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엘리트] 권위에 도전한 '골치 아픈' 여학생, 심상정

최예빈 2021. 12. 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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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P] 노동운동·정계입문·대선도전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1959년 4월 4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아버지 심영택과 어머니 이명림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대조초등학교, 충암여자중학교, 명지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교사인 아버지와 언니의 영향으로 교사의 꿈을 꾸며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1015. 경주 수학여행 중 친구들과 함께 [사진=심상정캠프제공]

치마·하이힐 그리고 학생운동

대학시절[사진=심상정캠프제공]
심 후보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매일 아침 가족들에게 "절대 나서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학생 시위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었는데 결국 부모님의 당부를 따르지 않았다. 길게 기른 생머리에 치마와 하이힐 차림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신림동 사거리까지 시위대와 함께 달렸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점점 운동권 활동에 몰두하면서 멋 부리는 것을 포기했다. 동시에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잘못된 세상을 바꾸고자 꿈을 키웠다.

심 후보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운동권내 가부장제 문화와도 부딪혔다. 서울대에선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위원장으로 총학생회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심재철, 유시민 등을 주축으로 총학생회가 출범했다. 그런데 총학생회 복원계획에 여학생들이 자리할 곳은 없었다.

심 대표는 1980년 여학생의 학내 지위 향상을 위해 여학생들만의 대표 조직을 만들어 총학생회와 병행하는 총여학생회를 구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방송에서 "대학 시절 심상정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소회하기도 했다.


여성 최장기 수배자


심 후보는 대학을 그만두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갔다. 구로공단에서 카세트 외장을 만드는 일을 하며 임금 인상과 식사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당했다. 남성전기에 입사한 뒤 노동조합에 들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해고됐다. 세 번째 직장은 국내 최대의 봉제 업체인 대우어패럴이었다.

대우어패럴에서 위장 취업이 알려져 해고된 심 후보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이끌었다. 심 후보는 이 사건으로 현상금 500만원과 1계급 특진이 걸렸다. 이때부터 9년간 수배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수배생활은 1990년 체포되면서 끝났다. 수배생활 동안 숨어 다니느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19910427. 전노협집회에서[사진=심상정캠프제공]
심 후보는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제3자 개입금지 위반, 사문서 위조, 방화, 폭력, 집단 방화 사주, 집단 폭력 사주, 집시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 아홉 가지 죄목을 받았다. 1993년 6월 재판정에 들어갔을 땐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 때 심상정은 뱃속의 아이에게 "엄마는 옳은 행동을 한 거니까 너무 놀라지마"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심 후보가 만삭의 임산부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심 후보는 1992년 결혼했다. 남편인 이승배 씨는 경기고를 나와 1975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을 하다 시위에 참여해 무기정학을 받았다. 두 사람을 이어준 사람은 사노맹 사건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았을 때 결혼을 해서 양가는 묻지도 않고 두팔 벌려 환영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노동운동

[사진=심상정캠프제공]
결혼 이후에도 심 후보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전노협에서 쟁의부장, 쟁의구장, 조직국장으로 일했다. 1996년부터는 2002년까지 민주금속연맹, 금속산업연맹, 금속노조에 몸을 담았다. 금속노조는 자동차, 철강, 조선 등 노조들이 가입돼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별노조다. 금속노조에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배지, 조끼, 깃발 등도 사무처장으로 있을 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심 후보는 스웨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금속노조 사람들과도 교류했다.

이 때의 경험으로 지금도 요리를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손쉽게 해낸다고 한다. 여러 현장에서 워낙 대인원의 식사를 직접 만들어 해결했기 때문이다. 양념게장은 지금도 특기로 게 10kg을 사서 담을 정도로 큰 손이다.


