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R 검사 한국서 3번·태국서 2번..카오산 로드도 백신증명서가 '필수품'

박경일 기자 2022. 1. 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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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 차오프라야 강변의 근사한 부티크 호텔 ‘살라 라타나코신’의 루프톱 바에서 바라본 일몰 직후의 새벽사원(왓아룬). 새벽사원은 지난 2013년부터 5년 동안 보수 공사를 진행해 2018년 하반기에야 말끔한 모습을 공개했다. 보수공사를 끝낸 지 1년 6개월여 만에 팬데믹이 덮치면서 밝고 화려하게 고쳐진 새벽사원엔 가볼 수 없었다. 지금 방콕에 가면 가장 먼저 가봐야 할 곳으로 그곳을 추천하는 이유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방콕의 마하나콘 빌딩의 루프톱 전망대 스카이워크. 유리로 마감한 바닥이 아찔하다. 스카이워크는 지난 2018년 11월 오픈했다.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에 내린 승객들이 의자에 앉아 공항직원의 지시대로 PCR 검사 결과지와 백신접종증명서 등의 서류를 꺼내놓고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방콕 차이나타운의 뒷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탈라드 노이’의 지도. 탈라드 노이는 중고차 부품상들이 밀집한 쇠락한 골목이다.

■ ‘위드 코로나’ 달라진 해외여행… ① 태국 방콕

비행기 탑승객 적어 ‘눕코노미’

PCR 검사 3번은 본인이 부담

4인 가족이면 검사비 120만원

호텔서 하루 격리후 여행 시작

곳곳마다 백신접종증명서 확인

방콕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모두 다 처음 가보는 길입니다. 코로나19의 시대를 건너오는 것도 그랬고, 팬데믹 와중에서의 해외여행도 처음입니다. 지금 되찾아야 하는 건, 실은 여행보다는 안도감으로 가득한 일상입니다. 여행은 그다음의 문제이지요. 지금 여행을, 그것도 바다 건너 해외로 떠난 얘기를 꺼내는 게 여간 조심스럽지 않은 건 그래서입니다. 그럼에도 그 얘기를 하기 위해 귀국 후 자가격리의 부담을 감수하고 지난해 말 해외취재를 다녀왔던 건 이미 달라진, 그리고 앞으로 달라질 여행의 방식과 내용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기부터 조건, 그리고 방식까지 코로나19 이후의 여행은 거의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궁금했던 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여행이란 무릇, 일상의 반대편을 향하는 법입니다. 그동안의 여행은 ‘익숙한 일상에서의 탈출’이었습니다. 너무나 무탈해서 문득 사는 게 지루해질 때, 여행이 주는 작은 긴장은 즐거웠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이 긴장’인 상황에서의 여행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세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는 중이지만, 코로나19의 완전 종식에 대한 기대는 물 건너갔습니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의 일상이 있다면, ‘위드 코로나’의 여행도 있을 겁니다. 위드 코로나 여행은 언제쯤 다시 시작될까요.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 여행은 과거의 여행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목적지를 태국의 방콕과 푸껫으로 정했던 건, 그곳이 한국인 여행자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았던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잘 알고 있으니, 그곳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더 분명했습니다. 취재 당시 태국은 방콕과 푸껫 등 주요 관광지를 일제히 열고 입국절차 등을 간소화하는 ‘테스트 앤드 고’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실험적인 이 프로그램으로 태국은 2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프로그램은 잠시 중단됐지만,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곧 다시 시작될 겁니다. 태국이 거둔 성공은 팬데믹 시대 국경을 넘는 여행 방식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이제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질문을 들고서 태국의 방콕과 푸껫을 여행한 이야기를 신년 기획으로 나눠 싣습니다.

# 비행기… 기침 소리가 조심스럽다

지난해 12월 12일 태국 방콕행 타이항공 TG 657편이 정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비행기는 승객을 3분의 1도 다 못 채웠다. 승객 중 한국인이 4분의 1쯤, 나머지는 서양인과 태국인이 반반쯤 됐다. 이즈음 국제선 비행기 탑승객이 크게 줄면서 ‘눕코노미’라는 말도 생겼다. 이코노미 좌석 한 줄이 통째로 비어 비즈니스 좌석처럼 누워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승객들이 모두 태국에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방콕 공항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항공편으로 갈아타려는 환승객 숫자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건너뛸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기내식이 나왔다. 음료와 커피도 줬다. 기내 서비스만큼은 코로나19 이전과 별다를 게 없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승무원이나 승객 모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누구 하나 잔기침이라도 할라치면 시선이 한꺼번에 모였다. 급기야 귀국 비행기 편에서는 기침 때문에, 옆좌석 승객끼리 거친 욕설이 오가는 시비가 붙어서 도착 공항의 경찰을 부르니 마니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침뿐만이 아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사소한 일들이 이제는 극히 조심해야 할 일이 됐다. 감염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 만에 하나 여행 중에 확진자가 된다면 ‘공공의 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여행 재개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을 무렵이라 한국인 승객 대부분은 여행자들이었는데도 기내 분위기가 여행에 대한 기대로 들뜨지 않았던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비행기에 탄 승객들은 예외 없이 72시간 이내에 받은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PCR 검사 결과서가 없으면 아예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없다. 하지만 감염 우려가 없다고는 100% 장담할 수 없다. 승객들은 빈 좌석에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침묵한 채 마스크 끈을 조였다. 팬데믹 이전보다 비행시간이 두 배쯤 더 길게 느껴졌다.

