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에 7등급" 문의하자.."무조건 외제차 됩니다"

나경연,송태화 2021. 12. 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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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어의 세계] ③ 카푸어 부추기는 구매 제도..관리·감독은 어떻게
본지 기자가 직접 'ㅇㅇ모터스' 딜러에게 가상의 조건으로 상담을 받아봤다. 카카오톡 메시지 상담 화면.


‘신용 7등급 무직자도 외제차 전액 할부 가능!’

포털사이트에 중고차, 외제차 관련 키워드만 검색해도 이와 같은 문구를 내세워 광고하는 업체 수백 개가 컴퓨터 화면에 가득 찬다. 본지 기자가 직접 28일 ‘○○모터스’라는 업체가 블로그에 공개한 카카오톡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내봤다. 이후 곧바로 딜러의 답장이 도착했고 상담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딜러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몇 가지만 물어본 뒤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가 가상으로 설정한 조건은 ‘27살, 무직자, 신용점수 600점 초반, 신용카드 3개 사용, 카드론 대출 500, 카드론으로 점수 하락’ 등이었다. 딜러는 신용정보 등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 통화를 마쳤다. 잠시 후 확신에 찬 딜러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객님, 무조건 가능합니다. 한도 열어드리겠습니다”.

중고차값 최대로 부풀려…‘여유자금’ 대출 성행
게티이미지뱅크.

딜러와 기자가 참여한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중고차 문의, 여유자금 확보 말보단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라는 공지글이 게재돼 있다. 통상 ‘여유자금 확보’란 표현은 실제 차량 금액보다 부풀려 대출을 받아내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취등록세와 보험비 등 부대비용부터 생활비까지 순수 차량 금액 외에 돈이 더 필요할 때를 대비해 조작한 거래 명세를 대부업체 측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중고 외제차 구매자 이태환(가명·26)씨는 캐피털사로부터 48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는 4800만원이 기재된 거래 자료를 제출했으나 딜러에게 현금 500만원을 환급받았다고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실제 매입 금액은 4300만원이지만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차량 시세의 최대 금액 수준으로 명세를 부풀린 것이다. 이씨가 갚아야 할 총부채 원리금과 이자는 더 늘어나게 된다.

유례없는 ‘대출대란’ 속에서도 평균 이하의 신용으로 자동차대출(오토론)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이유는 처음부터 구매 차량을 ‘저당’ 잡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근저당권 설정 비율은 50~70% 수준이다. 대출 시행과 동시에 바로 저당에 들어간다는 점이 무조건 소득이 있어야 하는 신용대출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평균적으로 나이스 기준 신용점수 630점(옛 7등급) 이상의 군필 남성이면 오토론 상품 이용에 문제가 없다.

당국도 이른바 중고차 ‘여유자금 대출’로 불리는 이 관행을 인지하고 제도 개선을 통해 근절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예전부터 여유자금 대출은 중고차 판매 시장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며 “지난해부터 가이드라인과 지침 마련 등을 통해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바로잡으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득 고려 않는 무분별한 대출, 일정 제재 필요”
국민일보 DB

소득이 없는 20, 30대의 오토론 이용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연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위험성을 갖는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오토론 연령별 자동차대출 취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4월 기준 11개 시중은행과 13개 저축은행의 오토론 상품 이용 고객 중 20, 30대의 대출 잔액과 연체 잔액은 전체 연령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시중은행의 오토론 상품 이용 고객 중 20, 30대의 대출 잔액은 2조8177억원, 연체 잔액은 116억원이다. 같은 연령대 저축은행 오토론 상품 이용 고객의 대출 잔액은 164억2100만원이고 연체 잔액은 34억5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상품의 연체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소득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버거운 청년들이 빚의 굴레에 빠지는 일이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상품 이용 청년들의 연쇄적인 연체를 막기 위해서라도 금융 당국이 적극적으로 오토론 대출 취급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품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소비자를 현혹하고 위험성을 감추는 마케팅 방법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당국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20대 초반 청년들이 금융 상품이나 신용 관리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청년을 대상으로 과소비를 조장하고 자칫 신용불량자로 빠질 수 있는 상품을 마구 취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제차는 주택과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 아닌 만큼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대출과는 다른 더 엄격한 기준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주택과 같은 주택담보대출은 가능 범위를 최대한 넓혀서 대출을 취급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는 다르다. 주택처럼 반드시 필수재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대출 취급 시 신용 등급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관련 대출을 다 막을 순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소득이 없거나 신용이 떨어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대출 취급을 제한하도록 당국이 금융사에 권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국도 직업과 소득이 없는 20대 청년들을 상대로 하는 오토론의 무분별한 마케팅 방식에 대해서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오토론 상품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보기 힘들지만, 무직자도 대출받을 수 있다며 마케팅하는 방식은 큰 문제”라며 “대출자가 실질적인 소득으로 상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권유해야 하는데 금융사들이 이런 지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카푸어 문제가 사회적으로 더 확산하면 오토론 상품 영업 행위 시 무직자 대출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이상 취급하지 말라는 개선책 요청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카푸어 확산, 사회적 비용 야기하기도
게티이미지뱅크.

집 대신 자동차를 사든 말든, 내 돈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년 카푸어들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20, 30대 내내 채무에 쫓기게 되는 상황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경제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생산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데 카푸어의 경우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의 부양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채무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분별한 소비로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를 놓친 채 낙오한 이들을 위해 결국 사회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얘기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 경제 측면에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이 많다. 카푸어들의 경우 자동차 비용에 허덕이느라 다른 소비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카푸어들이 구매하는 차량은 국산보다 훨씬 비싼 외제차가 많다는 점도 위험요소로 꼽힌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소비가 많아야 경제가 굴러가는 것은 맞지만, 여유 자금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필수 자금을 사치품에 지출하면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지출에 제약이 간다”며 “거시적으로 볼 때 경제 선순환에도 좋지 않고 결국 가계대출 증가로도 연결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적절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며 “유튜브 등에 나오는 관련 콘텐츠의 광고 영향력이 압도적인데 이런 부분부터 적절하게 제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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