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e메일 막고 성명문 삭제 압박..삼성 노조 "무노조 폐기 진정성 의심"
[경향신문]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의 단체 e메일 발송을 막고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성명문도 삭제하도록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했음에도 사측의 노조 탄압이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4개 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은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는) 노조에 적대적인 태도를 넘어 노조의 목소리를 막기 위해 불법은 물론 온갖 무리수를 동원하고 있다”며 “무노조 방침 철회가 그룹 총수의 가석방만을 위한 꼼수가 아니었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명확한 사과 및 재발 방지 입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일은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에서 비롯됐다. 삼성전자는 직원들이 서로 업무평가를 하는 동료평가제를 도입하고, 부서장의 직원 평가를 중간 면담에서 수시 피드백으로 바꾸는 내용의 인사제도 개편안을 마련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승격이 가능했던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하고 팀장의 평가를 통해 승격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노조는 개편안이 부서장의 권력을 지나치게 강화하고 직원들 간의 경쟁·불신과 줄서기 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노조는 사측이 개편안에 반대하는 성명서 게시와 전체 e메일 발송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사측이 성명문 게시 20분 안에 따로 연락해 ‘성명문은 허위사실 유포이며 노조가 삭제하지 않으면 회사가 삭제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노조가 사측과 주고받은 e메일을 보면, 사측은 노조가 요구한 전체 e메일 발송을 거부하며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단체협약상 노조가 전체 e메일을 요구하면 회사는 먼저 발송한 뒤 내용 수정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음에도 사측이 이를 어기고 e메일을 사전 검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지난 24일 노조의 성명을 보도한 온라인 보도가 포털사이트에서 최소 5건 삭제됐다며 언론 통제 의혹도 제기했다.
서범진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법원은 노조가 배포하거나 발표한 유인물의 일부 내용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해도 진실로 믿을 이유가 있고 노조의 정당한 활동이라면 불법이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며 “삼성의 이런 (탄압) 활동은 헌법에 반하고 노조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지키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삼성전자의 노조활동 개입과 방해는 삼성 재벌이 선언한 무노조경영 폐기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며 “삼성이 무노조경영의 올드 삼성이 아니라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뉴 삼성으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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