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도 아디다스도 두 손 든 나라 中..'궈차오'에 빠졌다 [김지산의 '군맹무中']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2021. 11. 27.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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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펑화는 도산하지 않았으니 어서 구매하라고 당부하라는 내용/사진=웨이보

#최근 중국의 오래된 샴푸 회사 '펑화(꿀벌과 꽃)'가 도산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깜짝 놀란 펑화는 15일 웨이보에 실시간 생산라인 동영상을 게시하며 헛소문이라며 대응에 나섰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며 재차 대응했다.

누리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웨이보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이들이 실시간으로 펑화 소식을 알렸다. 삽시간에 '펑화'를 키워드로 한 검색 횟수가 4억건에 이르렀다. 펑화가 경영난에 처했다고 알려지자 펑화 샴푸 주문이 밀려들었다. 이른바 '야성소비'다.

펑화는 공식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보통 한 달치 판매량 2만개를 하루 만에 팔았다. 펑화의 공식 계정 팔로어 수는 10만명에서 70만명으로 늘었다.

SNS를 타고 퍼진 펑화 미담이 있어 가능했다. 지난 10년간 샴푸 가격을 고작 2위안(약 370원) 올린(현 상품가 9.9위안) 데다 1985년 설립 이후 36년간 한 번도 행정 처분을 받아본 적 없는 '착한 중국 기업'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졌다.

#7월20일 중국 허난성 대홍수 참사에 기업과 개인들이 잇따라 기부에 나섰다. 이름도 생소한 스포츠 의류기업 한 곳이 5000만위안(약 93억원)을 기부하면서 웨이보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주인공은 '훙싱얼커'.

2000년 6월 설립된 이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되는 등 전성기를 거친 뒤 공장 화재와 고급 브랜드화 실패 등을 겪으면 적자 상태에 놓여 있었다. 허난성 대홍수 기부를 계기로 회사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과거 몇 년간 조용히 재난 물자를 기부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애국 청년들이 나섰다. 7월26일 훙싱얼커의 바이두 검색지수와 정보지수가 각각 전주대비 1045배, 11만7457배 상승했다. 틱톡 생방송 시청자가 평소 4000명에서 1300만명 넘게 늘었다. 물건이 불티나게 팔렸다. 급기야 홍싱얼커 사장이 "제발 진정하라"고 호소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주 중국 최대 온라인 마켓 타오바오 생방송에서 훙싱얼커 매출액은 8000만위안(약 150억원)을 넘어섰다. 선전, 우한 등 도시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재고는 동이 났다.

'궈차오'. 국가와 유행의 합성어로 중국산 제품을 우선시하는 애국 소비 성향을 일컫는다. 애국 소비를 유발하는 동인은 다양하다. 펑화처럼 착한 자국기업이 어려움에 처했다거나 훙싱얼커같이 기업이 애국적 행동을 한 것도 '애국' 코드에 걸린다.

애국은 중국 젊은이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한편에서는 '이번 생은 글렀다'며 유유자적하는 탕핑족이, 다른 한편에서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이들이 공존한다. 6.25 전쟁에서 미국을 이긴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장진호'가 누적 흥행 수입 56억9400만위안(약 1조578억원)으로, '특수부대 전랑2'(약 56억9000만위안)을 누르고 흥행 1위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 '애국' 현상이다.

명품 브랜드 구찌가 중국 소비층을 겨냥해 선보인 컬렉션 구찌톈(Gucci Tian) 중 일부./사진=브랜드채널.

얼마 전 세계 최대 쇼핑 축제 광군제(11월11일, 솽스이)에서도 궈차오는 위력을 발휘했다. 바이두에서 국산 제품에 대한 검색이 42% 늘었다. 가장 많이 검색된 곳은 전자제품 브랜드 화웨이와 샤오미, 그 뒤를 스포츠웨어 브랜드 안타가 이었다.

청나라 시대 설립된 의약품 업체 팡후이춘탕은 광군제 당일 약초차와 전통 영양제가 싹 팔렸다. 전자상거래업체 징둥에서는 중국 음식과 의약품, 의류 등 전통 브랜드 매출이 전년 대비 105% 증가했다.

궈차오를 주도하는 세력은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와 링링허우(2000년대 출생) 등 Z세대들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는 모습을 지켜본 세대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부각한 중국몽과 신중화주의도 한 몫 했다. 약소국에 대해 '대국(중국)에 까불면 불벼락을 맞는다'는 식의 외교적 협박이 일상이 된 시대에 중국인으로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당연히 중국 제품은 세계 어느 나라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고 국산품을 이용하는 것이 곧 애국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매킨지에 따르면 주링허우와 링링허우는 중국 전체 인구의 25%에 불과하지만 중국 소비의 60%를 담당한다. 부양가족이 없다보니 '애국' 레이더에 걸리는 아이템에 돈 쓰는 걸 아까워 하지 않는다.

2018년 뉴욕 패션 위크에서 중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닝이 간체자로 '중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트레이닝복 데뷔가 궈차오의 시작이었다면 지난해 코로나19는 궈차오를 분출하게 한 사건이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일시 충격에 빠지고 온라인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싸면서도 질 좋은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주 소비층은 역시 모바일 거래에 익숙한 젊은층들이었다. 이들은 자국산 제품을 사면서 가성비에 눈을 떴다.

중국 내 전자상거래 전문 분석 업체 이방둥리(ebrun)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체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 브랜드의 침투율은 91.4%에 달했다. 중국산 제품은 더 이상 '싼 게 비지떡'류의 것들이 아니다.

궈차오 유행에 편승하려는 마구잡이식 시도가 판을 친다./사진=바이두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만 보더라도 이 회사는 운동화 기능을 높이고 착화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중국에서 3만개 넘는 발바닥 유형을 수집했다. 지난해 8억7000만위안(약 162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2015년의 3배에 달한다.

올 1~7월까지 매출액이 중국 내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인권침해와 관련한 신장산 면화 보이콧 움직임 속에 아디다스, 나이키, H&M 등 서방 브랜드 불매운동의 반사이익 효과를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기회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노력까지 깎아내릴 수는 없다.

궈차오의 의미를 단순히 'Made in China'가 아닌 중국적 색채를 덧입힌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보수적 주장들도 있다. 중국 전통 예술을 소개하는 '이수판저우'라는 블로그 운영자는 "궈차오는 두 가지 범주가 있는데 하나는 진짜 궈차오, 나머지 하나는 짝퉁 궈차오"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진짜는 중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에 현대 기술에 접목한 것이다.

전통을 사랑하는 정신은 높이 살만하지만 애국주의가 판을 치는 중국에서 궈차오 현상은 극단적 쇼비니즘(배타주의)으로 발전할 여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중국 전통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뛰어난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이 나온다고 해도 제작자가 외국 기업이라면 중국에서 설 땅이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중국은 무역이든, 문화든, 어떤 분야에서든 안으로만 파고들며 중국인들만의 외딴 섬이 될 수도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완전한 방역에만 몰두하며 나라 문을 걸어 잠근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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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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