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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터뷰-김유열 EBS 부사장]“방송·온라인·원격교육까지...EBS, 지식 콘텐츠 허브로”
EBS콘텐츠 기획·개발 대가 정평
세계 석학 지혜나누는 ‘위대한 수업’
스테디셀러 ‘세계테마기행’·‘극한직업’
적은 제작비에도 양질 콘텐츠 생산
수신료 2500원중 EBS몫 70원뿐
재원확충되면 지식·원격교육 투자
코로나시대, 지혜·통찰 길잡이 될것
EBS 김유열 부사장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며 EBS 콘텐츠의 철학과 실태, 제작방향 등을 설명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EBS(한국교육방송공사)에는 볼만한 프로그램이 꽤 많다. 지상파의 힘이 약화되고 OTT(온라인동영상) 등 뉴미디어로 콘텐츠 시청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지만, EBS는 유익하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많다. 게다가 매우 적은 제작비를 사용하고도 양질의 콘텐츠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EBS 김유열 부사장을 만나, EBS가 제작하는 콘텐츠의 제작방향, 철학, 현실과 함께 급변하는 콘텐츠 생태계를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유열 부사장은 콘텐츠 기획, 개발의 대가다. 그가 기획에 참가해 성공한 프로그램들은 ‘다큐프라임’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극한직업’ 등 실로 다양하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하다 1992년에 EBS에 입사해 편성기획부장, 뉴미디어부장, 지식정보부장, 정책기획부장, 학교교육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EBS 콘텐츠의 성격을 결정짓는 편성기획 부장 자리를 세 차례, 무려 7년에 걸쳐 역임하며 어린이와 교육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편성을 혁신했다.

“3번에 걸쳐, 콘텐츠 개발 기획 편성을 담당하는 편성기획부장을 했는데, 가급적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고급화를 지향해왔다. 그렇게 해서 제작된 세계테마기행, 다큐 프라임, 한국기행 등이 호응을 얻었다. 고품격 다큐도 계속 제작하려고 한다.”

‘노자와 21세기’라는 초대박 강의 프로그램 기획=김 부사장은 편성기획부장이 되기 전부터 혁신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 1999년~2000년 EBS를 통해 방송돼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노자와 21세기’는 김 부사장이 PD 시절 기획한 콘텐츠다.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과학기술 문명인 자본주의에 대응하고, 인류의 지혜를 알아보는 강연 프로그램으로 모두 56강을 방송했다. 전성기에는 수도권 시청률이 10%라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EBS가 공사화 되기 직전인 1999년 12월 편성받았는데, 밀레니엄을 앞둔 기획물을 구상하다가 나왔다. 우리는 제작비가 적어 물량공세로 다른 콘텐츠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당시 주어진 회당 제작비는 300만원에 불과했다. 우리는 정반대로 갔다. 적은 돈으로 국민 관심사를 만드는 기획방식이다. 2000년간 변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도 안변할 거라며 고전에 주목한 게 ‘노자와 21세기’다. 인류 사고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고전의 사상과 철학, 시대정신을 알고자 했다. 김용옥 교수를 섭외한 효과도 컸다.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하루종일 전화가 왔다.”

‘위대한 수업’은 지식 독점과 편중을 막는 유니크한 기획물=지난 8월에도 정치, 경제, 과학, 인문 등 각 분야를 망라한 글로벌 석학들의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를 론칭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의 세상을 보는 지혜, 통찰력을 방송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일종의 지식 넷플릭스라 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 마이클 샌델, 주디스 버틀러, 조지프 나이, 리처드 도킨스 등 현재 세계를 이끄는 지성들이 준비한 강연을 무료로 선보이고 있다. 12월중 글로벌 OTT 플랫폼을 오픈해 6개 언어로 전 세계에 제공한다.

“‘위대한 수업’은 강자나 약자나, 부자나 빈자나, 엘리트나 대중 누구나 세계 석학들의 지혜와 통찰을 무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획됐다. 아마 학교나 가정과 직장에서 지식혁명,창의력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기획됐다.”

김 부사장은 지식을 일부가 독점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계몽사상가로 1만엔 지폐에도 등장하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미국, 유럽을 여행하고 쓴 책 ‘서양사정(西洋事情)’이 1866년 출판돼 무려 24만부가 팔렸다. 2000권만 팔려도 베스트셀러인 시절이다. 일본 국민들은 이 때문에 서양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토대 위에 1868년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다. 반면 조선의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 후쿠자와의 제자가 된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썼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에 역모에 휘말려 금서가 됐다. ‘신사유람단’의 공식 보고서도 순한문으로 쓰여진 채 왕실 서고에 비치돼 백성들은 볼 수 없고 극소수만 보게 됐다.”

