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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공동선언, 취임 후 위원회 구성…주목받은 안철수 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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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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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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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가 연금개혁 공약을 제시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한국연금학회가 지난 27일 주최한 ‘대선후보 연금공약 토론회’에서 언론인 패널들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를 이렇게 평가했다. 학회 측이 한 달 전부터 각 후보 캠프에 “공약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대부분 내지 않았고 안 후보만 지난달 23일 발표했다. 이날 토론회는 하마터면 열리지 못 할 뻔했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 공약 제시는 고사하고 책임자가 나오지 않겠다고 해서다. 26일 밤에서야 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대위의 문진영 포용복지국가위원회 위원장(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선대위의 안상훈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정책본부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 나오기로 확정됐다. 토론회 시작 19시간 전이었다.

공약 토론회에 안 후보만 제출
“각 후보들 눈치보기” 비판 거세
연금개혁 필요성은 모두 인정
“국민연금 재정안정부터 논의를”

세 후보의 정책 책임자는 토론회에 공약을 가져오지 않았다. 문진영 위원장은 “이 후보 선대위 어디에도 공약을 낸 적이 없다”고 했고, 안상훈 본부장은 “윤 후보가 여러 각도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넘어갔다. 정의당 김병권 공동정책본부장도 “사안이 중대해서 몇 가지 옵션을 두고 조율 중”이라고 했다.

이재명 “어떻게 한다는 자체가 독선”

대선 후보의 연금 공약.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선 후보의 연금 공약.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재명 후보는 연금개혁에 부정적이다. 지난 7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연금개혁 질문을 받고 “해야 하는 건 맞다고 보지만 공약으로 할지는 검토해야 한다”며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제 임기 안에 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 없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KBS 일요진단에서는 “이해관계가 너무 심하게 충돌하고 누가 머릿속에서 생각해내 가지고 딱 결정해서 집행할 수 있는 현안이 못 된다. 아마 나라가 들썩거릴 사안이다. (중략) 선거국면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책임해 보일 수는 있는데 연금개혁은 해야 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론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어떻게 하겠다’라는 것 자체가 독선에 가깝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 1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결국 많이 걷고 적게 줘야 한다는 것 아니겠냐”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윤 후보는 “솔직히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 무조건 선거에서 지게 돼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문제”라며 “대통령이 되면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임기 내에 반드시 그랜드플랜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종합하면 빅2 후보의 연금개혁 방안은 공약으로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리니언시(leniency)의 역 리니언시’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전 인사혁신처장)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리니언시는 기업이 담합을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을 면제·감면해주는 제도다. 이 교수는 “후보들이 먼저 (연금개혁 방안을) 얘기하면 손해라고 생각해서인지 얘기 안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철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본부장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누가 먼저 칼을 뽑을지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재정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건복지부]

이날 토론회에서 김근태 국민의당 청년최고위원은 안철수 후보의 공약을 소개했다.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공무원·군인·사학)의 단계적 통합 ▶범국민 공적연금 개혁추진회의 설치 ▶여야 대선후보의 ‘공적연금 개혁 공동선언’이 핵심이다. 이중 개혁기구 설치와 공동선언이 눈길을 끌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연금개혁은 비인기 정책이라서 선거 앞두고 피하려 한다. 안 후보의 공동선언 제안은 의미 있다. 미리 합의해서 회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4명의 후보가 연금개혁 필요성은 인정한다. 방법에 차이가 있다. 연금개혁 공동선언, 취임 후 개혁위원회 설치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 위원장은 “취임 직후 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지속해서 유지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본부장은 “다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따르겠다. 우리는 내로남불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병권 본부장은 “심 후보가 연금개혁 공약을 곧 발표할 것”이라며 “공동선언도 후보에게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패널들은 “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지난 8월 발의한 ‘국민연금개혁위원회 설치 법률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연금으론 안 되니 다층보장을

대부분의 후보 측은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없으니 퇴직·기초·개인연금에다 기초생활보장제를 아우르는 다층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의당 김 본부장은 “국민연금 재정 불안을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보험료(현재 9%)를 12%로 올리고, 50대 이상의 고용시장과 연동해 연금수령 개시연령(2033년 65세)을 늦추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문 정부 출범 후 연금개혁이 답보 상태다. 사지선다 안을 냈지만 논의하지 않았고, 논점을 흩트렸다”고 지적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가 할 일을 다음 정부로 넘겼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구체적인 개혁안을 공약으로 내는 게 비현실적이다. 연금개혁 약속과 원칙을 밝히고 연금개혁기구를 설치해 노후소득보장, 지속가능성, 국민부담률 상향 조정이라는 세 가지를 포함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