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계약 상대, 내 살 길은 내가".. 워라밸 막는다면 언제라도 이직

전세원 기자 2021. 11. 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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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직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강남 교보타워에 있는 회사 사무실 로비에서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당근마켓 제공

■ 대한민국 30代 리포트 - ⑥ ‘생존적 개인주의’의 양면

권위주의는 강하게 거부하며

조직보다는 개인 이익 우선

적성·커리어·연봉 등 따라

생존 방식으로서 이직 선택

회사 생활보다 육아 우선하고

승진·인사평가에 목매지 않아

퇴근뒤 지인들과 사업 구상에

직장 다니며 사업 도전하기도

“팀 분위기를 해치지 마라.”

8년 차 직장인 김모(36) 씨는 대기업을 다니다 1년 전쯤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인 당근마켓으로 이직했다.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조직을 최우선하는 전 직장의 기업문화가 김 씨와 맞지 않았다. 김 씨의 공식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였으나 회사 대표에게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해 항상 15분 전까지 와야 했다. 한 번은 급한 약속이 있어 팀장보다 먼저 퇴근했다가 그다음 날 바로 위 상사에게 분위기를 해친다며 잔소리를 들었다. 김 씨는 지난 19일 문화일보와 만나 “분기별 인사고과에서 팀원이 돌아가면서 최고점을 나눠 가졌는데, 이의를 제기하면 ‘네가 잘한 건 알지만 팀 전체의 사기가 중요하다’는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요즘 김 씨는 자유롭고 거침없는 의견 개진이 가능한 새로운 기업문화를 체감하며 만족해하고 있다. 당근마켓에서는 6개월마다 동료와 리더가 직원을 평가하는 ‘360도 평가’를 진행한다. 단순 성과에 따른 인사고과가 아니라 동료의 장점과 고마운 점, 개선점 등을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하며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김 씨는 “‘메타인지(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가)’로 소통하면서 나와 회사가 동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생존적 개인주의’와 ‘워라밸’= 개인을 중시하고 내 이익을 위해 이직을 스스럼없이 선택하는 김 씨와 같은 오늘날 30대의 모습은 이들의 성장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해 취업 전선에서 무한 경쟁을 체험했다. 국가와 사회가 나의 일자리와 안정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내 이익을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존적 개인주의’ 성향으로 인해 조직보다는 나의 이익을 우선하고, 이를 방해하는 권위주의를 강하게 거부한다. 강정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대는 장기 불황이 시작되는 시기에 혼자서 취업을 준비했기 때문에 ‘내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주의적 개인주의 성향이 관찰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가 중심인 30대는 나의 행복과 삶의 질을 우선으로 여기므로 조직과 일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일과 개인 삶의 균형을 꾀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능력만 된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으로 언제든지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겐 회사가 “계약 상대”로,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일했던 기성세대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기회가 있을 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보이기도 한다.

◇“나만의 삶 추구” = 현직 경찰인 김모(33) 경위는 경감 진급 시험을 미루고 있다. 업무량이 많고 민원인 상대가 점점 힘들어지자 로스쿨 진학 등 다른 진로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경위와 경감이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나보다 1∼2년 늦게 임용된 후배들이 먼저 진급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9년째 근무하는 박모(38) 씨는 임원들이 별로 부럽지 않다. 오히려 회사를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특히 몇 년 전 아이가 생기면서 회사 생활보다 육아에 더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행복을 가장 우선에 두는 ‘욜로(You Only Live Once·YOLO)족’인 셈이다. 박 씨는 “과거에는 남자가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맞벌이 부부가 대다수라 남자의 경제력이 사회적으로 더 강조되지는 않는 듯하다”면서 “나의 30대를 회사에만 투자하기보다는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직은 트렌드” = 힘들게 취업의 문을 뚫은 30대 직장인들은 적성, 커리어, 연봉, 회사 분위기 등을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경쟁업체나 스타트업에서 먼저 이직 제의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모(여·31) 씨는 지난 2016년 마케팅 전문업체에 처음 취업한 후 관련 업계에서만 4번 이직을 했다. 그는 “이직은 나와 맞는 회사를 찾거나 연봉협상을 통한 몸값 상승 등 여러 장점이 많다”면서 “요즘은 이직하는 직원이 많아서 소속 회사에서도 직원을 붙잡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모(32) 씨는 4년간 다니던 종합상사에서 최근 한 제조업체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고 옮겼다. 이 씨는 “다양한 아이템을 다루는 상사는 사업을 배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며 “이직의 장점은 꾸준히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퇴근 후 꿈꾸는 나만의 사업 = 농협에서 예금과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33) 씨는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또래 친구들과 ‘사업’을 주제로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신발로 돈 버는 기술인 ‘슈테크(슈즈+재테크)’와 블로그를 통한 기업 제품 홍보 등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관련 내용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씨는 “대리를 거쳐 언젠가 지점장이 될 때까지 이 업계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이제 내 또래 친구들은 회사에서 내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살길을 찾아보는 것이 필수가 됐다”고 밝혔다.

광고대행업계에 종사하는 5년 차 직장인 조모(여·34) 씨는 지난해 상반기 의류 사업에 도전했다.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열리는 동대문 의류 도매시장에서 상품성이 있는 옷을 1벌만 구매한 뒤 사진을 찍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올려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도매시장에 발주를 넣는 ‘백투백 거래 방식’이었다. 그러나 조 씨의 인생 첫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스마트스토어는 소자본 창업이 가능해 경쟁자가 많았고, 홍보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3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조 씨는 “언제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모르고,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했다”며 “사업 실패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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