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검열 논란' 부른 n번방 방지법..무엇이, 왜 문제일까요?

김태영 기자 2021. 12. 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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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지난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제정된 일명 'n번방 방지법'이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법들이 전날(10일) 시행되며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상 메시지·게시물에 '불법촬영물 필터링 기능'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카카오톡 오픈채팅 이용자들이 “고양이 사진, 게임 캡처 화면도 필터링 절차를 거친 후 채팅방에 배포됐다”며 검열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디지털 성착취와 불법촬영물 유포를 근절하겠다는 목적에서 시작된 이 법은 왜 검열 논란의 대상이 됐을까.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개선될 필요는 없는지에 대해 서울경제가 짚어봤다.

지난해 5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터넷 사업자에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할 의무 등을 부과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연합뉴스

①불법촬영물 필터링 조치, 왜 시작된 걸까?

이번에 시행된 법은 지난해 제정된 'n번방 방지법' 중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할 시 처벌하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고시에 담겼다. 고시에 따르면 사업자는 △필터링 기술을 적용해 불법촬영물을 식별하고 해당 정보 게재 제한 △불법촬영물 관련 검색결과 송출 제한 △불법촬영물 의심 정보 신고 시스템 마련 등의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적용 대상은 웹하드 사업자와 일정 규모 이상(매출액 10억 이상 또는 하루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의 SNS,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개인방송, 검색포털 등의 기업이다. 약 90개로 네이버, 다음 카페, 카카오톡 오픈채팅은 물론 인벤, 뽐뿌, 보배드립 등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를 아우른다.

/이미지투데이

②필터링 원리는?

전기통신사업자가 불법촬영물 필터링을 위해 쓸 수 있는 기술은 국가기관(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하여 제공하는 기술 혹은 최근 2년 내에 성능 평가를 통과한 기술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올라온 영상을 딥러닝(심층 학습)을 기반으로 분석한 뒤, 정부가 모은 불법촬영물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불법 여부를 식별하는 원리다. 기존의 웹하드 사업자들이 불법촬영물을 걸러내기 위해 쓰던 기술과도 비슷하다고 전해졌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 기술에서 모은 데이터베이스는 경찰이나 방심위로 신고돼서 불법촬영물로 판단된 자료들로 이뤄져 있다"며 "그 영상들을 디지털 코드화시켜 '특징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뒤 사업자들에게 배포하고, 사업자들은 영상이 올라오면 해당 영상과 특징정보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카카오톡 이용자가 오픈채팅에 고양이 동영상을 전송한 후, 해당 동영상에 대해 불법촬영물 여부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온라인 커뮤니티

③진짜 검열인가?

검열 논란은 카카오톡이 '오픈채팅'에 이 기술을 전면 적용하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불거졌다. 오픈채팅은 일반 카카오톡 채팅과 다르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공간인 만큼, 이 곳에서 공유되는 모든 동영상과 '움짤(움직이는 사진)'에 이 기술이 적용됐는데 이를 두고 사용자들이 "고양이 사진이나 게임 캡처 화면도 필터링하느냐"며 반발한 것이다.

실제로 기자가 한 오픈채팅방에 '고양이 움짤'을 전송해보니,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이라는 메시지가 사진 위에 뜨고 수초 후에 움짤이 전송됐다.

방통위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대란 때문에 장비수급이 안 된 사업자의 경우 필터링 조치가 오래 걸리는 문제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10초 전후로 완료된다"며 "기계적으로 일치 여부만 확인하는 것인데 서비스 초기다보니 검열이라는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파일을 공유하기 위해 파일 공유 버튼을 누르면 뜨는 메시지./카카오톡 캡처

④문제는 없나?

그럼에도 우려는 남는다. 우선 정부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보니, 정상적인 영상물이 잘못 필터링돼 게시 제한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불법촬영물 유포의 온상으로 기능했던 텔레그램, 디스코드는 법인이 해외에 있어 이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페이스북처럼 국내 대리인이 있는 해외 법인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 의무를 강제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 이번 조치로 인해 국내 정보통신기업의 경쟁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개정을 췾ㄴ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캡처

④앞으로의 향방은?

정치권은 이번 논란에 즉각 반응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기준의 모호함에 더해 헌법 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심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재개정 의지를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전 국민의 모든 영상물을 검열하는 ‘전 국민 감시법’ 폐지하겠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하지만 섣부르게 폐지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n번방 방지법이 국회에서 굉장히 빠르게 통과가 됐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사업자들과 소통하는 절차는 필요하다"면서도 "텔레그램 성착취와 비슷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라 텔레그램 적용 여부가 쟁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 대표는 "이제 법이 막 시행됐는데 위헌이나 폐지 논의를 벌써 꺼내는 것을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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