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 이병찬 "팬이란 단어.. 첫눈처럼 모든 순간이 그림 같다"

최보윤 기자 2022. 1. 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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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가수 톱 7 연쇄 인터뷰 시리즈-이병찬>
마이크 그리도 떨었는지 그땐 몰랐다
희석이와 TOP7 형들이 노래, 심리 북돋워줘
'갑작스레 얻은 인기.. '팬분들'이란 단어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다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최종 5위에 오른 이병찬/ 장련성 기자

마알간 얼굴의 이병찬(24)이 빨간 슈트 차림으로 등장했다. 붉은색은 채도에 따라 소화해내기 굉장히 어려운 컬러 중 하나. 하지만 맑고 깨끗한 피부 결 덕분인지, 난이도 어려운 복장도 그가 입으니 동화 속에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다. 사뿐사뿐 입을 뗀 그는 “저도 어렸을 때 기자 되고 싶었는데…”라고 웃는다.

어릴 때 혼자 아무 버스 타고 돌아다니고 새로운 소식 듣고 동네 소식 취재(?)하는 걸 좋아해 아버지가 “너 나중에 기자 하면 좋겠다”는 말씀에 속으로 키웠던 꿈이다. “중학교 때 역도부에 들어간 이후에도 ‘장래희망란에 기자’라고 쓴 것 같아요.” 옷매무새를 추스르더니 어릴 때 꿈꿨던 시절을 되살리는 지 표정 바꿔 말한다. “안녕하세요? 9시 뉴스 이병찬입니다.” 볼이 어느새 붉은 재킷 컬러로 물들어간다.

<어린 시절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국민가수’ 이병찬. 기자가 꿈이었지만 카메라 앞에서면 말이 어색해진다면서 “앞으로 예능은 어떻게 하죠? 잘 해야 될텐데”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촬영=최보윤 기자>

TV 뉴스 진행자의 자세를 잠시 취해보던 이병찬이 “TV조선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 최종 5위에 오른 이병찬”을 소개하려다 “제가 딕션(발음)이 좋지 않아서…”라며 수줍게 웃는다. 이병찬은 역도 유망주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색 이력에, 아이돌 외모 등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던 주인공이다. 중학교 때부터 역기를 잡아 전국 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 3관왕(2016), 역도 주니어 국가 대표 선수 발탁(2016), 경기도민체전 3관왕(2018) 등의 기록을 남겼다. ‘메달’만 바라보고 살았지만 부상과 무릎 수술로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던 그가 인생을 걸고 새롭게 도전한 노래.

그래서인지 별명도 ‘역도요정’ ‘역도소년’ ‘어린왕자’ ‘병아리찬’ ‘찬병아리’ ‘유죄인간’ ‘이폭스’ 등 여느 아이돌, 가수에게 붙는 별명 스펙트럼 중 가장 다양한 편이다. 유죄인간은 ‘팬들의 마음을 훔친 죄’라는 뜻이고, ‘폭스’는 ‘사람 홀리는 여우상’이라는 의미. 한마디로 ‘그에게 반했다’는 말이다.

◇마이크 잡고 바르르 떨던 손…나중에 화면 보니 창피했다.

–역도 선수 출신 메달 유망주가 마이크를 잡고 떨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나윤권의 ‘나였으면’을 애달프게 부르는 병찬씨 등장이후 각종 온라인에서 반응이 대단했죠.

“전 솔직히 제 손이 떨리는지도 몰랐어요. 무슨 용기로, 지원은 했는데 그때가 올해 음악 시작하고 두 달 됐을까 했던 시점이었거든요. 제가 운동은 10년 넘게 했다지만 다른 분들은 10년 넘게 노래하신 분들도 많았잖아요. 무대에 섰을 때는 뭐랄까. 머릿속이 아예 하얘지고 ‘그냥 해보자’ 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마이크 떠는 모습을 그 당시엔 자각하지 못했다며, 나중에 방송으로 알게 됐다는 이병찬. 그때는 ‘솔직히’ 창피했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고 이름이 오르내릴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더 열심히 해야 겠다 이런 생각들이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촬영=최보윤 기자>

–그 떨림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어요.

“방송으로 나왔던 때가 팀메들리 준비하고 있을 때인가, 합숙 연습이랑 촬영하는 중이어서 제 무대를 못 봤거든요. 선곡하고 무대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연락이 정말 많이 오는 거에요.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고 일어나는데 제 모습이 돌아다니는 짤(영상 클립)을 봤어요. 믿기지가 않아서, 그때도 정신이 몽롱해서 꿈같고… 난가? 나네! 마이크 떨고 하는 걸 전 몰랐어요.

