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가기 전에 스마트폰 클리닝

류가영 2021. 12. 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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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정리보다 스마트폰 정리가 더 시급한 연말. 사진첩과 메모장, SNS에 한가득 저장된 데이터까지 '탈탈' 털었다.

매년 12월 하는 방 대청소를 올해는 조금 일찍 시작했다. 연말엔 기필코 스마트폰 정리를 해야겠다는 다짐에서였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사진 앱을 켜고 스크린 샷 정리를 시작한 적 있다. 일 때문에 캡처해 둔 사진부터 한때 ‘저장각’을 불렀으나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사물, 장소에 대한 것까지. 한 장 한 장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고, 결국 해가 뜨도록 1600여 장의 스크린 샷을 한 번도 채 훑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마트폰에 필요 이상으로 쌓이는 정보는 사진만이 아니었다. 목적이 불분명한 메모들과 카카오톡에서 나한테 보내놓은 두서 없는 메모와 링크들, ‘언젠가는 보겠지’라며 인스타그램에 저장한 정보와 북마크까지, 이미 포화 상태인 각종 드라이브는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저장 용량이 꽉 찼습니다. 더 큰 용량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4GB의 외장 메모리 칩 장착이 필수인 2G폰을 쓰던 학창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갖게 된 내장 메모리 8GB짜리 아이폰 4S. 이후 시간이 흐르며 스마트폰 저장 공간은 꾸준히 확장돼 왔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 13은 최소 용량이 무려 128GB부터 시작하고, 이마저 충분하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성실하게 불필요한 데이터를 그때그때 정리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어느 날 맞닥뜨린 ‘저장 공간 부족’ 메시지에 황급히 사진을 지우며 용량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쌓이는 데이터를 참지 못한 빅 테크 기업에서는 그 틈에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카카오톡은 전송한 지 2주가 지난 사진과 영상을 자동적으로 삭제해 줌으로써 저장 공간을 관리한다. 애플에서는 애플 기기 간의 편리한 데이터 연동과 백업을 위해 개발한 아이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덩달아 용량까지 절약해 준다(여기서부터는 돈을 내야 하지만). 보유 중인 사진과 영상을 전부 저화질로 대체해 저장해 두고 이후 사진을 클릭할 때마다 고화질 원본을 다운로드해 보여주는 원리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이 필요에 따라 MS 원드라이브, 네이버 마이박스, 구글 포토 같은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통해 부족한 용량을 보충하며 정보를 쌓아간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은 영원히 부족하다. 우린 평생 동안 데이터를 축적하며 살아갈 테니까. 매달 3300원에 200GB 용량을 추가로 쓰는 지금의 아이클라우드 요금제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생각 대신 지금이라도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스킬을 배워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슬금슬금 기울었다.

책상 위를 깨끗하게 쓰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기에 앞서 더러운 책상부터 치워야 했다. 일단 나는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 구석을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시작은 다시 사진첩.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리얼 심플〉에서 소개한 ‘아이폰 사진 정리 기술’ 기사가 꽤 도움이 됐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중복 사진을 삭제하는 것. 동일한 여행지도 아니고, 동상 앞에서라든지 겨우 한 시간 머무른 카페에서 찍은 수십 장의 사진들, 같은 인물을 티도 안 나는 여러 각도로 연속 촬영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컷만 남기는 작업을 반복하며 사진첩의 몸집을 줄여나갔다. ‘사진청소기’ ‘스마트 클리너’ 등 자동적으로 유사한 사진을 모아 보여주는 앱을 활용하면 시간은 훨씬 줄어든다. 다음은 스크린 샷. 기사에서 말하길 스크린 샷은 수명이 가장 짧은 사진으로, 우리는 이 사진이 담고 있는 정보가 더 이상 필요 없거나 잊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바로바로 정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라는 말이 정말 합리적으로 들렸다. 회의 준비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캡처한 정보들, 이미 구매한 부츠와 그럼으로써 탈락한 다른 부츠 후보군들의 이미지, 순간적으로 크게 공감했던 방송 장면과 뉴스 기사,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캡처한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의구심도 잠시, 과감히 삭제를 눌렀다. 정말 필요한 정보라면 30일 후 사진이 영구 삭제되기 전에 아차 싶은 마음으로 복구 버튼을 누르게 될 테니까. 물론 보물 같은 정보도 많았다. 보고 싶어 공개될 날만 기다렸지만 잊고 있었던 영화와 출간되면 바로 구매하겠다며 ‘찜’해 둔 책들, 우연히 방문한 카페에서 겨우겨우 음성 검색으로 찾아낸 음악의 앨범 커버를 캡처한 사진처럼.