여행은 곧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행 출발부터 자꾸 움츠러들었던 건 감염병의 시대가 길어지면서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몸에 익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팬데믹이 시작되고 세 번째 겨울까지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던 것일까.

# PCR 검사 없이 국경을 넘을 수 없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6시간 20분 만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장까지 가는 길에 길게 두 줄로 의자가 놓여있었다. 의자에 앉아 한 칸씩 앞으로 이동하는, 동남아시아에서 자주 보는 ‘줄서기’ 방식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낯선 출입국 절차에 승객들 사이에서 작은 긴장감이 흘렀다. 두 줄로 앉아있는 승객들 사이로 공항 직원들이 오가며 입국서류 구비 여부를 한 장 한 장씩 점검했다.

어디로 가든 팬데믹 시대의 해외여행에는 두 가지 서류가 꼭 필요하다. 하나가 PCR 검사 결과지, 다른 하나가 백신접종증명서다. 태국도 이 두 가지 서류를 요구한다. 접종증명서야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쉽게 내려받을 수 있지만, PCR 검사는 번거롭고 불편하다. 간편하고 빠른 신속항원검사만으로 입국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지만, 그게 꼭 나은 건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비행기 옆자리 승객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신속항원검사 음성 판정만으로 비행기에 탔을 테니 말이다. 서로 안심하려면 모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한동안 해외여행을 하려면 PCR이든 신속항원이든 검사는 피할 수 없겠다. 코로나19 검사 없이 마구 승객을 태운다면, 승객들이 그 비행기를 과연 타겠는가 말이다.

불만이 있다면 PCR 검사 비용이다. 태국을 다녀오려면 출국 전에 한 번, 태국에서 두 번, 돌아와서 두 번의 PCR 검사를 해야 했다. 귀국 후에 받는 두 번의 검사는 무료였지만, 출국 전에 한 번 그리고 태국 체류 시에 받는 두 번의 PCR 검사 비용은 전액 본인 부담이다. 검사비는 10만 원 안팎. 한국이나 태국이나 비슷하다. 여행 한 번에 1인당 세 번의 검사비용만 30만 원이 드는 셈이다. 4인 가족이라면 검사비로만 120만 원이다.

PCR 검사 음성판정은 ‘그때까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검사결과는 비행기 탑승이나 입국 과정에서만 본다. 입국과 동시에 꺼낼 일이 없어진다. 보자는 데도 없고, 꺼내놓아도 관심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PCR 검사가 증명하는 건 ‘그때까지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검사 이후에 감염됐을 수 있는데 며칠 전의 검사에서 음성을 받았든 말았든 그게 무슨 소용일까.

대신 입국 후에 여기저기서 뻔질나게 꺼내서 보여줘야 하는 건 백신접종증명서다. 호텔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는 바리케이드로 막은 카오산 로드 입구에서도 백신접종증명서 제시를 요구했다. 입국 과정에서 곧바로 ‘머차나’란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라고 안내받았다. 여행자의 동선을 체크하는 앱인데 이게 오류가 잦다.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는데, 보자는 곳도 없고 확인하는 과정도 없었다.

# 방역 택시와 병원, 그리고 호텔격리

방콕 공항의 입국신고 과정에서 보여줘야 하는 서류는 산더미다. PCR 결과지, 백신접종증명서, 타이패스, 입국신고서…. 입국신고를 마치고 나올 때는 세관신고서까지 내야 한다. 이중 가장 복잡한 게 타이패스다.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타이패스는 태국 정부의 타이패스 발급 사이트에서 개인정보와 함께 숙소 예약확인서, 여행자보험 가입 확인서, 왕복 항공권 예약서류 등을 첨부해 발송하면 발급받을 수 있다. 오기 등으로 발급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어 적어도 7일 전에는 신청을 해야 한다. 처음 해보면 만만찮지만, 한 번만 해보면 그다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입국심사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짧았다. 잔뜩 긴장했던 터라 싱겁기까지 했다. 비행기를 타고 온 승객 수가 적은 데다, 여행자의 거의 모든 정보를 이미 서류로 다 제출한 셈이니 이 정도면 뭐 더 물어볼 것도 없지 싶었다. 입국심사대 직원이 여권에 입국 도장을 쾅하고 찍어줬다. 공항 문을 나서자 남국의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다. 2년여 만에 느껴보는 이국의 공기였다.

