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MZ세대] 2021년 대한민국은 ‘MZ’로 통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7 10: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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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문화 전반에서 ‘열풍의 핵’
각 분야별로 선정된 인물들도 MZ 키워드가 관통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인물’은 ‘MZ세대’였다. MZ세대는 1980~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0년대 초 사이 태어난 X세대를 통칭한 세대를 의미한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MZ세대는 현재 지지율 1·2위를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막판 경합을 벌이다 최종 1위로 선정됐다.

분야별 올해의 인물도 역시 MZ세대가 관통했다. 올해의 정치 인물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경제 인물에 선정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50대로 MZ세대는 아니지만 기존 재벌가 총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젊은 소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받았다. IT·의과학 인물의 가상인간 로지(22세 여성), 연예 인물의 BTS, 스포츠 인물의 김연경 또한 MZ세대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스타들이다.

매년 송년호에서 발표되는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은 세 번의 절차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먼저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이 지난 한 해 각 분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또는 사건·현상 등)을 추천한다. 기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후보군을 만든 후 시사저널 홈페이지를 방문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다시 최종 선정 작업에 돌입한다.

#1 “성과급 산출 방식을 공개해 달라.” 2021년 1월 SK하이닉스 입사 4년 차 직원이 이석희 사장 등 구성원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경쟁사 대비 성과급이 적은 데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였다. 최태원 회장은 곧장 연봉 반납을 선언하고, 이석희 사장은 사과를 표명했다. 투명한 성과 평가 기준이 약속됐다. 그 무렵 네이버와 카카오 창업자 역시 비슷한 문제로 사내 청문회에 소환돼 저연차 직원들의 돌직구 질문에 진땀을 쏟았다.

#2“저는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수영선수 황선우)” 지난여름을 달군 도쿄올림픽에서 ‘아쉬운 은메달’ ‘죄송한 노메달’은 없었다. 수상대 꼭대기에 서지 못하면 카메라 앞의 죄인이 됐던 선배들과 달리, 선수들은 승패나 메달 색과 상관없이 미소를 띠며 만세를 불렀다. 높이뛰기 4위 우상혁 선수는 도약 전 관중 호응을 유도하며 경기를 즐겼고, 결승전에서 패한 유도 조구함 선수는 종료 직후 상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쿨(cool)림픽’에 또래 국민들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호응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찾아내 응원하는 흐름이 한동안 ‘놀이’처럼 번지기도 했다.

#330대 제1야당 대표의 탄생, 이른바 ‘이준석 현상’은 온라인 중심의 2030세대 여론이 만들어낸 이변이었다. 2030의 기세를 목격한 정치권은 이들을 타기팅한 대선 전략을 세워나갔다. 투표하지 않는 세대,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로 인식돼온 이들은 이제 선거의 ‘캐스팅보터’로 꼽힌다. 여전히 정치권은 청년 민심을 읽는 데 서툴다. 이준석이라는 세력화되지 못한 청년은 기성 정치 문법과 계속 부닥치며 갈등을 낳고 있다. 그러나 청년 정치는 이제 승리 공식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2021년 한 해, MZ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했던 질서들에 가차 없이 돌을 던졌다. 그 파장은 곳곳의 풍경들을 바꿔놓았다. 50대 이상 기득권으로 꽉 찬 정치권에 이준석 당 대표를 탄생시켰고, 경제활동의 무게추를 상당 부분 가상공간으로 옮겨놓았다. 조직의 일방향적 보상과 희생의 요구엔 ‘왜’냐고 주저 없이 반문했다. 각종 현상과 열풍을 주도하는 MZ세대의 부상은 곧 구시대의 와해와 새 시대의 시작으로 해석되었다. 기성세대는 MZ세대에 대해 ‘공부’하기 바빴고 정치는 이들의 표를, 시장은 이들의 지갑을 얻으려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한민국은 지금 MZ세대에 ‘적응’ 중이다.

▒ 트렌드 소비자 넘어 ‘생산 주체’로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선택해 소비하던 MZ세대는 이제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직접 생산의 주체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경제활동인구(약 2772만 명, 2021년 2월 통계청 기준)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이른다. 대기업에선 2030세대 직원 비중이 약 60%, IT 등 스타트업에선 80%에 달하기도 한다. 시장을 이끌고 있는 기업의 대표 얼굴로도 MZ세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는 새 최고책임자(CEO) 자리에 1981년생 최수연 신임 대표를 파격 임명했다. 마켓컬리·토스·직방 등 MZ세대 리더가 설립한 기업들은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맞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 100대 기업 기준 MZ세대 임원은 2019년 28명에서 2021년 64명까지 증가했다.

MZ세대는 경제활동조차 ‘재미’가 있어야 하며 또 ‘희소’해야 한다. 2021년 한 해 MZ세대가 주도한 이색적인 소비 트렌드 중 하나는 업종 간 경계를 넘어 ‘굿즈’를 제작하는 이른바 ‘콜라보레이션 열풍’이었다. 대표적으로 전통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의 캐릭터를 활용해 출시한 맥주·패딩·화장품 등은 한동안 품귀 현상을 빚었다. 뒤따라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콜라보 제품을 선보였고 MZ세대는 앞다퉈 SNS 인증을 이어나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정판’ 제품을 구한 후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셀(resell·재판매)’ 시장 역시 MZ세대의 뜨거운 활동 무대가 되었다. 이용자의 40% 이상이 MZ세대인 것으로 추정되는 리셀 시장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줄곧 활황을 보이고 있다.

