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재평가' 외치는 분들, 이걸 좀 보세요

김경준 2021. 11.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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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실체를 고발하는 책 2권,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와 '전두환 타서전'

[김경준 기자]

전두환이 죽었다. 불과 한 달 전 죽은 노태우에게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장까지 치러준 문재인 정부도 전두환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대통령 명의로 된 조화도, 조문도 없었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민주화의 싹을 짓밟고, 이듬해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한 독재자·학살자의 초라한 말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두환이 잔혹무도한 학살자이자 독재자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전두환 부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가 전두환 장군님의 명복을 빈다", "전두환 대통령 때가 살기 좋았다"는 등 전두환을 찬양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극우커뮤니티인 일베에는 아예 '인간 전두환이 멋있는 이유', '전두환 각하 시절이 살기 좋았던 이유' 등 전두환과 그의 시대를 미화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는 지경이다.
 
 일베에 올라온 전두환 찬양 게시물 및 추모글
ⓒ 일베 게시물 캡쳐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진다지만, 어떻게 전두환을 찬양하며 그를 '재평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광주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살아서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고, 우리는 그 아픈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국가적 차원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가. 재평가, 공과론이라는 미명 하에 자꾸만 전두환을 미화하려는 이들을 위해, 전두환의 실체를 철저하게 해부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부 기자의 전두환 추적기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표지
ⓒ 북콤마
 
2013년 출간된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은 한겨레 사회부 기자였던 저자 고나무가 '인간' 전두환을 추적하여 그의 민낯을 오롯이 드러낸 책이다. 생전 전두환이 남긴 증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회고록, 언론 보도 및 미국 외교·안보 문서와 같은 1차 사료들까지 참고하여 전두환의 실체를 고발하고자 했다.

저자는 전두환 시대의 정치를 '도둑 정치'로 규정한다. 국부(國富)를 사익으로 취하는 행위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시대, 유독 처가와 연루된 각종 비리 사건이 자주 터졌다. 1982년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유명한 이철희·장영자 사건 당시 이순자(전두환의 부인)의 작은아버지였던 이규광이 연루되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규광 외에도 전두환의 장인 이규동의 일화를 소개한다. 1980년대 부실기업 인수를 추진하던 한 기업의 담당자와 만난 이규동이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업을 찾아줄 터이니 그 대신 정치자금은 섭섭지 않게 준비하라"며 대놓고 뇌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1980년대 청와대에는 도둑님들이 살았다"고.

뿐만 아니라 저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온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던 '비선'이 전두환 정권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바로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는 공식 직책도 없이 정치에 개입했다.

1987년 4.13 호헌조치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전재국은 아버지 전두환에게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 차원의 헌법 문제에 관한 입장 정리와 담화 발표가 필요하다', '후계자를 선정해서 개헌 주도권을 위임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후계자로는 현재로서 노태우가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 같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해야 한다' 등 국정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는 6.29 선언을 짜는 자리에도 배석해 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전두환의 육성증언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청와대 만찬을 담당했던 호텔리어의 증언을 통해 전두환 시절 청와대의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 검식관(음식을 검사하는 사람)이 권총을 차고 호텔 주방에 들어와 권총 손잡이로 요리사들의 정수리를 찍곤 했단다.
 
"대통령의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의전의 일부였다. 게다가 전두환은 의전 중독자였다. '깡패 검식관'은 주방에 들어와 요리사에게 일일이 지시했다. 갈비탕 속의 갈비는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추듯, 크기를 맞춰 배열했다." - 213쪽

이러한 권위적·폭력적 의전은 인간 전두환이 평소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인간 전두환에 대한 저자의 총평이다.
 
"그는 가난에 주눅 들지 않는 생도였고, 사병들이 좋아하기 어려운 권위주의 타입의 사단장이었다. 냉혹하게 권력과 돈을 추구한 하나회의 핵심이자 지지자의 충성을 물질적으로 보상해야 함을 잘 아는 실용주의적 조직가였다. 역사 인식은 천박했지만,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대담하게 행동할 줄 아는 남자였다. 잔정이 많은 조폭형 리더였지만 동시에 광주 시민을 학살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냉혈한이었다." - 309쪽

공교롭게도 전두환이 사망함으로써 '아직 살아있는 자'라는 수식어는 이제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이젠 죽어버린 자'라는 제목으로 나와야 할 듯싶다.
'있는 그대로' 역사학자들이 엮은 <전두환 타서전>
 
 <전두환 타서전> 표지
ⓒ 그림씨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전두환과 그의 시대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역사학자들이 '엮은' 전두환의 일대기, <전두환 타서전>이다. 남이 쓴 전기라는 점에서 자서전이 아닌 타서전(他敍傳)을 표방한다.
이 책은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어 한창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에 출간됐다. 온갖 왜곡과 미화로 점철된 <전두환 회고록>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정일영, 황동하 엮은이들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고 어떤 일을 겪어 왔는지 돌아보고 또 기억하기 위한 책"이라고 강조한다.
 
"그 삼엄한 시대를 거치고서도, 고작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떨어져 나간 '살점들'을 잊었다. 그리하여 전두환을 웃음으로 이야기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그때가 살기 좋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운 좋게 별 탈 없이 그 시대를 거쳐 살아 있기 때문에 웃고 말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걸 잊은 채. 그리고 그 망각의 틈을 이용하여 누군가는 제멋대로 과거를 '회고'한다." - 4쪽

책은 동양의 전통적인 역사편찬체재 중 하나인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를 채택했다. 기사본말체는 사건 중심으로 그에 관련된 기사를 모아 사건의 발단과 결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형식이다.

시작은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의 유고(有故) 기사다. 뒤를 이어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언론통폐합, 삼청교육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 전두환 시대를 대표하는 굵직굵직한 사건 기사들이 시간 순서대로 나열된다. 마침내 전두환의 일대기는 2013년 7월 18일, 검찰의 전두환 미납추징금 집행 관련 입장발표 기사로 끝맺는다.

기사 외에 엮은이들의 주관적 평가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에 대한 역사학계의 적극적 평가를 기대했다면 이러한 형식이 다소 소극적으로 비춰져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 스스로 사관(史官)의 입장이 되어 그 시절 쓰여진 기사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오히려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권 유린과 민주화운동 탄압으로 점철된 당시의 시대상을 훑다보면, 과연 그 시절을 '살기 좋았다'고 회고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이 책이 나오고 나서도 전두환은 죽기 직전까지 일말의 반성도 없이 꾸준히 '망언'을 쏟아내다 갔다. 죽기 직전에라도 진심으로 사죄하고 진실을 고백했더라면 '전두환, 드디어 입을 열다', '전두환,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로 마지막 장을 장식한 개정판을 만나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밀려든다.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갔다. 보호순사(保護巡査)의 겹겹 파수(把守)와 철비전벽(鐵扉磚壁)의 견고한 엄호도 저승차사의 달겨듦 하나는 어찌 하지를 못하였으며 (…중략…) 살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이제부터 받을 일. 이것이 진실로 기막히지 아니하랴. (…중략…) 어허, 부둥켰던 그 재물은 그만하면 내놓았지! 앙탈하던 이 책벌(責罰)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1926년 2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매국노 이완용의 죽음에 대한 사설이다.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라는 헤드라인이 붙었다. 먼 길 떠나는 전두환에게도 묻고 싶은 말이다.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

추징금 미납은 둘째치고, 그는 끝내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떠났다. 나라 팔아먹은 짓을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떠난 이완용의 마지막과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그가 이제부터 영원히 받게 될 '책벌'이 참으로 무겁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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