아직은 자유가 아니다. 호텔까지는 전용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공항 앞에서 호텔의 방역 택시 기사가 이름을 적어 들고 기다리고 있다. 택시는 운전석과 승객석이 투명 아크릴로 차단돼 있다. 택시는 호텔이 아니라 근처 병원으로 먼저 갔다. 호텔과 제휴한 병원에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드라이브 스루’라고 했는데, 차 안에서 검사를 받는 건 아니고 차를 타고 검사소 의자 앞까지 가서 내리자마자 검사를 받는 방식이다. PCR 검사를 마친 뒤에야 예약한 호텔로 들어설 수 있었다.

태국 정부는 ‘무격리’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루 격리’다. 호텔에서 체크인 절차 없이 곧바로 방으로 안내됐다. PCR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호텔 방에서 격리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보통 12시간쯤 걸리니 투숙 첫날 하루는 격리다. 돈을 좀 더 내면 6시간 만에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호텔 방에는 아예 카드키가 없으니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식사도 문 앞에다 놓고 갔다. 식사와 함께 칵테일 재료가 제공됐다. 작은 병과 상자에 담긴 재료로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라는 설명서도 나왔다. 불충분한 설명서와 이름표를 붙이지 않은 재료 때문에 칵테일은 엉망이 됐지만, 격리의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호텔 측의 배려가 느껴졌다. 그리고 밤늦게 PCR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는 자유다. 이제야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카오산로드 입구에 바리케이드

클럽·옷가게·맥도날드 문 닫고

현지인 상대 작은 좌판들이 채워

차이나타운 뒷골목 ‘탈라드노이’

카페·벽화들… 이색 풍경에 탄성

# 오랜만에 허락된 여행의 즐거움

이튿날 방콕 시내를 돌아보면서 가장 먼저 느껴진 건 가라앉은 듯한 도시 분위기였다. 코로나19 이전의 방콕은 늘 분주하고 소란스러우며 달뜬 느낌이었다.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한편으로는 맥박이 힘차게 뛰는 듯한 그런 기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방콕은, 이전과 같은 도시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 마스크를 철저하게 쓰고 다녔다는 점이었다. 좀 느슨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거리의 행인들은 물론이고 대중교통 승객도, 식당이나 카페의 손님들도 모두 철저하게 마스크를 썼다. 공사판의 근로자나 좌판을 깔고 있는 노점상도 마찬가지였다.

태국은 관광대국이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합친 매출이 우리나라 GDP의 18% 정도이니, 코로나19로 인해 태국이 겪은 타격은,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동시에 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국 정부가 내국인들의 국내여행 비용의 40%를 지원하고 누적 3000바트(약 10만8000원)까지 외식 비용 50%를 대주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국가 경제의 주축인 여행산업이 몰락하면서 체감되는 태국의 경기는 말이 아니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왠지 시내에 오토바이도 줄어든 것 같았고, 자동차 경적 소리도 좀 줄어든 듯했다. 노점상의 숫자도 확연하게 줄어든 듯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이전보다 ‘자세히 보아서’일지도 모르겠다. 2년여 만의 해외 출국이니 모든 것이 다 각별하고 새삼스러웠다. 코로나19 이전이라면 예사로 지나쳤을 법한 것들을 이번에는 훨씬 더 오래, 그리고 자세히 보았다. 거리의 분위기가 얼마나 이국적인지, 유적은 얼마나 근사한지를 넘어서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전봇대 모양이며 도로의 차선 표시, 테이블에 올려진 식당의 식기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 이후에 오랜만에 허락된 여행이라면 누구든 그러지 않을까.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의 여행은 목적지가 어디가 됐든지 이전보다 만족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겠다. 떠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더 즐겁고, 더 흥미로운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얘기다.

# 카오산 로드의 안부를 묻다

방콕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카오산 로드의 안부였다. 카오산 로드는 저렴한 음식점과 숙소, 나이트라이프 명소들이 몰려있어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던 명실상부한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다. 저녁 시간에 맞춰 찾아간 카오산 로드는, 여기가 과연 그때 그곳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카오산 로드 이쪽과 저쪽 길 끝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그 안으로 들어서려면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건 물론이고 체온을 측정하고 백신접종증명서를 제시해야 했다.