김 부사장은 “한국 근현대사의 불행이 지식의 차단, 부재, 독점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지금도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지엽말단적인 게 많다. 여전히 고급정보, 고급지식은 독점되고 차단되어 있다. 미디어 혁명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분위기를 진작시키려는 기대감으로 ‘위대한 수업’을 론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판 아인슈타인과 데카르트 같은 석학 동영상을 1천명 정도 확보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한국사회가 새로운 지식 빅뱅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게 집단두뇌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넷플릭스에 피해의식만 가질 게 아니다.”

김 부사장이 기획이나 개발, 연출에 참가한 프로그램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방송 콘텐츠가 세계 최대의 미국 시장에 제대로 대우를 받으며 본격 진출한 첫 사례인 다큐멘터리 ‘신들의 땅 앙코르’(2011년), 다큐프라임 3D 세계문명사 대기획 ‘천불천탑의 신비, 미얀마’(2015년) 다큐프라임 세계문명사 대기획 ‘불멸의 진시황’(2017년)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100만 관객을 감동시킨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도 그가 기획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여행을 통해 삶과 문화를 보며 배울 수 있도록 깊이를 더한 ‘세계테마기행’은 많은 시청자를 확보한 스테디셀러다. 김 부사장은 “큐레이터가 직접 내레이션까지 해 여행자의 감정을 시청자와 공유한다”고 했다.

문해력(文解力) 바람 일으켜=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의 정신을 빌려 많은 혁신 사례를 15분의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경제·경영 교육 콘텐츠 ‘EBS 비즈니스 리뷰’(EBR), 500여 강좌, 3천여 편의 강연 콘텐츠가 탑재된 구독형 강의 플랫폼 ‘클래스e’도 이용도가 높다. 김 부사장은 “둘 다 OTT라는 방송 콘텐츠와 맞물리는 전략하에 탄생한 기획물이다. 언제라도 동영상 기반의 OTT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렌드를 발빠르게 반영한 ‘자이언트 펭TV’도 EBS의 역작이다.

EBS는 2021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육적 책무를 강화하고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문해력’을 주제로한 기획 프로그램을 대거 방송했다. 공부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힘인 ‘당신의 문해력’은 대한민국 문해력 실태를 점검하고,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최근에는 12주간의 수업을 통해 유아기 기초문해력의 비밀과 교육방법 등을 전격 공개하는 ‘문해력 유치원’을 방송하고 있다.

이 같은 유익한 프로그램을 대거 제작, 방송함으로써 EBS가 수신료 2500원 중 배분받고 있는 70원이 너무 적다는 반응이 나왔고, 수신료 배분 현실화와 국가 재정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시청자 의견으로 이어졌다. “요즘 시청자들이 EBS의 수신료 현실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면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고 하신다. 양질의 콘텐츠를 엄마들이 자식과 함께 보겠다는 의견을 보내주신다. 사실 수신료중 70원을 준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EBS가 1천억원만 더 있어도 어마어마한 교육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수신료가 늘어 재원이 확충되면 지식교육과 원격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 누구나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적은 제작비로도 효과를 올리는 기획 방향=EBS가 만드는 프로그램을 보면 공적 재원이 충분히 확보돼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부족한 예산으로 고품격 콘텐츠를 만드는 노하우가 생겼다. “2007년 편성기획부장으로 복귀해 2008년 봄 다큐를 전면 개편했다. 당시 EBS는 적자였다. 그럼에도 다큐 프라임, 한국기행, 극한직업, 세계테마기행 등 예산이 많이 드는 기획물을 기획했다. 고민 끝에 제작비는 줄이지 않고 한번 만들어 2~3번 방송했다. 편당 제작비 5천만원이 들어가는 양질의 다큐프라임을 주 세차례 편성했다. 당시 EBS에 회당 제작비가 1000만원이 넘는 프로가 3개밖에 없었다.”

이어 김 부사장은 “그래도 다큐프라임의 재방송 시청률은 떨어지지 않았다. 클래시컬한 다큐를 중심으로 했다. 똑똑한 놈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종으로 편성하는 전략이다”면서 “ ‘문명과 수학’은 세 번 방송해도 시청률이 줄지 않았다. 코로나19 시대 ‘세계테마기행’은 조금 손질을 해 다시 방송한다. 한국기행은 주말에 몰아본다. ‘최고의 요리비결’을 왜 주말에 재방송하느냐고 하지 않는다. 영화도 ‘ 로마의 휴일’은 여섯 번 틀었지만 시청률이 올라갔다. EBS가 그런 시도를 처음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고 전했다.

EBS는 2018년과 2019년 적자였다가 지난해 64억의 흑자를 기록했다. 김 부사장은 “EBS의 살 길은 지식 콘텐츠 허브를 만드는 것이다. 2년전부터 준비해왔다. EBS가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미디어의 용광로로서 국민들이 지식과 지혜, 통찰을 얻어갈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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