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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터뷰-김유열 EBS 부사장]“有에서 無 만들듯...빼야할 것을 잘 빼는 것이 혁신이자 성공비결”
철학과 통찰 담은 저서 ‘딜리트’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김유열 부사장과 대화를 나누면 무궁무진하다.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 아우른다. 철학과 통찰을 영상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영상매체 감독의 자질도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그는 2018년, 무려 5년에 걸쳐 집필한 책 ‘딜리트’(쌤앤파커스)를 내놓았다. 자신이 참가한 프로그램의 성공에는 ‘딜리트(delete)’가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하나를 더하는 게 아니고 하나를 빼는 데서 혁신이 이뤄진다.

“뭘 없애야 새로운 게 나온다. 창조적 파괴나 파괴적 혁신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오자 제품을 350종에서 4가지로 줄여 흑자로 전환시켰다. 제임스 다이슨은 선풍기 날개를 없앴다. 만년필의 튜브를 없애면 카트리지가 들어올 수 있다. 백종원은 컨설팅해주러 간 골목식당 사장에게 늘상 메뉴를 줄이라고 한다. EBS가 유아, 어린이와 다큐 영역에서 최강자가 된 것도 딜리트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김 부사장의 말을 듣다보니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도 집어넣기 보다 덜어내기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부사장은 수시로 딜리트의 기술을 사용했는데, 그 효능은 탁월했다고 한다. 창조하라고 하면 어렵지만 ‘딜리트’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딜리트의 기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유를 무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창조의 기술이다. 창조가 신이나 천재의 전유물이 됐기 때문에 창조라는 말이 오히려 창조를 억압한다.”

김 부사장은 항상 지상파의 자기부정(딜리트)은 무엇일지를 생각한다. ‘딜리트’ 개념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읽어내는 안목과 콘텐츠 해석력도 공감하게 한다.

“예능의 경향중 하나가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나가는 것이다. 평화로운 곳에 가서 먹고 놀고 멍 때리는 건 나영석 PD가 가장 잘한다. 무한경쟁시대 현실 도피적인 삶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은 리얼리티 시대다. MZ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가공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자연적 아름다움을 원한다. 비싼 것보다 가치 있는 소비를 추구한다. 인공적인 작품은 거의 없어졌다. 자연이 백그라운드다. 나이아가라(폭포)보다 더 리얼한 것은 없다. 이게 ‘세계테마기행’의 탄생 배경이다. ‘극한직업’도 밖으로 나가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프로그램이다.”

EBS 프로그램들에 대해 설명하는 김 부사장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는 “(EBS가) 종합 미디어사로의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펭수도 방송 콘텐츠지만 유튜브에서 선전한다. 출판, IP(지식재산권)로도 확장해야 한다”면서 “광고에만 의존하면 안된다.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인 구독형 강의 플랫폼 ‘클래스e’에는 수많은 강좌가 있다. 이는 구독경제를 이끄는 OTT라는 플랫폼에도 어울릴 수 있는 콘텐츠 전략이다. 오디오 콘텐츠도 오픈했고, '명의'를 2007년부터 제작해오며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확한 정보만을 엄선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의학정보 콘텐츠 플랫폼 '명의 헬스케어'를 12월중 오픈한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지상파적(的)이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그는 “전통 방식으로 이기는 건 어렵다. 다소 게릴라적이고, 아웃사이더 전략이다”고 설명한다. ‘인싸’가 되려고 기를 쓰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아싸’로 사는 방법도 있고 ‘마싸’(my+sider)도 있지 않은가.

BBC를 혁신한 후 뉴욕타임즈에 스카웃된 마크 톰슨 사장은 작지만 임팩트 큰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A smaller BBC Big Impact’라는 비전을 제시해 BBC를 살려냈다. 프로그램을 구조조정했지만 ‘플래닛 어스’ ‘닥터 후’를 제대로 만들어 전세계에 팔아 큰 돈을 벌었다.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이다. 김 부사장은 “콘텐츠가 탁월하면 모든 플랫폼에 유통된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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