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의 '脫순혈주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오종탁 기자 2021. 12. 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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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의 CEO 외부 수혈로 내부 충격..'충격파로 분위기 쇄신' vs '공채에 책임 전가하며 역차별'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요즘 롯데그룹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단연 순혈주의 파괴다. 신동빈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중요 직책을 공채 출신 대신 외부 인사에게 맡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쇄신 효과는 분명히 눈에 띄지만, 실효성을 놓고 물음표가 따라붙는 것도 사실이다. 

재계 안팎에 대한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한 결과, 현재 롯데에서는 외부 수혈과 내부 동요란 양극단의 이슈가 상충하며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11월25일 롯데쇼핑 대표 겸 유통 사업군 총괄대표(부회장)로 김상현 전 홈플러스 부회장이, 호텔롯데 대표 겸 호텔 사업군 총괄대표(사장)로 안세진 전 놀부 대표가, 롯데컬처웍스 대표(부사장)로 최병환 전 CJ CGV 대표가 영입되자 각사는 물론 그룹 전체에 충격파가 퍼졌다. 

2020년 11월 한일경제인회의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연합뉴스

본격적인 외부 수혈은 시작에 불과 

이번 인사는 '충격 요법'에 그친 기존 외부 수혈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롯데 내부의 평가다. 특히 1979년 롯데쇼핑 설립 이후 외부 인사가 대표를 맡은 건 42년 만에 처음이다. 롯데 측도 이례적으로 "신동빈 회장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초핵심 인재 확보를 주문했다"며 인사 방향 전환에 관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김춘식 롯데지주 수석은 "외부 인재가 (오너 일가가 아닌) 직장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위 직책(부회장)에까지 임명된 것은 그룹의 본격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 볼 수 있다"면서 "순혈(공채 출신)만으로는 실적 부진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결론에 따라 수장(首長) 자리를 맡겼고, 앞으로도 '필요 시 외부 수혈을 계속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 밖에 롯데쇼핑 백화점 사업부 대표(부사장)로 신세계그룹 출신의 정준호 롯데GFR 대표가 내정되고, 한국까르푸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친 강성현 마트 사업부 대표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앞서 영입된 외부 출신 임원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자연스레 공채 출신이 대다수인 그룹 내 기류가 심상찮을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롯데지주 관계자는 "당장 롯데쇼핑 내부의 경우 김상현 대표가 앞으로 자기 사람, 즉 외부 인사들을 추가로 많이 데려올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라며 "물론 정통 롯데맨들이 '충분히 일 잘하고 괜찮다'는 평가를 받으면 외부 수혈 규모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변화가 지상과제인 현 상황에서 전자의 분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롯데쇼핑의 한 관계자는 "과거 부동의 유통업계 1위로 군림했을 때 한참 아래로 얕잡아 봤던 기업 출신이 이제는 우리를 평가하고 우리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를 속속 꿰차고 있다"면서 "더구나 홈플러스, 신세계 출신을 각각 롯데쇼핑의 1·2인자 자리에 올리는 인사를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은 직원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강력한 쇄신 드라이브에 대한 우려도 

'어떤 인재든 포용할 수 있는 개방성' '인재들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 등 롯데가 추구하는 인사 기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채 출신들에겐 '기회 제한과 불통 우려' '혁신과 실적 창출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 등 리스크를 안기는 모습이다. 기업 정보 포털 잡플래닛의 롯데쇼핑 직원 리뷰 코너에는 최근 들어 '공채·비공채, 타 사업부 출신, 경력직 등을 묶을 융화책이 필요하다' '신규 사업의 방향성이 모호하고 제대로 공유되지도 않는다' '상사들이 자리 보전에 매진한다' '사고가 터지면 탓만 하기 바쁘다' '회사의 10년 뒤 먹거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순 면피성 투자만 반복된다'는 등 조직 문화를 향한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롯데쇼핑에는 외부 충원 움직임과 전혀 다른 세상 얘기 같은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9월 롯데백화점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대상자 중 25%인 545명이 지원한 상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롯데백화점 지회는 "롯데백화점은 희망퇴직을 강행해야 할 만큼 어렵지도 않다"며 "할인점과 슈퍼 사업에서 경영 실패를 반복하면서 흑자인 롯데백화점 직원에게까지 롯데쇼핑 전체의 경영 실패 책임을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롯데마트도 4월 역대 첫 희망퇴직을 실시해 77명을 내보냈다. 얼마 전 또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130여 명이 퇴사를 앞두고 있다. 

