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없이 샤넬백 사는 곳..아랍부호 선택한 7540만원 시계도

이소아 입력 2021. 12. 4. 09:00 수정 2021. 12. 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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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리셀·Resell)플랫폼들이 명품 상품군을 대거 확장하며 새로운 명품 소비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가치소비’ 추세를 활용해 거래 규모를 늘리고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등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고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는 최근 서울 역삼동 센터필드에 한정판 명품들을 모아놓은 ‘브그즈트(BGZT)컬렉션’이란 매장을 열었다. 브그즈트는 번개장터의 영문 초성이다.

주택 거실 느낌으로 꾸민 'BGZT 컬렉션'의 라운지 모습. 이소아 기자
오중석 작가의 '꽃' 시리즈 작품. 이소아 기자

매장은 누군가의 집처럼 꾸며졌다. 거실 격인 ‘라운지’에 들어서자 오중석 작가가 세계 주요 도시를 인공위성 사진 이미지를 편집해 재구성한 작품들과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하이퍼 리얼’로 촬영한 대형 꽃 작품이 걸려있다.

에르메스 홈&데코 제품(왼쪽)과 티파니&코의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이소아 기자

에르메스의 쿠션과 담요, 루이비통의 골프백, 국내에서 볼 수 없는 티파니&코의 탁구채, 게임용 카드 등이 눈길을 끈다. 곳곳엔 프랑스의 문화기업 ‘애술린’이 펴낸 큼지막한 브랜드 책이 놓여 도서관이나 뮤지엄 같은 분위기를 더한다.

바(bar) 테이블에 앉아 제품을 보면서 착용해 볼 수 있는 '젠틀맨 존'. 이소아 기자
테이블 안에 진열된 롤렉스 시계들. 최고가인 7540만원 상당의 여성 '데이트저스트' 시계(오른쪽). 이소아 기자

바(bar) 형태로 남성적인 취향을 반영한 ‘젠틀맨 존’에는 물량이 없어 못 구한다는 2020~2021년도 롤렉스 시계 40여개가 진열돼 있다. 모두 새 제품으로 평균 판매가는 3000만원에 달한다. 이 중 여성 시계인 ‘18캐럿 에버로즈 골드 오이스트 퍼펙츄얼 데이트저스트’는 7540만원에 달한다. 워낙 소량만 생산돼 대기 기간만 2년이 걸리는 제품인데, 미국 매장에서 아랍의 부호가 개인 사정으로 구매를 취소하면서 극적으로(?) 번개장터 수중에 들어왔다고 한다.

도서관 형태로 꾸민 '레이디존'에 여러 종류의 샤넬 가방이 놓여있다. 가장 위에 놓인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베이지 캐비어'가 1620만원으로 최고가 제품이다. 이소아 기자
국내에서 보기 힘든 샤넬 가방들. 왼쪽 상단의 'No. 5 퍼퓸백'은 2014년 샤넬 크루즈 컬렉션 런웨이에서 공개된 가방으로 국내엔 매물이 없다. 이소아 기자

건너편 방인 ‘레이디 존’엔 명품 열풍의 상징이 된 샤넬 제품이 가득하다. 2009년 빈티지부터 2021년 최신 제품까지 가방 70여개와 의류 26종류를 갖췄다. 역시 쉽게 보기 어려운 제품이 많은데 샤넬 향수병을 본뜬 ‘No.5 퍼퓸백’은 국내에 매물 자체가 없다. 스테디셀러인 ‘클래식 플랩백’도 레드·버건디·핑크·옐로우·블루·퍼플 등 다양한 색상의 제품을 한 자리에 모아놨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약 8개월에 걸쳐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매장에서 직접 제품들을 매입했다”며 “매장 방문 시 대기 없이 바로 희소성 높은 다양한 명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장엔 구매 상담실과 전문 인력이 배치된 검수실도 있다.


“명품 경쟁력이 곧 중고거래 경쟁력”


하지만 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게 매장을 연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최재화 번개장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모바일 앱에서 명품 거래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 번개장터가 개인 취향에 맞는 명품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진품 여부를 검수하는지 능력을 보여줄 공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번개장터에서 명품은 한 달 거래액이 134억원(9월 기준)으로 전체 거래액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거래가 활발한 품목이다. 최 COO는 “주력 제품을 바꿔가며 전시해 소비자가 명품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종합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기업 이미지도 고급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번개장터 외에도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명품 상품군(카테고리)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 계열사로 국내 운동화 리셀 플랫폼 1위인 ‘크림’은 최근 롤렉스와 샤넬 거래를 시작하고 가품일 경우 300%를 보장하는 보상 시스템을 마련했다. 한정판 제품 전문 마켓인 무신사 계열의 ‘솔드아웃’이 지난달 명품 카테고리를 신설했고, 운동화 전문 중고거래 사이트인 힌터의 ‘프로그’ 역시 조만간 명품 카테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무신사가 지난해 만든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앱 '솔드아웃' [사진 무신사]


10원 경쟁대신 ‘열망’좇는 명품 선택


전문가들은 중고거래업체들의 명품 강화를 소비 양극화와 소비자 취향의 고급화, 명품 거래의 특수성 등으로 설명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위기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소비가 양극화해 기능적인 것은 10원이라고 싸게 사려하지만, 브랜드 등 무형의 파워를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무리 비싸도 지갑을 열어 자신에게 보상하려 한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선 출혈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저가 시장보다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열망으로 성장 중인 고가의 명품 시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SNS 등을 통해 수많은 국내외 정보에 노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한정된 자원 속에서 하나를 쓰더라도 좋은 것을 쓰겠다는 인식이 늘면서 다른 것을 아껴 명품에 크게 소비하는 성향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중고거래, 코로나 끝나도 지속전망


중고지만 중고로 여겨지지 않는 명품의 특수성도 주목할 대목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명품 중고거래의 경우 돈이 없어 중고로 산 게 아니라 구하기 어려운데 구했다는 만족감이 훨씬 크다”며 “좀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팔면 되니 새 상품을 사는 장벽도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젊은 세대들은 ‘내가 쓰면 신상품이지 중고가 아니다’란 인식이 강한데다 지방엔 수요보다 명품 매장이 부족한 곳도 많아 명품 중고시장은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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