에는 꿈틀대던 가을의 갯벌과 하늘색을 고스란히 담았던 염전 칸칸이 숨어 있음을 안다.

우리나라 서남부 지역은 몇 년 사이 새로운 다설 지역으로 떠올랐다. 이런 현상은 서해의 온난화와 맞물린다. 시베리아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서해를 지나면서 낮은 눈구름이 만들어지는데 중국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타고 이동, 충청도 지역과 호남지방에 눈을 뿌리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 서해에서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이유도 해수의 온난화 때문이다.

눈 그림이 되어 버린 천일염힐링캠프 내 캐러밴 사이트

기온이 떨어지니 바람의 세기도 한층 커졌다. 갯벌을 지날 때는 거침없는 눈보라가 화살처럼 날아와 얼굴에 박히고 재킷의 틈새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찌어찌 노둣길(섬과 섬을 이어 주는 길)을 건너고 화도까지 갔다가 다시 태평염전까지 돌아왔으니 대략 10km는 족히 걸었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하얀 빛, 색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손과 발이 얼고 볼살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어딘가에서 좀 쉬고 싶어졌다. 가까운 버지선착장으로 향했다. 제설차가 한 무더기의 눈을 쓸고 지나갔다. 과거 증도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이곳 버지선착장에서 지도읍 송도항까지 철부선이 다녔다. 지금은 이웃 섬 병풍도를 잇는 작은 여객선이 오갈 뿐이다. 병풍도에서 노둣길을 건너 대기점도로 넘어가면 '12사도순례길'로 곧장 이어지게 된다.

침낭과 비비색만 있으면 세상 어디서든 하룻밤을보낼 수 있다

●겨울철 침낭 고르는 법

외롭게 놓인 정자에 쌓인 눈을 대충 치우고 배낭에서 매트와 침낭을 꺼내 깔았다. 자유롭게 섬을 여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다. 겨울 침낭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표기가 정직하다는 전제로) 컴포트(comfort) 온도다. 침낭은 컴포트, 리미티드, 익스트림 온도가 함께 표기된다. 하지만 리미티드, 익스트림 온도는 극한의 기후와 환경이 없는 우리나라 아웃도어 현실상 큰 의미가 없다. 컴포트는 여성 사용자가 팔을 하나 내놓은 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온도를 뜻한다. -7~-10℃면 최상급 침낭이며 동계에는 무적이다.

또한, 텐트는 보온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대신 방풍, 방습의 역할을 할 뿐이다. 좋은 침낭이 있다면 텐트 없이도 따뜻하게 잘 수 있다. 대신 침낭이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습력이 좋은 침낭 커버나 비비색(Bivy Sack)이 있어야 한다. 몸이 따뜻해지니 스르륵 잠이 왔다.

마트에서 파는 전용 양념장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수육

얼마나 지났을까, 선착장은 여전히 고요했고 눈발은 가늘어졌다. 배가 고팠다. 배낭에는 캐러밴에서 삶아 놓았던 돼지고기 수육과 지난 해남여행 때 해창양조장에 들러 샀던 막걸리 한 병이 있었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껏 즐기다 돌아가면 된다. 여행자는 내리고 쌓이는 눈이 아름답다. 수육이 굳고 막걸리가 살얼음이 되었어도 마냥 좋은 것이 여행이다.

▶TRAFFIC

①센트럴시티터미널→지도여객자동차터미널
(4시간 10분 소요, 매일 2회 운행)
②목포시외버스터미널→우전해수욕장
(1시간 5분 소요, 매일 4회 운행)

▶PLACE TO VISIT

우전해수욕장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짱뚱어해수욕장 주차장까지를 우전해수욕장의 영역으로 봤을 때 실제 길이는 2.7km 정도가 된다. 백사장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데다 수질이 좋아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이 몰려드는 명소다. 특히 해변 뒤편으로는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해송 숲이 이어져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거나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태평염전
태평염전(등록문화재 360호)은 1953년 피난민 정착을 위해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염전이다. 여의도 두 배 면적의 염전 내에는 소금박물관(등록문화재 361호), 캠프장, 염생 식물원, 소금 바람길, 낙조 전망대, 소금 동굴, 카페, 마트, 스파 등이 들어서 있어 증도 여행에 보람과 재미를 더해 준다.

신안갯벌생태센터
국내 최초의 갯벌 생태 교육 및 전시관으로 2006년 세워졌다. 갯벌의 탄생 및 형성과정, 그곳에 사는 생물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각종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신안갯벌생태센터는 슬로시티센터를 겸하며 우전해수욕장 입구에 있다.

해저유물발견기념비
1975년 증도 방축리 해역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려 올라왔다. 이렇게 시작된 원나라 무역선의 인양작업으로 84년까지 총 2만2,000여 점의 송, 원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해저유물매장해역은 사적 274호로 지정되었고 유물들은 국립박물관 및 지역 박물관에 나뉘어 소장 중이다. 기념비는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조사요원과 인양에 애쓴 해군 심해잠수사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뜻으로 세워졌다.

▶STAY

펜션, 민박을 이용한다면?
증도민박협회에서 운영하는 '증도펜션민박'사이트에서 마을별, 가옥별, 객실 형태별로 비교 후 마음에 드는 시설을 골라 예약을 할 수 있다. 숙박시설 외에도 관광명소, 식당 등의 정보도 제공하고 있어 활용도가 높다. 또한, 우전해수욕장의 엘도라도 리조트는 홈페이지에서 회원 가입시 정상가보다 객실 요금을 저렴하게 제공한다.

캠핑을 계획한다면?
설레미캠핑장은 농어촌공사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투자하고 우전권역 영농조합법인에서 위탁 운영 중인 시설로 우전해수욕장 뒤편의 해송 숲 내에 있다. 총 1만 평방미터 정도의 부지에 일반캠핑장, 오토캠핑장, 해변캠핑장, 캐러밴 사이트, 캐러밴, 펜션형 방갈로 등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태평염전 내 천일염힐링캠프도 캐러밴과 오토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비수기와 평일의 경우 홈페이지보다는 '아고다' 등의 숙소예약 사이트를 통하면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인스타그램 avoltath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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