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견기업 직장인 오현욱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전세값 소식에 매일 뉴스 보기가 꺼려진다. 뉴스로만 접하던 이 소식이 결국 오씨에게 현실로 다가왔다. 오씨는 전세로 거주 중인 빌라 주인으로부터 전세 계약 갱신을 하려면 수 천만원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장 목돈이 없는 오씨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오씨의 현재 신용점수로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이 필요한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오씨는 은행으로부터 몇 달 전 발생한 카드대금 연체 이력으로 신용점수가 대폭 하락해 대출 한도가 줄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본인의 신용점수가 얼마인지 전혀 모르던 오씨 입장에선 당장 부족한 보증금을 마련한 길이 막막해진 셈이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 상황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 2분기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해 1800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지난 15일 국제금융협회(IIF)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 부채율은 104.2%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포인트(P) 불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가운데 1위다. 같은 기간 홍콩(5.9%포인트)과 태국(4.8%포인트), 러시아(2.9%포인트) 등과 비교해 상승 폭이 더 크다. IIF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가계 부채가 올해 상반기에만 1조5000억달러 늘어나 조사 대상 국가 3분의 1에서 국내 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빚투(빚내서 투자)’의 영향으로 국내 각 금융 기관은 이미 대출 규모를 강도 높게 조이고 있다. 각 금융기관들은 우대 금리 항목을 줄이거나 대출 심사를 더욱 깐깐하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신규 대출을 억제하는 중이다. 지난달부터 주요 시중은행 신용 대출 잔액은 감소세로 접어 들었다.
전문가들은 대출이 어려운 시기일 수록 신용 점수 관리가 대출 한도와 대출 실행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요인이라고 평가한다. 자연히 본인 신용 점수 관리에 대한 관심이 그 여느 때보다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올해부터는 신용 점수 쌓는 방식이 이전과 달라졌다. 지난 1월부터 신용점수제도가 전 금융권으로 확대 되면서 통신 요금과 건강보험 같은 ‘비금융’ 관련 정보가 신설됐고고 ‘카드 소비 패턴’ 정보가 점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아졌다.
통신요금과 건강보험을 제때 납부하면 기존 금융 거래 이력이 없어도 신용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대출을 제때 상환했더라도 통신요금과 건강보험을 연체하면 신용점수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 ‘카드 소비 패턴’의 경우 기존 신용카드에 더해 체크카드 이용 내역도 신용점수에 반영된다. 신용·체크카드를 무리 없이 적정 수준에서 쓰고 있는지 더 비중 있게 본다는 의미다. 카드 결제액이 한꺼번에 늘었다가 연체되면 신용 점수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한다.
신용 점수를 산정하는 요인들이 변하면서 신용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크게 늘었다. 토스·뱅크샐러드 같은 핀테크 업체 뿐 아니라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도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으며 무한 경쟁에 들어섰다.
카드사인 현대카드 역시 지난 1일 나이스평가정보(NICE)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두 곳이 제공하는 신용 점수를 동시에 보여주는 ‘내 신용점수 비교’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지금까지 개인 신용점수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들은 NICE나 KCB 둘 중 한 곳의 신용점수만 보여줬다. 하지만 카드나 대출 등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대다수 금융사들은 위 두 회사 신용 점수를 모두 참고해 가입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두 회사가 신용점수 측정에 사용하는 항목별 가중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스스로 본인 신용 점수를 검색하는 ‘내 신용점수 비교’ 서비스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의 크레딧카르마(Credit Karma)는 미국 대표 신용평가사 에퀴팍스(Equifax)와 트랜스유니온(TransUnion) 두 회사가 제공하는 신용 점수를 동시에 제공한다. 크레딧카르마 이용자 수는 1억1000만명에 달한다.
현대카드가 선보인 ‘내 신용점수 비교’ 서비스 역시 NICE와 KCB 신용점수를 한 화면에서 함께 보여줘 두 회사가 제공하는 신용 점수를 손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신용점수 변동 이력’을 포함해 어떤 금융기관에서 개인 신용정보를 얼마나 조회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신용정보 조회 이력’ 서비스도 제공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해당 서비스는 출시 3주만에 가입자가 30만명을 넘어섰다”며 “다음달 오픈 예정인 마이데이터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통해 자산관리와 부채 정보 같은 더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