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성희롱 신고 후 내 자리에 사람 뽑은 회사, 이대로 퇴사해야 할까요?

입력
2021.12.09 04:40
16면
0 0

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4일 서울 강동구청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2021 강동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가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강동구청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2021 강동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가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1년 넘게 취준(취업준비) 생활을 하다 어렵게 합격했어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상사의 성추행과 언어적 성희롱이 시작됐거든요. 업무적으로 혼내고 나서 다독이면서 과도하게 신체 접촉을 하더라고요. 심지어 사무실에 둘만 남았을 땐 저보고 "야한 동영상 같이 보자"고 했어요. 이 상사는 음담패설도 아무렇지 않게 했고요.

가만히 있으니까 피폐해지는 건 제 쪽이었어요.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불안해지고, 한편으론 분노도 치밀어 올랐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대표님한테 이 일을 말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잘 해결되나 싶었습니다. 대표님은 저한테 "마음추슬러라"며 일주일 유급휴가를 줬고, 제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에 그 상사가 사직서를 내고 퇴사했단 말을 들었거든요.

"회사 이미지 챙겨" 고소 무마하는 대표

이제 출근해도 된다길래 나갔어요. 진짜 그 상사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가서 자리는 비어있었고, 얼마 뒤 새 상사가 출근을 했습니다.

여기까진 제대로 문제가 처리되나 싶었는데, 곧 이상한 요구를 받았어요. 대표님은 "돈 줄 테니까 형사고소는 하지마"라고 했습니다. 제가 대답할 때까지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하면서 "고소까지 하면 회사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나를 봐서 덮어줘라"고 했고, 제가 수긍하지 않으니 "고소까지 하면 널 자를 수도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 상사랑 대표는 친척관계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전임자도 그 문제의 상사 성희롱 때문에 참다 참다 그만뒀다고 합니다. 저는 퇴사할 마음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해자는 법이 정한 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다짐했어요.

나를 대신할 직원을 출근시킨 대표

제가 가해자를 고소한 뒤에 대표님은 구인 공고를 냈어요. 정확히 제가 하는 업무에 대한 공고였습니다. 공고에 따라 뽑힌 직원에게는 저보다 높은 직함인 '과장'을 달아 줬어요. 전 제가 하는 모든 업무를 그분한테 넘겨줘야 했고, '보조 업무를 하면 된다'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보조 업무마저도 없었어요. 회의를 하는데 저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회사에서 제가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사무실 청소도 하루에 두 번씩 해보고 애써 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청소도 제대로 못한다" "별거 아닌 일로 고소까지 한다"는 핀잔이었습니다.

하루는 조금 늦어서 출근시간 1분을 지각했어요. 새로 뽑힌 그 과장님이 저를 혼내면서 한 말이 너무 큰 상처가 됐습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일할 마음은 있냐? 높은 사람이 먼저 출근해 있는 게 말이 돼?"로 시작한 그분은 "왜 이런 상황에 버티고 있는 거야. 네가 있어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 과장님 말로는 대표님이 잘 봐줘서 위로금이랑 한 달 치 월급까지 준다고 했답니다. 그거 받고 그만두라는 뜻이죠. 그래도 과장님은 같은 여자여서 제가 당한 일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분이겠다 싶었는데…. 제가 나가야 된다고 대놓고 말하니까 배신감도 느껴지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회사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슬퍼요. 사회 초년생인 저에겐 어렵게 구한 직장입니다. 여기서 조금이나마 경력을 쌓아야 그만둬도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놓고 나가란 뜻이니 퇴사해야 할까요?

A씨(20대 여성·사무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당해고'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신고를 하고 일할 권리를 지키려 노력한 A씨의 용기 있는 행동에 우선 응원을 보냅니다. 성희롱을 겪은 것만으로도 힘든데, 신고 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가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단지 일하고 싶을 뿐인데 말이죠.

먼저 해고와 관련해 살펴봅시다. 근로기준법에는 해고 관련 내용이 상세하게 제정돼 있어요. 사용자는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감봉 등 그밖의 징벌을 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만약 '부당해고'를 당했다면, 5인 이상 사업장일 경우 3개월 이내에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어요. 또 해고는 30일 전에 반드시 서면으로 통보해야 합니다. 30일 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면 '해고예고수당'(통상임금 30일분)을 지급해야 해요. 단, 그 직장에 다닌 기간이 3개월이 되지 않는다면 해당되지 않습니다.