MZ세대는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경제 및 문화 활동의 공간을 새롭게 확장하기도 했다. 3차원의 가상공간 메타버스(metaverse) 안에서 이들은 자신을 투영한 아바타를 생성해 현실과 동일하게 ‘살아간다’. 이미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스타벅스·구찌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입점해 MZ세대와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MZ세대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아이템을 직접 제작·판매하며 수익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제페토 크리에이터’는 새로운 공간에서 탄생한 유망 직업 중 하나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MZ세대의 관심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 ‘공정’ 향한 분노와 ‘이준석 현상’

기성의 벽이 가장 견고한 정치에도 어김없이 새바람은 들이쳤다. 2021년 한 해 MZ세대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두고 내내 분노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문제 등 반복되는 ‘불공정’ 논란에 MZ세대는 정부·여당을 향한 기존의 지지를 철회했다. 특히 MZ세대의 역린을 건드린 ‘조국 사태’는 정권교체의 열망을 키웠고 ‘공정’을 대선의 주요한 시대정신으로 부상시켰다. 이러한 공정에의 깊은 분노는 이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졌다.

이들은 현실을 조금도 바꿔주지 못한 기성세대를 대신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투영해줄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했다. 이내 여론은 제1야당 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진 이준석으로 수렴했다. 특히 자신들의 요구가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반영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져온 남성 청년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력화를 이뤘다. 1990년대생을 분석한 책 《K를 생각하다》를 쓴 임명묵 작가는 “이 대표 선출 과정은 전통적 정치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 대표의 지지층은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문법대로 자신들의 팬덤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 대표는 이를 투영받아 빠르게 세(勢)를 얻어나갔다. 이 대표가 청년 남성들을 공략한 게 아니라, 청년 남성들이 ‘저 사람은 우리 말을 들어줄 것 같고, 우리를 대리해 한 방 먹여줄 것 같다’고 생각해 스타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준석 현상은 아직 미완이다. 오히려 호기롭게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당내 기성 구성원들과 잦은 충돌을 빚고 있다.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영입 과정에서부터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논란으로 윤석열 대선후보 등과 충돌한 이 대표는 끝내 선대위원장직을 내던지기도 했다. 이 대표식 과도한 능력주의와 젠더 갈라치기에 대한 비판도 과제로 꼽힌다. 다만 이준석 현상의 경과와 무관하게 이미 MZ세대는 정치권에서 더 이상 제외하고 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로 치부돼온 MZ세대는 단숨에 대선 캐스팅보터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들의 표심은 다른 세대보다 훨씬 유동적이다. 특히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모두 이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기간 이 유동성은 더욱 크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복수의 여론조사에선 아직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2030 무당층 비율은 4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기존의 진영이나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실리에 따라 투표하는 MZ세대 표심을 잡는 것이 곧 선거 승패의 관건이 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 혐오·한탕주의…MZ 열풍의 그림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세대의 등장은 사회에 여러 그림자도 남기고 있다. MZ세대는 성별과 성별 사이 심리적 거리가 가장 먼 세대다. 젠더 갈등은 서로를 향한 공격적 비난과 무분별한 혐오로 분출돼 왔다. 정치권과 언론은 극심한 생존경쟁이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키웠다고 분석하면서도, 이들의 분열을 더욱 부추겼다. 여성할당제와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로 이들을 갈라쳤고, 출처가 불분명한 각종 혐오 표현들을 확대 재생산했다.

일자리 문제와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미래의 불안은 MZ세대를 한탕주의에 빠지게 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와 ‘빚투코인(빚+비트코인)’은 이들의 공격적인 투자 방식을 상징하는 용어다. 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LTI)에서 2030세대는 233.4%로 다른 연령층을 모두 추월했다(2021년 3월 한국은행 통계). ‘부모보다 못사는 최초의 세대’로 불리는 MZ세대는 코인 투자를 계층 상승의 마지막 사다리로 여겼다.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임명묵 《K를 생각하다》 중)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유행어처럼 오갔다. 그 때문에 MZ세대는 노동의 가치가 경시되고 시장을 왜곡한다며 투자를 규제하려는 기성세대를 향해 “평생 노예로 살라는 거냐”며 강하게 저항했다.

한편 MZ세대를 향한 관심이 커지고, MZ세대란 말이 각 분야에서 과용되고 있는 만큼, 세대 분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한 세대로 분류하기에 M과 Z 사이 거리는 멀다.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를 통칭한 탓에, MZ세대론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MZ세대는 무관심하며 때론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물론 한 세대로 묶이면서 청년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거칠게 뭉뚱그려 놓은 후 이들을 쉽게 판단하려는 기성세대의 편의주의가 반영된 것이란 비판도 있다. MZ세대를 세밀화하지 않은 채 게으른 일반화가 반복된다면, ‘진짜 MZ세대’에 대한 이해도는 날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고 있는 MZ세대는, MZ세대로 묶여버린 이들로부터 이미 너무 멀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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