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사기꾼 아냐?" 소리 들으며 미국서 웹툰 정착시켰죠

정혁준 입력 2021. 12. 19. 17:16 수정 2021. 12. 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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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옥 네이버 웹툰 미국 콘텐츠 총괄 리더 인터뷰
"카카오 타파스는 미국서 함께 시장 키워나갈 회사
콘텐츠 회사이기도 하지만 플랫폼 회사 추구"
이신옥 네이버 웹툰 미국 콘텐츠 총괄 리더가 11월24일 로스앤젤레스의 네이버 웹툰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타파스미디어는 우리(네이버 웹툰)와 함께 미국 웹툰 시장을 같이 키워나가야 할 회사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죠. 파이를 더 키워야 할 때입니다.”

지난달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신옥 네이버 웹툰 미국 콘텐츠 총괄 리더는 도전자 타파스를 이렇게 말했다. 경쟁자라기보다는 시장을 키워나가는 회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총괄 리더는 네이버 계열사인 네이버 웹툰의 미국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다. 네이버 웹툰은 2014년 7월 미국에서 앱을 론칭하며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에선 네이버 브랜드를 빼고 ‘웹툰’이란 이름으로 서비스한다. 현재 월간 이용자 수(MAU)는 1400만명에 이른다.

이 총괄 리더는 웹툰 불모지인 미국 만화시장 얘기로 운을 뗐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네이버라는 브랜드가 있어서 웹툰 시장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하지만 미국인 대부분이 네이버를 모르는 이곳에서 웹툰 서비스를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서비스 중인 네이버 웹툰. 웹툰 홈페이지 갈무리

결국 뿌리를 내렸는데, 그 방법이 궁금했다. “미국에서 처음 3년은 웹툰 작가를 찾아 모으는 데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때는 웹툰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찾아갔죠. 인터넷에서 만화를 잘 그리는 분을 찾아 이메일을 보내며 우리 웹툰과도 함께 하자고 요청했죠. 그때만 해도 미국에선 네이버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사기꾼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는 성공을 향한 구체적인 대책들도 언급했다. “웹툰 작가를 모으기 위해 한국과 같은 ‘도전 만화’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누구든 자유롭게 연재를 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이죠. 처음에는 이름을 ‘챌린지 리그’라고 했다가 지금은 미국 현지 문화에 맞춰 ‘캔버스’로 바꿨죠.”

노력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3년쯤 지나니 발굴한 작가들이 히트작을 내기 시작했죠. 히트작이 나오니 독자와 작가가 차츰차츰 모이기 시작했죠. 모바일에 익숙한 젠지 세대(Gen Z·한국의 Z세대와 유사한 젊은층)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2019년부터는 ‘미리 보기’를 도입하고 매출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네이버 웹툰이 디시코믹스와 손잡고 제작한 웹툰 <배트맨: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 네이버 웹툰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타파스를 인수하며 미국 웹툰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직도 낯선 미국 현지에서 시장을 개척하는 입장에서, 타파스는 우리(네이버 웹툰)와 함께 미국 웹툰 시장을 같이 키워가야 하는 좋은 파트너라고 봅니다. 이 시장에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자금이 흘러들어오는 점은 좋은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더 많은 투자 기업이 웹툰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내년 1월엔 그룹 방탄소년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웹툰도 선보인다. “방탄소년단은 가장 핫한 아이콘이잖아요.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저희로서는 정말 고맙죠. 하이브가 웹툰을 제작한다는 건, 웹툰이 글로벌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죠. 좋은 시너지를 이뤄낼 거라고도 보고요. 앞으로도 하이브와 다양한 협업을 할 예정입니다.”

미국에선 어떤 웹툰이 인기 있을까? “그리스 신화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로맨스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로어 올림푸스>가 인기인데요, 서양 고전인 그리스 신화여서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하지만 미국에선 특정 주제와 특정 소재만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다양한 주제, 다채로운 소재를 더 선호합니다.”

한국 웹툰 가운데 미국에서 인기를 끈 작품도 여럿 나왔다. 인기 작가 야옹이의 <여신강림>, 한국형 학원 액션물 <입학용병>, 웹소설로 출발해 웹툰이 된 <재혼황후>, 조회수가 45억뷰에 이르는 <신의 탑>은 미국에서도 인기다.

웹툰에서 서비스 중인 <로어 올림푸스>. 네이버 웹툰 제공

슈퍼맨, 아이언맨 등 슈퍼히어로 중심의 미국 만화판에서 한국 웹툰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세계관에선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 만화계의 양대산맥인 마블코믹스와 디시코믹스는 특정 캐릭터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깊이 파왔어요. 그게 강점이죠. 반면 한국 웹툰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보여주는 게 장점이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한국 웹툰 세계관이 방대하지 않은 건 아니죠. <신의 탑> 등의 웹툰은 방대한 서사를 보여주거든요. 미국과 비교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네이버 웹툰은 최근 디시코믹스와 손잡고 웹툰 <배트맨: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를 선보였다. 배트맨이 자기 집으로 이사 온 동료와 살면서 겪는 일상 이야기다. “디시와의 첫 협업 작품이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슈퍼 아이피(IP·지식재산권)를 웹툰이나 웹소설로 선보이는 ‘슈퍼캐스팅’ 프로젝트의 하나로 제작됐습니다.”

디시와 마블 같은 미국 회사도 최근 웹툰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했다. “디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그쪽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디시에서도 ‘웹툰이 미래다’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마블은 10월에 언리미티드 인피니티 코믹스를 만들고 웹툰 형식으로 서비스하고 있어요. 이런 회사와 협업도 하고 경쟁하는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일까? “만화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냈지만, 직접 만화책을 사서 보는 독자는 주춤해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웹툰이라는 플랫폼은 만화라는 매체를 더 널리 퍼뜨리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죠.”

그는 말을 이었다. “네이버 웹툰은 콘텐츠 회사지만 플랫폼 회사를 추구합니다. 단순히 히트작 하나를 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히트작이 나오는 플랫폼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해리 포터> 같은 히트작이 웹툰이라는 플랫폼에서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런 작품이 하나가 아니라 계속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웹툰에서 서비스 중인 <언오더너리>. 네이버 웹툰 제공

이 총괄 리더는 갓 입사해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당시 이해진 네이버 대표에게 2가지를 질문했다고 한다. 첫번째 질문은 “대표님도 웹툰을 보느냐”였고, 두번째 질문은 “네이버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였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이 대표의 답은 “웹툰을 자주 본다. 특히 네이버 웹툰을 즐겨 본다”였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네이버 데이터를 (데이터센터로) 옮길 때 가장 힘들었다”였다. 이 질문을 할 때만 해도 이 총괄 리더는 미국에서 웹툰 시장을 개척하게 될지는 몰랐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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