행인들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야 했을 정도로 인파로 붐비던 카오산 로드의 거리는 텅 비다시피 했고 거리는 어두웠다. 골목 안쪽의 쿵쾅거리는 음악을 틀어놓은 몇몇 바에서는 서양인 관광객이 제법 눈에 띄었지만, 옷가게나 음식점 등은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다. 카오산 로드 입구의 랜드마크와도 같았던 맥도날드마저 문을 닫았다.

거리에 가득했던,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던 노점은 한 곳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카오산 로드 주변 주택가 작은 골목에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현지인을 상대로 꼬치구이와 맥주 등을 파는 노점상이 성업 중이었다. 이곳만 그런 게 아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떠난 자리는 부족하나마 띄엄띄엄 찾아오는 현지인들이 대신 채웠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방콕의 이름난 관광지가 텅 비자 오래전에 떠났던 현지인들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방콕의 한 야시장도 불 꺼진 카오산 로드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러나 내국인을 상대로 한 야시장에서는 예전의 활기찼던 분위기가 느껴졌다. 옷 몇 벌을 놓고 흥정이 벌어졌고,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국수가 볶아지고 있었다. 방콕 도심을 흘러가는 차오프라야 강변의 쇼핑몰이나 레스토랑에도 현지인 손님들이 압도적이었다. 코로나19의 와중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도 방콕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 방콕의 뒷골목을 여행하는 이유

위드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그동안 여행자들은 방콕에서 도시의 세련된 명소들을 주로 찾았다. 대규모 쇼핑몰이나 트렌디한 루프톱 바 등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목적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19 시대에는 대량 소비되는 관광지는 인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리는 곳일수록 감염의 위험이 커지는 탓이다.

태국관광청에 요청했더니 뜻밖에 이름난 관광 명소 대신 방콕 차이나타운 변두리의 작은 뒷골목을 여행지로 추천해줬다. 차이나타운 일대의 쇼핑가나 식당가는 널리 알려진 명소지만, 태국관광청이 추천한 ‘탈라드 노이’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이라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탈라드 노이란 ‘작은 시장’이라는 뜻. 아유타야가 함락된 뒤 1767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정착한 이 동네는 중국계, 베트남계, 홉키엔족, 하카족 등의 이민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본래 해운업이 중심이다가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하면서 하나둘 들어선 중고차 부품 판매상들로 기름 냄새나는 골목이 됐다. 그랬던 곳이 청년과 예술가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재탄생하면서 각국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톱니바퀴와 자동차부품이 뒹구는 자동차 폐부품 창고 위층에 할머니가 내려주는 근사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가 생겼고, 마을 한복판의 거대한 당산나무 주변은 트렌디한 기념사진 촬영 명소가 됐다. 이 동네에 매장을 낸 골동품상은, 강변의 부유한 중국인 상인 저택을 사들여서 탄성이 나올 정도의 근사한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거미줄 같은 좁은 골목마다 인상적인 벽화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탈라드 노이는 비교하자면 우리의 ‘문래동 예술촌’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이런 시도에서 눈여겨 볼 만한 건 ‘다양성의 추구’였다. 관광객을 이름난 관광명소로 한꺼번에 몰아넣는 식의 여행은 팬데믹 시대에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다양한 목적지를 발굴하고 동선을 세분화해서 관광객을 분산해야 한다. 문화 인프라를 바탕으로 관광지를 구축하면서 지역의 고유성을 되찾고, 쇠락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예술가를 지원하는 방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태국관광청이 구태여 탈라드 노이를 추천했던 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으리라.

■ 다시 여행이 시작되면 어디부터 가볼까

태국 방콕은 코로나19 직전에 새로 들어섰거나 탈바꿈한 곳들이 많다. 선보인 지 3년이 넘는 곳도 다시 방콕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새롭게 느껴진다. 팬데믹으로 2년 가까이 발이 묶였던 탓이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방콕의 마하나콘 빌딩 78층 옥상 루프톱 바에 들어선 스카이워크가 대표적이다. 방콕을 대표하는 사원 중 하나인 새벽사원은 보수공사로 5년여 동안 문이 닫혀있다가 팬데믹 1년 6개월 전쯤에 문을 열었다. 어두웠던 탑의 색깔이 보수과정을 통해 말끔한 흰색으로 탈바꿈했다. 차오프라야 강변의 거대한 쇼핑몰 ‘아이콘 시암’도 개장 1년여 만에 팬데믹을 맞았다. 다시 방콕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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