'종용'과 '해고'는 다르다

문제는 부당해고로 다투려면 충족해야 하는 요건입니다. A씨 경우처럼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해고"란 말을 직접하지 않아요. 말의 뉘앙스나 직원들을 이용해 나가란 분위기를 조성하곤 하죠. 사업주도 분명 알고 있거든요. 정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 해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요.

그래서 스스로 그만두도록 유도를 합니다. 자꾸 업무적으로 꼬투리를 잡고, 새로운 직원을 뽑는 식으로 괴롭히는 거죠. 게다가 A씨 회사는 고용관계를 직접 맺었거나 인사권이 있는 대표가 아닌, 상사 과장이 대표 의사랍시고 그만두라고 말하고 있어요.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 중 이걸 '해고 의사'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그만두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그러고 나서 실업급여를 타려고 하면 "회사에서 '자발적 퇴사'로 신청했으니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죠. 회사에선 그만두라고 한 적 없다고 잡아뗄 수 있거든요. 나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사업주가 직접 해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간 출근하지 않은 건 무단결근이 돼 버립니다. 오히려 해고의 '정당한 이유'에 들어갈 수 있는 귀책사유를 만드는 셈이에요.

상황이 힘들어도 출근을 하면서 사업주와 면담신청을 통해 해고 의사를 분명히 확인해야 합니다. 서면통지 요구도 해야 하고요, 부득이한 경우 녹음을 해두는 게 좋습니다. 혹시나 자의적 해석 후 회사를 안 나갔다면 휴가 처리가 되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잘못된 지점부터 다시 절차를 밟을 수 있어요. 명확한 해고 의사가 없는데 출근을 안하는 건 근로자가 불리해진다는 걸 기억하세요.


성희롱 신고 불이익 내년엔 '구제'도 가능

A씨 사례로 돌아가 볼까요? 우선 그만두라는 건 '과장'이 한 말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필요 없습니다. 사업주의 의사가 확인될 때까지 출근을 반드시 하세요.

게다가 A씨의 경우는 직장 내 성희롱 신고자입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주는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불리한 처우' 조항을 가지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서 현재 회사에서 하는 해고 종용을 따져볼 수도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진정을 넣으면 감독관이 판단을 하게 되는데, 괴롭힘이든 해고 종용이든 불이익을 받았다는 걸 근로자가 증명해 내야 하거든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고, 회사는 각종 사유를 들며 빠져나가려 합니다. 예컨대 실업급여에 대해 물어봤거나 알아본 행위만으로도 '이 근로자는 권고사직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다행인 건 내년부터 제도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으로 2022년 5월 19일부터 '구제신청'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 법은 불리한 처우를 한 회사에 대한 처벌만 정하고 있었다면, 앞으론 피해자가 구제받을 길이 열리는 거예요.

고용상 성차별이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사업주 조치의무 위반에 관해 노동위원회가 확정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기준. 고용노동부 제공

고용상 성차별이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사업주 조치의무 위반에 관해 노동위원회가 확정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기준. 고용노동부 제공

구체적으로는 고용상 성차별 및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사업주의 조치의무 위반에 관하여 '노동위원회'의 검토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처벌 조항에만 그쳤던 것에 더해서 노동위원회 위원들이 조사한 후 복직을 시키던가 금전적 합의, 원래 업무로 복귀 등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받습니다. 배상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억 원 범위 내에서 해당 배상명령액을, 그 외의 시정명령 미이행 시에는 1차 500만 원, 2차 1,000만 원, 3차 2,0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습니다. 시정명령 이행상황 제출 요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1차 200만 원, 2차 400만 원, 3차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번호 1670-1611)는 전국 11개 지부(서울·인천·부천·전북·광주·안산·부산·마산창원·대구·수원·경주)에서 '평등의전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차별과 성희롱을 비롯해 임금체불, 부당해고,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하는 불리한 대우, 폭언·폭행 등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겪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도와줍니다.


정리= 맹하경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