롯데쇼핑의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4조6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줄었다. 롯데쇼핑의 4개 사업부 중 백화점 사업부만 매출이 늘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매출이 떨어졌다.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1조7892억원, 영업이익은 983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각각 3.6%, 40.3% 감소했다. 가장 부진한 사업부는 마트다. 롯데마트 매출은 코로나19 타격이 극심했던 지난해와 비교해 올 1분기 10%, 2분기 4.8%, 3분기 2.7% 각각 줄었다. 누적 매출은 지난해보다 7.8%, 금액으로는 371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이마트 매출은 3분기 누적으로 10.8% 증가했다. 롯데마트 영업이익은 1분기에 93.4% 줄어들고, 2분기엔 26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흑자 전환한 3분기에도 전년 대비론 50.5%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외부 출신 강성현 마트 사업부 대표는 무형의 체질 개선 성과를 인정받으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동빈 측근들 하루아침에 퇴진" 

일각에서는 신 회장의 쇄신 드라이브가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한 채 롯데의 조직 문화만 점점 더 비정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롯데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ON)'을 이끌던 조영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장(전무)은 올 2월 실적 부진을 이유로 사실상 경질됐다. 롯데는 보도자료로 근속 31년 롯데맨인 조 사업부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알리며 "조 사업부장은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으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온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등 질타에 가까운 혹평을 내렸다. 곧바로 이베이코리아 본부장 출신인 나영호 부사장에게 롯데온의 회생을 맡겼으나, 아직 성과는 나지 않고 있다. 이커머스 사업은 올 3분기까지 누적적자가 11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일본 롯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본 롯데홀딩스 관계자들도 한국 롯데의 외부 수혈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며 "지난해 8월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에 이어 이번에 강희태 롯데쇼핑 부회장까지, 그룹 2인자들이 하루아침에 물갈이되는 모습이 롯데의 이전 모습에 비춰보면 생경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 회장의 일본 내 측근이었던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전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도 지난해 7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개별적으로 구직활동 중인 것으로 안다. 신 회장으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 '구원투수'는 외부 출신으로 

위기의 유통 3사, 실적 안 좋으면 바로 밖에서 영입  

순혈주의에 균열을 내는 유통 대기업은 롯데그룹뿐만이 아니다.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롯데와 함께 '빅3'로 분류되던 다른 기업들도 위기 때마다 외부 수혈 카드를 쓰고 있다. 

신세계는 10월1일 임원인사를 통해 버거킹 한국 지사장, 이베이코리아 부사장, 써머스플랫폼(옛 에누리닷컴) 대표, 여기어때컴퍼니 대표 등을 역임한 최문석씨를 신세계까사 대표에 임명했다. 신세계까사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책임경영을 본격화한 이후 처음으로 인수·합병한 사례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실적이 좋은 백화점 부문 수장(신세계 대표) 자리에는 공채 출신인 손영식 전 신세계디에프 대표를 앉힘으로써 조직 안정과 통합을 꾀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 부문은 이번에 대표급을 교체하지 않았다. 대신 신세계아이앤씨, 신세계프라퍼티, 스타벅스, SSG닷컴 등에 외부 임원 약 14명을 영입해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2019년 2분기 사상 첫 영업적자를 기록한 뒤 대표를 강희석 전 베인앤드컴퍼니 소비재·유통 부문 파트너로 교체했다. 1993년 이마트 창립 이래 첫 외부인 출신 대표였다. 강 대표는 취임 1년 만에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뤄냈고, 지난해부터는 SSG닷컴 대표까지 겸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11월5일 한섬 해외패션 부문 사장으로 박철규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을 선임했다. 박 사장은 삼성물산에서 톰브라운, 아미 등 브랜드를 발굴하며 기획력을 인정받았다. 한섬은 타임, 마인 같은 탄탄한 자체 브랜드를 바탕으로 견조한 실적을 내왔으나, 포트폴리오가 국내 브랜드에 국한돼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2030세대가 해외 브랜드에 열광하는 상황에서 더 지체했다간 현상 유지도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싹텄다. 현대백화점이 창사 이후 처음 외부에서 사장급을 영입한 이유다. 

한편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30대 그룹 상장사 197개 기업의 상근 임원(사외이사 제외) 이력을 분석한 결과 전체 7672명 중 11.1%인 845명이 외부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셀트리온그룹(44.8%)과 카카오그룹(40%) 등의 경력직 임원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유통사업을 하는 30대 그룹 중에서는 CJ그룹이 25.2%로 외부 수혈을 가장 많이 했다. 현대백화점(17.5%), 신세계(6.5%), 롯데(2.3%)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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