기억하고 싶은 정보를 더 이상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는 메모 앱을 켰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을 각각 영화, 책, 음악이란 카테고리로 나뉜 한 장의 메모로 압축시켰다. 영화 포스터를 캡처한 이미지가 나오면 메모장에 영화 제목과 장르를 적고 이미지를 지우는 식으로. 머지않아 테마별로 주르르 정리된 간결한 리스트가 눈앞에 나타났고, 올 연말은 이 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나가며 보내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미지와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린 한 줄의 기록으로도 충분한 데이터를 무의식적으로 덩이가 큰 이미지로 만들어버리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다행히 이번 디지털 청소를 통해 나는 늦기 전에 기록을 차곡차곡 한곳에 모을 수 있었고, 소중한 과거의 발견을 잊지 않게 됐다. ‘위시리스트’ ‘방문하고 싶은 장소’ 등 카테고리에 따라 얼마든지 더 많은 이미지를 말끔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잘 모아두면 그때그때 삭제하기도 쉽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보가 쌓일 일도 줄어든다. 핀터레스트에 저장된 사진이 스마트폰 사진보다 정리하기 쉬웠던 건 폴더별로 분류가 잘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깨달음으로 나는 인스타그램 ‘부계정’까지 만들게 됐다. 팔로한 계정 수가 1000명을 넘어가면서 인스타그램 피드의 업데이트 속도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 됐고, 너무 쉽게 팔로한 나머지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 수많은 계정도 수두룩했다. 트렌드와 근사한 취향을 발견하는 ‘일’을 위한 계정과 내 취향에 집중한 계정을 구분하자 내 삶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가 뒤섞여 있을 땐 내가 무엇을 ‘팔로’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흐려졌는데 말이다.

이제 남은 건 2019년 2월부터 이어져온 카카오톡 속 ‘나와의 채팅’. 다행히 사진과 동영상, 파일은 정해진 유효기간에 의해 알아서 정리되고 있었고, 다시 열어볼 수 없으니 고민 없이 삭제하면 됐다. 내가 집중해야 할 건 메모와 링크 쪽이었다. IT동아의 유튜브 콘텐츠 중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를 메모장으로 활용하는 법’이 참고할 만했다. 채팅방 오른쪽 위 ‘톡서랍’이란 항목을 클릭하면 정보를 유형별로 모아 보여주는데, 특히 마음에 들었던 기능은 여러 개의 메모를 하나로 합칠 수 있다는 것. 같은 날 적힌 여러 개의 메모라든지 엇비슷한 주제를 가진 메모들을 합치고 모으니 총 796개였던 메모가 최종 50개 안팎으로 압축됐다. 온갖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기획회의 때 필요한 아이디어 등 곳곳에 흩뿌려놓은 정보들이 한곳에 모이며 확실한 존재감을 갖게 됐다. 덩달아 내가 이 정보를 기억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물론 모든 데이터를 항상 말끔하게 정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삶은 이미 디지털 세계로 무한 확장됐고, 대화를 나누거나 쇼핑을 즐기고, 때론 영감에 사로잡혀 스마트폰 속에서 뛰노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정보는 언제나 치우는 속도보다 빠르게 쌓이니까. 다만 무심결에 처박아둔 데이터를 치우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돌아보지도 않을 정보를 왜 이토록 곳곳에 강박적으로 쌓아뒀을까? 나의 드라이브 클리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폰 메모장과 스케줄 관리 앱을 들여다보고, 업무 파일을 주고받는 동안 꽉 차버린 구글 드라이브와 수많은 쇼핑몰 속 위시리스트도 재점검해 봐야 한다. 노트북과 아이패드도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 저장해 둔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벗어던지려 한다. 스크린 샷과 저장, 무신경한 ‘보내기’ 버튼을 ‘탭’하기 전에 되뇔 것이다. ‘이건 기록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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