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역사왜곡과 재해석 사이, 그럼에도 흠뻑 빠져들었던 건

정덕현 칼럼니스트 입력 2022. 1. 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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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옷소매' 이준호와 이세영에게 이토록 열광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전하. 정녕 신첩을 아끼셨사옵니까? 그럼 부디 다음 생에서는 신첩을 보시더라도 모르는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 주시옵소서. 전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미워하는 것도 아니옵니다. 그저 다음 생에는 신첩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이옵니다."

MBC 토일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성덕임(이세영)은 정조(이준호)에게 죽어가는 순간 그런 이야기를 건넨다. 보통의 비극적인 멜로의 마지막 순간 등장하곤 하던 대사와는 너무나 다르다. 다음 생에도 다시 사랑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생에는 자신을 놔 달라니.

정조는 그 의외의 말에 아파하며 묻는 너는 나를 조금도 연모하지 않았던 것이냐고. 하지만 그건 아이의 보챔 같은 것이었다. 성덕임은 "내키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멀리 달아났을 것"이라는 말로 결국 그의 곁에 남기로 한 건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답한다. 그는 정조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가 그만큼 원한 건 자유로운 삶이었다.

바로 이 부분은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멜로 사극이 여타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지점을 드러낸다. 왕에게 간택을 받고 빈이 되는 신데렐라의 사극 버전이 아니라, 어쩌다 살아남기 위해 궁녀가 되고 왕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며 세자와 옹주를 출생시키고 여인으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그것보다 자유로운 자신의 삶을 원했던 자못 현대적인 여성 서사 버전으로 그리고 있어서다.

진짜 역사 속 의빈 성씨는 드라마와는 달랐을 수 있지만, 그 소재를 가져와 <옷소매 붉은 끝동>이 그리려 한 건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의빈 성씨였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궁에서의 삶은 그 위치가 어디에 있든 부러워할만한 그런 삶들이 아니었다. 정조와는 '불가근 불가원'으로 협력하면서도 대결했던 중전 김씨(장희진)가 오라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하는 말은 그 삶이 어떠한가를 잘 드러낸다.

"오라비가 죽었는데 상복을 입지 못합니다. 조문조차 가지 못해요. 이 구중궁궐에 갇혀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 이곳에 가두었을까요? 아홉 개의 담장을 둘러 가두고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가뒀을까요? 궁궐은 참으로 화려한 감옥이지요." 궁녀로서 사통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후 죽임을 당한 성덕임의 동무 영희(이은샘)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슬플 걸 알면서도 전 그냥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궁녀로서 감히 꿈꿀 수 없는 행복을 맛봤어요. 그 대가가 죽음이라도 난 상관없어요."

모든 걸 다 손에 쥔 권력자라도 사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궁에서의 삶. 그것은 궁녀들이나 중전만이 아닌 왕도 마찬가지고 의빈 성씨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홍역으로 죽었는 데도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그래서 <옷소매 붉은 끝동>의 궁은 모두가 들어가길 꿈꾸는 그런 곳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묶어 버리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 죽어야 비로소 떠날 수 있는.

성덕임이라는 드라마가 재창조해낸 인물이 지금의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 건 바로 이 사랑과 더불어 자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현재적 시선이 투영된 캐릭터 덕분이다. 또한 성덕임이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끝까지 사랑한 정조 또한 현재적 관점으로 재탄생된 캐릭터다. 그는 왕의 권력으로 성덕임의 사랑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끝까지 구애했고 마지막까지 애틋해 했다. 사랑하면서도 성덕임이 원하는 자유를 억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삶의 조건들은 그들의 자유로운 삶과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네 삶에도 똑같은 공명을 주는 것일 게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원하면서도 자유를 꿈꾸지 않는가. 한 순간의 꿈처럼 지나가버리는 삶 속에서 그런 이율배반적인 욕망은 결코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한 평생 저마다의 궁에 갇혀 우리는 살아가는 지도.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의빈 성씨의 실제 비극적인 역사 속 이야기를 가져와 우리네 삶의 쓸쓸함을 담아내면서, 그럼에도 그것이 왜 위대한가를 긍정해낸다. 죽은 성덕임을 끝내 그리워한 정조가 문득 잠에서 깨어 대전으로 돌아가려다 다시 성덕임에게 다가와 무엇이 진짜 소중했던가를 말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있어야할 곳은 여기다. 알고 보니 시간이 많지 않더구나. 기다릴 여유도 없었고. 그러니 날 사랑해라. 제발. 날 사랑해라...."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와 성덕임의 목소리를 빌어 어떻게 순간이 영원이 되는가를 설파한다. '이것이 과거라 해도 좋다. 꿈이라 해도 좋아. 죽음이어도 상관없어. 오직 너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바랄 것이다. 이 순간이 변하지 않기를.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그리고 '그리하여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는 마치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덕임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그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 현재에 한 순간을 살았던 저들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는 한 이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전한다.

궁녀의 관점에서 그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그럼에도 추구했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어 우리는 성덕임이라는 인물에 빠져들었을 게다. 그리고 그런 인물을 옆에서 애틋하게 바라보는 정조라는 인물에도. 순간의 짧은 삶과 사랑이 헛되지 않다는 긍정 또한 이 드라마는 실증해낸다. 그들의 실제 순간(역사적 사실)이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의 기억과 기록 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역사적 소재를 가져와 결코 부박하게 그리지 않고 보다 깊이를 더한 해석을 담아낸 작가와, 이를 유려한 연출로 담아낸 감독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수백 년 전의 인물들을 현재적 관점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만든 배우들, 특히 이준호와 이세영의 연기도. 좋은 작품의 좋은 캐릭터가 좋은 연기자들과 작가와 감독의 잠재성을 깨워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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