첫 무대서 이병찬/TV조선

조금의 떨림이 있었던 건 알았는데 그래서 다른 손으로 잡고 끝까지 노래했거든요. (같은 팀메들리 팀원 막내 9살) 지민이가 와서 놀리고 해서 ‘이 짜식’ (웃음) 그랬는데, 그렇게 되니까 처음에는 조금 창피했어요. 덜덜덜덜 떠는 게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스타 됐다고들 하는데, 저는 사실 좀 창피했거든요. 멋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아. 정신이 없어서. 그땐 정말 잊을 수 없죠.”

–그래도 무대를 포기하지 않고 노래에 맞서는 병찬씨의 모습이 대중의 마음을 들어 올린 게 아닐까요? 당시 이석훈 김준수 마스터도 호평했고요.

“제가 그럴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행복하고 싶어서 택한 노래인데, 정말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 낮은 자세로 계속 겸손해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는 게 또 노래더라고요. 아,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정말 무뚝뚝하시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 다음 날 조선일보 신문에 제 기사 나오신 걸 오려서 집에 딱 붙여놓으신 거에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괜히 울컥하더라고요.

TV조선

그간 제 부상 때문에 마음 아프셨을거고, 어디서 속풀이도 제대로 못 하셨을 텐데…. 제가 노래하겠다는 거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씀 한마디 없던 당신께서 저렇게 신문 붙여놓으시고 아들 부담될까 표현도 제대로 못 하시고 몰래 좋아하시는 모습 보니까 정말 잘해야겠다는 마음 들더라고요.

앞으로 노래 연습 열심히 해서 부모님 목에 걸어드리지 못한 메달, 제 힘으로 전 세계에 올려 보이지 못한 태극기, 노래로 언젠가 해보려고요. 저희 탑10 형님 동생이랑 국민가수 나왔던 많은 분들이 이렇게 도와주는 데, 힘을 합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국민가수 5위에 오른 이병찬 / 장련성 기자

인터뷰를 시작하기 바로 전, 이병찬이 매니저에게 “이전에 없던 코막힘이 생겼다”며 “비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얘길 들은 손진욱이 바로 나서 “병찬아 내가 여기 약국 가서 사다줄까? 내가 뭐든 다 사다줄게”라고 말한다. 둘은 스케줄 상 먼저 와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차.

‘노래 선배’ 손진욱은 이병찬의 ‘주치의’가 된 마냥 “코막힘 심해? 어때? 일시적 세척제는 있는데 병원 가는 게 낫지 않아?”같이 살폈고, ‘병아리’ 이병찬은 손진욱에게 또 의연한 듯 애교 섞어 “형, 저 그동안 이런 적 없는데 약간 코맹맹이 소리 나는 거 비염인건가요? 열은 하나도 없긴 한데”라고 묻는다. 어느새 이들은 형제 아닌 형제가 돼 있었다.

–역도 경기로 경쟁은 많이 치러도 노래 경연은 처음이었죠. 자신과의 싸움도 있지만, 합숙을 하게 되고 팀미션 등을 하면서 이전과 다른 느낌의 경쟁을 치렀을 것 같아요.

“그 순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건 마찬가지겠죠. 동료애라는 것도 비슷할 테고요. 하지만 전 십수 년 노래 경력자에 비하면 신생아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때 (김)희석(일명 ‘반바지맨’)이를 만나게 된 건 정말 신이 도왔다 생각해요. 동갑내기이기도 하고요. ‘나였으면’ 예심 끝나고 제가 혼이 나가서 바람 쐬러 나갔는데 가장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이 희석이에요. 희석이가 우연히 저를 발견한 거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저한테 와서 노래 정말 잘한다고, 말해주는 거에요. 먼저 다가와 준 친구가 나중에 ‘톱 10′이 돼서 함께 활동할 수 있으니 정말 전 행운아인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국민가수 ‘톱10′의 막내라인분들이네요.

“희석이는 정말 멋있어요. 자기가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데도, 저한테 다가와 ‘너 노래 잘한다’ 이러면서 시원시원하게 북돋워주요. 희석이가 은근슬쩍 ‘츤데레’거든요. 관심 없는 듯한데 지나가다가 ‘너 노래 잘한다’고 휙 하고 가고. 진심인 걸 알거든요. ‘겁내지 마라’ 고 하는 데 그렇게 힘이 되는 거에요.