2004년 비례 의원


심 후보가 전업으로 정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9월 금속노조 사무처장 임기가 끝나면서부터였다. 감옥에 있던 단병호 금속노조 위원장을 면회갔을 때 심 후보에게 "정치를 하면 아주 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출소한 단 위원장은 2004년 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때표 후보로 출마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가 당원 직선으로 치러진 비례후보 후보 선거에서 여성 후보 최다 득표로 1번을 배정받고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지역구를 경기 고양 덕양 갑으로 정했다. 정서적 친밀감이 컸기 때문이다. 심 후보는 덕양구 북쪽에 잇닿은 파주에서 자랐고 은평구에서 20여 년을 살았던 만큼 오랜 생활권이었다고 한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경기 고양 덕양 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낙선 이후 일명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과 당원들이 급증해 평소 가입 숫자의 네 배가 넘는 신규당원들이 들어왔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경기도지사에 도전했지만 야권단일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후보직을 내려놨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선거에 다시 경기 고양 덕양 갑에 도전해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21대 국회에선 정의당의 유일한 지역구 의원이다.


발군의 초선의원

국회 입성 후 거대 양당 사이에서 군소정당 정치인으로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국정감사를 통해 정치인으로서 크게 발돋움을 했다. 국회의원이 되고 첫해 열린 국정감사에서 재경부가 파생 상품 거래로 1조8000억원가량의 외환 보유고를 날린 사실을 밝혀내 주목을 받았다. 언론에서는 "초선이 '늙은 너구리'를 잡았다"고 연일 특집 기사를 실었다.

지난 2015년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도중 심 후보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정부가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에 관해 질의하다 사자후 하는 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300만회에 육박한다.

심 후보는 이 장관에게 "장관도 임금피크제에 동참하고 계시냐"고 물은 뒤 "도대체 양심이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이 '짝퉁' 임금피크제, 이게 임금상한제인데 왜 이 사회에서 고액 연봉(임금) 받는 사람들은 포함 안 시키느냐"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최저임금에 견줘 국회의원·공기업 임원 임금을 제한하는 최고임금법(살찐 고양이법)을 제안했다.


대기업 저격수

심 후보는 대기업과 싸우며 피해자 보호에 앞장섰다.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에 맞서 대한문 담벼락 앞에서 30일 넘게 단식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 단식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결국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공론화도 심 후보가 주도했다. 그는 2012년 10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이은영 씨를 직접 만났다. 이어 2013년 6월에는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 등에 의한 피해 구제법'을 발의했다. 2016년 4월에도 가습기살균제사건과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준연동형 비례후보제의 아픔


심 후보는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고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탈당해 9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이듬해 당 이름을 정의당으로 바꿨다. 그는 2018년 진보정당이 원내 정당이 된 뒤 처음으로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심 후보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정의당을 도약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리고 2019년 선거법 개편안을 패스스트랙 안건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결국 거대 양당이 꼼수로 위성정당을 출현시키면서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21대 총선에서 6석 확보에 그쳤다. 심 후보는 비례대표 선거결과를 아쉬워하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관계는 크게 악화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2021년 11월15일 위성정당 창당을 두고 심 후보에게 사과했다.


네 번째 대선 도전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열린 "나라 바꾸는 여성" 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21.12.16 [국회사진기자단]
심 후보는 지난 8월 "34년 묵은 낡은 양당 체제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며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심 의원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2012년 진보정의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한 바 있다. 2017년에는 선거를 완주했는데 6%를 득표하여 민주화 이후 진보계열 인물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수 및 득표율을 얻었다.

