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대학에 반기 든 '딥 스프링스 대학'
무료로 교육받는 대신, 고강도 육체노동
사막 한 가운데서 봉사 정신 투철한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
남성만 받아들였던 '카우보이 대학'…최근 여학생도 입학 허가
서서히 나빠지고 있던 경기가 코로나 사태로 더 악화되면서, 대학 교육이 과연 비용 대비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육의 비용을 대출해 충당하 졸업과 동시에 큰 빚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대학교육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더 커지고 있는 추세다.
상당수의 미국 대학생들은 집을 떠나 기숙사에 살면서 저녁이면 대학 타운의 술집이나 친구들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대학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코로나 사태로 실제 수업 출석생 수는 현저히 줄었어도, 캠퍼스 주변 술집들은 주말 저녁이면 학생들로 넘쳐난다. 대학 교육의 비용을 생각해보면, 과연 대학 4년이 학생들의 인간적 덕성과 전문적 능력 신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 소재 '딥 스프링스 대학' (Deep springs college)은 전통적 대학의 운영 방식과 대학 문화에 반대하여, 1917년 전기 분야의 거부인 루시엔 루시우스 넌이 설립한 실험적인 학교이다. 이 대학은 수업료가 무료인 대신, 조건이 있다. 캘리포니아 사막 한 가운데 동 떨어진 캠퍼스에 와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젖도 짜고, 소도 몰며, 농장에서 일도 하고, 캠퍼스 빌딩 보수도 하는 등 육체 노동이 필수적이다.
근 백년 동안 남학생만 받아들이던 이 대학이 거의 10년에 걸친 법적 공방 끝에 2018년 여학생들에게도 처음으로 입학을 허가했다. 그간 기자 등 미디어의 접근을 거부해 오다가 최근에서야 기자들의 총장 인터뷰, 캠퍼스 방문 등을 허락함으로서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이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는 학생들은 평균 SAT 성적이 1500점에 달할 정도로 학업 성적이 월등하다. 미국내 어느 대학이든 골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한 해 약 300명이 지원해 13명 정도만 받아들인다. 입학률이 5퍼센트 수준인 하버드대학보다 더 치열한 경쟁률이다. 2년제 대학이므로 총 재학생의 수는 대략 26명 가량이 되는데,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코넬,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등 엘리트 대학으로 편입을 하여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한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비용이 무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이 대학의 설립 이념인 봉사, 자립, 리더쉽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학생입장에서 쉽지는 않은 결정이다. 캠퍼스의 위치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동네는 차로 한 시간 떨어져 있고,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이' 사막 한 가운데에 위치한 지역에서 2년 동안 살아야 한다. 재학 기간동안 캠퍼스를 벗어날 수 없다는 엄격한 교칙 때문에, 집에도 갈 수 없다. 또 음주, 약물 등은 엄격히 금지되고, 주말 파티 따위는 없다. 사회와 분리하여 자신의 교육과 봉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 밖에도,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규칙을 정하여 SNS도 끊고, 인터넷 사용도 스스로 제한한다. 강도 높은 육체 노동도 해야 한다. 학과 공부를 하는 것 외의 많은 시간을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에 사용한다. 소젖을 짜야 우유를 마실 수 있고, 농사를 지어야 요리를 할 재료가 생긴다. 사소한 기숙사 시설 보수도 스스로 하고 소떼를 몰고 나가 방목하는 것도 학생들이 돌아가며 책임진다. 육체노동을 통해 자립 정신을 기르는 것이다. 집안 일은 거들지 않아도 좋으니 공부만 잘 하라고 독려하는 우리 학부모들에게 시사점이 많은 대목이다.
학생들은 금요일 저녁에 모여, 학교 운영 제반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거나 변경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의논하여 결정한다. 직접 민주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기숙사 페인트 색깔을 정하는 것부터, 이번 학기에 무슨 과목을 개설할 지, 교수는 누구를 고용할 것 인가 등의 중요한 결정까지 망라한다. 요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금요일에 열리는 학생 자치 회의 ©Deep springs college 웹사이트
이 학교의 운영 공식은 아주 간단하다. 똑똑한 아이들을 사회와 뚝 떨어진 고립된 곳에 데려와서, 수준 높은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강도 높은 육체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들 끼리 모든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리며 자신들의 교육 및 제반 학교 운영에 책임을 지게 하면,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는 젊은 지도자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이 대학의 모토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공동체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나서서 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기르는 것이다. 많은 전통적 대학은 설립 이념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도량이 큰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지만, 학생들이 스펙을 쌓아 더 좋은 보수를 받는 직업 준비를 시키는 것에 급급한 경우가 허다하다.
딥 스프링스 대학이 백년 넘게 진행해 온 실험은 꽤 성공적인 듯 하다. 이 대학을 거쳐간 사람들 중 유명 물리학자, 외교관, 퓰리쳐상 수상 언론인, 맥아더 천재 그랜트 수상자 등이 있을 정도로 성공적인 졸업생들이 많다.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내에서는 이 대학 이외에도 알라스카의 '아우터 코스트' 혹은 '타이드라인즈 교육기관' 등의 실험적 대학들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전통적 대학 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물론 이런 실험적 학교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들 대학들이 제공하는 교육 경험들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들어, 엄청난 기부금이 필요하다. 졸업생들의 기부금으로 재학생들 장학금을 충당하고 있으나, 이런 고비용 구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교육 모델이라 하더라도 널리 확장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딥 스프링스 대학이 최근 미디어에 주목 받은 것은 개교 후 백년이 지나서야 여학생들의 입학이 허가되었기 때문이지만, 이 학교 학생들 및 교직원들은 여학생 입학이 학교 교육 과정이나 운영 방식 등에 무슨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학교 캠퍼스에 있는 저수지에서 아침에 학생들이 알몸으로 수영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여학생들이 입학한 뒤, 이 문제가 학생 자치 회의에서 논의에 부쳐지는 정도의 해프닝이 있었다. 투표 결과는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국 = 심성옥 글로벌 리포터 serena.shim@gmail.com
■ 필자 소개
현 미국 인디애나 주 소재 볼 주립 대학교 교수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교육 심리학 박사
미국 심리학회 (APA) 산하 교육 심리협회 서기
Education Psychology 교육 전문 저널 부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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