그리고 또 (박)장현이형은 저한테 노래 스킬(기술)이나 발성면에서 불안한 느낌 같은 걸 고쳐주신 스승이죠. 잘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주시고 제가 빨리 고치게 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심리적인 요소들은 톱 10 다른 형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희석이도 거기 가세해서, 걔도 마음이 엄청 착하고 여리고 약한 데 저한테 큰소리로 ‘쫄지마’ 이렇게 소리 내 응원해줘요. 그럴 때 얼마나 든든한데요. 다들 진심인 거 알거든요. 10명이 서로서로 의지를 많이 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최종 7인 (뒷줄 왼쪽부터) 이솔로몬, 박장현, 고은성 (앞줄 왼쪽부터)김동현, 박창근, 손진욱, 이병찬/ 장련성 기자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고 내 장단에 맞춰 춤을 춰라

–왜 노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나요?

“무릎 수술하고 휴식기 삼아 2020년 제주도에 있었거든요. 그냥 제주도가 좋아서요.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텝 생활하면서 6개월 넘게 있었는데, 그 형누나 부부가 정말 좋은 분들이었어요. 아직도 가장 연락 많이 하는 분 중 하나였고요. 그동안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아무래도 글과 공부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물론 운동도 하나의 공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식이나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게 부족했었죠. 제주에서 살면서 책방에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거기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왔어요.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거요. 행복한 일이 뭘까 하다 제가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보다 보니 음악을 듣고, 음악을 하고, 음악을 노래했던 순간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거죠.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시작하게 됐죠.”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남은 문구 같은 게 있나요?

“갑자기 말씀 주시니 당황해서…. 하핫. 아, 지금 생각난 거 있는데, 박막례 할머님 책 중에 있는 말씀인데요. 남의 장단에 맞춰 춤추려 하지 말고 네 장단에 춤이든 몸짓이든 무언가 하면 거기에 맞추려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 뉘앙스의 말씀이셨던 거 같아요. 그게 굉장히 와 닿았어요. 남이 정해놓은 기준, 삶의 행로, 거기에 억지로 저를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요. 물론 역도는 제가 선택한 일이죠.

어찌 보면 비인기 종목에, 많은 이들은 꺼릴 수 있는 일이지만 저는 원했던 거거든요. 하지만 제 몸이 제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으니 끝까지 원하는 바를 해낼 수 없었죠. 하지만 노래는, 제가 지금 해낼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는 분이, 제 마음과 같아지실 분들이 언젠가는 계실 거라 생각해요.”

국민가수 5위에 오른 이병찬/장련성 기자

–역도는 그럼 왜 시작하게 됐나요?

“방송에선 집안 형편 얘기도 나오긴 했는데, 권유도 있었고, 저도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포천중 역도부가 정말 유명하거든요. 초등학교 때야 시골이니까 산 뛰어다니고 그러면서 놀았죠. 중학교 입학식 했는데, 저희 역도부가 워낙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첫 등교 날 전교생을 다 역도장에 불러요. 역기 다 들어보라시는 거죠. 제가 체구는 왜소했는데 그걸 다 쑥쑥 잘 든 거죠.”

–튀는 아이였겠네요. 이게 바로 내 길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나요?

“에이, 처음엔 안 한다고 했죠. 역도 하면 키 안 큰다 그런 것도 있었고, 처음에는 ‘공부할 거에요’라고 했지만 계속 설득하셨어요. 집안 환경도 당시엔 금전적으로 좋은 편도 아니었어요. 지금은 아버지가 많이 노력하셔서 많이 나아졌거든요. 코치님 권유도 계속됐고 해서 단지, 형편 때문 만은 아니고 ‘해볼까’ ‘내가 진짜 재능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옛날 기사를 찾아보니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돼 일본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어요.

“몸이 부서지더라도 해내자, 그런 각오로 했어요. 꿈이 있었고.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겠지만, 메달을 향해 정말 죽을 때까지 해보자 했죠. 올림픽 금메달이요? 메달이라도 걸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죠.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몸이 부서져라 노래할 거에요.”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서 힘들었겠어요.

“수술하기 전까지 쌓이고 쌓인 과정이 굉장히 길어요. 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닳아 찢어지고 그게 반복되면서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할 정도였죠. 평상시 생활하는 것도 힘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버티고 있다가 그래도 ‘할 수 있다’고 정신력으로 버텼거든요.

결국 ‘수술해야 한다’며 두 번이나 칼을 댔는데도 고쳐지지 않으니 정말 어린 나이였지만 뭐랄까요. ‘세월이 야속하다’랄까. 그런 마음이 들었죠. 노력도 배신하는구나. 그렇게 시간을 쌓았는데 그게 다 허사구나 하는 마음이었죠.”

