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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약탈적 금융’을 키우는 허울 좋은 좀비들

‘불균형’의 시대다. 가계와 기업의 빚이 전체 경제규모의 2.2배(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달한다는 통계는 빚에 의지해 집을 사고, 주식을 하고, 사업을 연명하는 ‘금융불균형’ 시대의 자화상이다.

금융불균형의 기저엔 복잡한 심리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 인생역전에 대한 기대감, 현재를 어떻게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절박함, 레버리지를 통해 대박을 터뜨렸다는 주변의 성공신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간다. 3분위 소득자가 17.6년간 꼬박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다는 기막힌 현실과 1~2%대의 낮은 시장금리는 이런 복잡한 심리에 가속도를 붙였다. 미친 집값에 곁들인 술안주로 대박주, IPO(기업공개), 가상자산이 단골메뉴로 등장한 것도 금융불균형 시대의 단면이다. 사실상 빚으로 쌓은 자산이다. 게다가 빚의 급속한 증가는 시세거품을 조장한다. 악순환이다.

물가는 어떤가.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연 2.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밥상물가는 5.9% 올랐다. 주거비용과 배달수수료까지 고려하면 실제 체감물가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수요와 공급불균형에 노동인력의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겹쳤다. 여기에 3589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의 통화량도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사실상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개월여 사이에 0.75%포인트 올리고, 이것도 모자라 현재 1.25%의 기준금리를 1.75%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정부가 레버리지에 의한 부동산투기를 잡는다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강도 높은 가계부채 규제를 들고 나온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질서 있는 정상화’라는 청구서에 이곳 저곳에서 ‘돈’걱정이 앞서고 있다. 7억원의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막차(?)에 탑승했다는 한 지인은 쌓이는 이자부담에 결국 빌라 전세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3억원의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또 다른 지인은 2%대였던 금리가 4%대로 뛰어오르자 계산기만 두드린다.

‘질서 있는 정상화’라는 대의명분 앞에 서민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금융불균형의 기저에 얽혀 있던 ‘미래를 위한 도박’의 역습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는 7차례의 추경을 통해 130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었다. 정부의 잇따른 추경은 국채금리 상승을 불러오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무분별한 돈의 살포는 대출금리의 상승의 연결고리가 되고, 물가상승에 기름을 붙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불균형을 정상화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지만, 서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커지기만 한다. 이래저래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서민의 고통을 살피지 못하면 ‘약탈적 금융’이라는 유령은 다시금 고개를 들것이다. ‘돈’으로 선거를 사겠다는 고리타분한 선거판, ‘금융불균형’ 밑바닥에 깔린 복잡한 심리를 외면한 일방통행식 정책, 실수요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금융은 결국 ‘금융의 제1원칙’인 신뢰를 갉아먹는 좀비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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