20대 대선에서 심 후보는 '주 4일제'를 들고 나왔다. 대한민국을 '시간빈곤' 사회로 규정한 심 후보는 시간빈곤으로 인한 여가시간, 휴식시간의 부족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4일제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주4일제는 심 후보의 신노동법에 포함된 내용인데 신노동법은 프리랜서, 특수고용, 플랫폼 등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일하는 시민들이 노동권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심 후보는 환경 문제도 전면에 내걸었다. 그는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 최초의 기후투표가 될 것"이라며 "기후위기 앞에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이대로 살 순 없다. 더 이상 퇴로가 없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50%로 늘리겠다는 강도 높은 탄소중립 목표를 약속했다. 현재 20GW 내외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설비도 임기 안에 100GW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를 기후위기와 녹색전환에 투자, 탄소세를 도입해 2030년까지 단계적 세율 인상 등의 내용도 공약에 포함됐다. 그는 이를 총괄할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집행을 책임지겠다는 계획이다.


어록


"정의당은 당 강령부터 페미니스트 정당이 맞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갈라치기가 아니라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2021/11/29,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대권선언후 매일경제와 첫 인터뷰 중)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담고 시민이 선진국인 나라로 달려갈 심상찮은버스가 곧 출발한다. 미래를 빼앗긴 청년, 국가가 돌보지 않는 노인, 차별과 폭력의 공포에 절규하는 여성, 공동체 시민으로서 권리가 박탈된 장애인, 노동법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이 100개의 목소리를 싣고 100일 만생대장정을 시작하겠다." (2021/11/29, 대선을 100일 앞두고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심상찮은버스'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며)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2018/07/27, 故 노회찬 정의당 후보 영결식에서)

"지난 80여년 동안 삼성그룹은 눈부신 발전과 성과를 이뤄왔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비약적인 성장 이면에는 그 세월과 함께한 노조 와해 전략이 있었습니다. 80년 세월 동안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삼성은 치워법권을 자처하며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군림해 왔습니다" (2018/04/30,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청산과 노사관계 개혁 촉구 결의안 중에서)

"돈하고 연줄하고 또 권력이 짬짜미가 돼서 추천리스트 만들고 최종 합격시키고 대한민국이 이래 갖고 청년들에게 희망 가져라, 꿈 가져라, 또 최선을 다해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얘기할 자격이 있?뺨歐�?" (2017/10/30,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은행권 채용비리 폭로하며)

"진보정당은 8,90년대 청년들이 2000년에 만든 정당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정의당을 내어줍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꿉시다." (2017/03/26, 정의당 19대 대선승리 전진대회에서)

"김고은씨 팬클럽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17/03/09, JTBC 썰전에 출연해 별명이 '2초 김고은'이란 말을 듣자)

"역사에 떳떳치 않은 아베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이 두 사람이 치우고 싶다고 해서 치워지는 역사가 아닙니다. 위안부 합의 파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합니다.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그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대한민국 꼭 만들겠습니다." (2017/03/01 1272차 수요집회 연설 중)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생명과 안전보다는 이윤을 앞세운 부도덕한 기업과 이를 방조한 정부의 직무유기가 함께 만들어낸 후진국형 인재입니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곳도 아닌 안방에서 일어나,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안방의 세월호 사건입니다." (2016/05/16 기자회견 중에서)

"정의당이 세월호 문제를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정치공세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월호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서,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04/16,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식)

"장관도 임금피크제 동참하고 계십니까? 여기 있는 국회의원들 포함돼요? 도대체 양심이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왜 이 사회에서 고액 연봉 받는 사람들은 임금상한제에 포함 안 시켜요?" (2015/09/11,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유명해진 사자후)

"오늘 중앙위를 마지막으로 공동후보직을 내려놓는다. 진보 정치 15년을 돌아보니 고통스러운 결정의 순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러분의 결단으로 진보 정치의 새 시대를 힘차게 열어 달라." (2012/05/12, 통합진보당 사태로 후보직에서 내려오며)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다.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보수정치 시대를 끝내고 가난한 사람의 민주주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내겠다." (2007/03/07,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하며)

"여성 활동가들 가운데 결혼하면 끝이라고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결혼한 뒤 삶으로서 운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또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고통과 어려움이 활동가라고 해서 면제되는 것도 아닌데, 온몸으로 부딪쳐오면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2004/03/11,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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