◇언젠간 내려올 사람이라 생각했다.

–데스매치 3위로 본선 3차 국민콘서트와 대장전을 꾸리게 됐는데요

“제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스타일인데, (아이돌팀) 박민호 형이랑 1차전부터 대화도 많이 해보고 민호형이 조언도 많이 해줬거든요. 그런데 이전 경연 스타일로 보면 데스매치 뒤에 팀전을 꾸리게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팀전을 꾸리게 되면 민호형이랑 꼭 같이 하자고 했죠.

그리고 슬기형 무대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히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슬기형을 뽑았고, 또 메들리면 퍼포먼스를 보여드려야 겠다고 생각해서 지민이와 영채는 춤도 노래도 되는 너무 보석 같은 친구들이니까 그 친구들의 힘을 빌려 보자 했던 거죠.”

국민가수 이병찬 / 장련성 기자

–슬프게 떠나보냈지만 응원을 보내는 팀원들의 메시지가 화면에도 길게 나왔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힘들었던 거 같아요. 엄청 울었거든요.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제가 왜 이런 보석 같은 사람들을 데려와서 떠나 보내야 할까. 실력 있는 팀에 들어갔으면 다 같이 올라갔을 분들인데 내가 실력이 없어 떠나 보냈구나 그런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죽을 거 같이 힘들고…그 날 떠나 보내고 그 다음 날 준결승 위해 선곡 해야 했는데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국민투표는 오랜 기간 누적 1위에 올랐어요.

“방송 상엔 그렇게 보였어도, 언젠간 내려올 사람이라 생각을 했거든요. 그 ‘1′이라는 숫자가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 자리에 잠깐이라도 올려 주신 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실력이 미천한 데,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맞는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계속 저를 눌러왔죠.

높은 인기를 유지하면서 어린왕자, 역도요정 등 다양한 애칭이 붙었다. TV조선

–그만큼 부담이 많이 됐었나봐요.

“제가 ‘팬분들’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서 내지 못했거든요. 오만한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자만하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팬’이라는 단어를 아꼈었어요.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지만, ‘내 팬’이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 들뜨고 혼자 뭐라도 된 것처럼 그런 사람처럼 보일까봐 스스로를 계속 눌러왔죠. 그러다 저를 최종 결승까지 보내주신 팬분들을 위해 노래를 준비하면서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팬분들이라고요.

최종 결승곡은 저를 좋아해주시는 ‘팬분들’께 그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아직은 부족하고 배울 게 많은 저이지만 지금까지 오게 해주신 제작진 분들과 마스터분들께, 또 방송으로 보아주신 팬분들과 모든 시청자분, 혹은 저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어떻게라도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선곡했죠.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톱7. (왼쪽부터) 이병찬, 김동현, 손진욱, 이솔로몬, 박창근, 고은성, 박장현/장련성 기자

◇악플에 상처도 많았지만…그 모든 순간이 그림 같았다.

–최종 결승전의 ‘첫눈’(원곡자 정준일)이란 인생곡에 어떤 사연이 담겨있나요?

“국민가수 하면서 힘든, 추웠던 순간, 행복했던 기억도 있었고 그렇지만 아름답고 감사한 시간이었고…. 그런 모든 것을 담아 제 마음을 들어주세요, 하는 제 목소리였어요. 첫눈이 설레잖아요. 국민가수는 제게 정말 설렘이거든요. 진짜 인생에서 이런 설렘을 어떻게 느껴보겠어요. 그런데 서늘함도 있었어요. ‘첫눈’ 도입부 가사에 보면 ‘내 마음을 한 번만 만져줘요 온종일 이렇게 서늘해요’라는 부분이 나와요.’

너무 힘들었던 순간, 노래 실력에 대한 부족함으로 쓰리고 또 쓰렸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악플에 대한 상처가 쌓였었거든요. 저는 제 부족함을 아니까 극복하고 반성하고 차츰 아물어가는데, 어머니가 저에 대한 악플을 보고 계신 걸 본 순간, 마음 한 켠이 너무 서늘해지더라고요. 그 아픔을 어떻게 말로 할 수가 없었어요. ‘진수병찬’ 팀원들을 보낼 때 마음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죠.”

–그 노래 중에서 특히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나요?

“모든 구절이 그랬어요. 평소에 알던 노래였지만 경연이 되니까 다 와 닿더라고요. 후렴구에 ‘영원을 거슬러 하루를 아니 일분을 보게 돼도 그럴 수 있다면 견뎌낼게’ 그게 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했어요. 전 견딜 테니까 옆에 계셔주세요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저도 관심 받으니 정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잃고 싶지 않았어요. 떠나가는 게 무서웠고, 누르고 누르고, 겸손 겸손, 했지만 두려움이 있었어요.

‘나를 떠나가면 어떡하지….’ 저도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앞으로 노래 열심히 할거에요. 모자란 거 너무 잘 알아요. 여기 살아남은 분 중에, 아니 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에 비해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 계속 단련하면서 매번 나아지고, 또 단련하고, 정말 열심히 할게요. 기다려주세요’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팬들에 대한 간절함이 상당했겠네요.

“노래 중에 ‘내겐 그림같았던 그대와 기억 아주 오래 기다렸던 선물같은 하루’이란 구절이 있거든요. 지금껏 달려왔던 길이 너무나 꿈같고 그림 같은 거에요. 지금도 숨쉬는 게 너무 행복하고 여기 있다는 게 정말 고맙거든요. 노래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마지막 가사가 ‘조용히 한 번만 들어봐요 나직이 울리는 내 마음을’ 이렇게 끝나는데, 정말 그것만 들려드려도 좋겠다. 그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더라도. 그동안 여러 노래를 불러왔지만, 이 노래는 정말 저를 여기까지 지켜주시고 감싸주고 아껴주신 팬분들, 제작진, 마스터 분께, 방송으로 보셨든, 저를 모르시던 분이더라도 정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국민가수가 이병찬이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됐을까요?

“꿈? 꿈을 꿨던 ‘가수’란 직업에 발판이 돼 주기도 했고, 국민가수에 임하면서 꿈 같은 순간도 많았죠. 다른 꿈의 의미로, 꿈꾸는 거 같고 몽롱하기도 하고요(웃음). 꿈이 잘 기억 안 나잖아요. 모든 순간들 다 기억하고 싶은데, 이걸 다 안고 평생 살아가고 싶은데. 꿈결처럼, 그림처럼 제 마음에 새겨진 것 같아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진짜 제가 부족한 거 정말 잘 아는데, 이제 다 끝났지만 최종 결승곡 ‘첫 눈’은 제가 어떤 마음으로 불렀는지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노래 열심히 했어요’가 아니라, ‘제 마음을 담았다’는 걸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분께 전달드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거든요. 제가 소셜 미디어에도 뭘 쓰게 되면, 왠지 저한테 더 관심 가져 달라든지, 상업적으로 되는 거 같아 그렇게 비추고 싶진 않았어요. 제 진심을 담아 말씀을 전하고 싶더라고요. 정말 평생 진심을 담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열심히, 낮은 자세로 겸손히 하겠다는 이병찬. 촬영=최보윤 기자>

–매 순간이 그림 같았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정말 꿈처럼 몽롱하고, 그러면서도 전혀 잊고 싶지 않고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평생 담고 싶은 시간들이에요.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꿈 같은 걸요. 그런데 어쩌면 이게 괜한 말씀일 수도 있는데, 지난 결승 1라운드 때 LED 전광판에 10등으로 제 이름이 두 번 나왔잖아요.

김성주 MC님이 저한테 사과하시는 데 저는 사과를 바란 것도 아니고, 왜 저한테 사과하시는 지도 몰랐거든요. 저는 결승 무대 기분 좋게 치뤘고, 정말 너무 감사하게도 문자 투표 제외하고 4위라는 높은 순위까지 차지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가 정말 오만하고 자만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요?

“열 명에 포함된 것만 해도 국민께 절을 올려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오류라는 발표처럼) 나는 10등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는 게 얼마나 자만했는가 하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두 번째도 ‘10위’라고 나왔잖아요. 그때 ‘자각하라’라는 계시구나 했지요.

부모님한테 ‘제가 너무 자만하고 오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고해하듯 말씀드렸어요. 자칫하면 ‘이병찬 이러다 연예인 병 걸리겠다. 한 번에 훅 가겠다’란 생각에 몸서리쳤죠. 앞으로 살아갈 때 그 장면을 평생 머릿속에 담으려고요. 제겐 정말 감사한 순간이에요. 겸손해 지고 싶거든요. 그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요. ”

그는 경연 당시 친하게 진했던 (박)민호형이 메이크업 받는게 신기해 '저도 저렇게 해주실 수 있냐'고 부탁해 따라했다고. 굉장히 자신이 특별해 보이고 마음에 들었단다. 하지만 정작 녹화장에서나 시청자 반응 역시 안좋아서 메이크업 선생님께 누가 갈까봐 굉장히 죄송했다고. 그가 '헤헷'하고 웃으며 "그래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해보고 싶다" 말한다. /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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