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발언을 인용한 언론 보도를 ‘금지’했다는 제목의 보도가 나왔다.

매일경제는 지난 16일 ‘선관위 ”이재명 비판한 진중권 글 보도 말라“’ 기사를 냈다. 서울경제는 18일 ‘[사설] ‘李 비판’ 진중권 발언 못 쓰게 한 선관위, 언론 재갈 물리기다‘ 사설을 통해 선관위가 진중권 전 교수 발언 인용 보도를 금지한 것처럼 다뤘다.

한국경제는 ‘“이재명 비판 진중권 페북글 보도 위법”…도 넘은 선관위’ 기사를 내고 선관위가 진 전 교수 페이스북 게시글을 전한 보도를 ‘위법’으로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 매일경제 기사와 서울경제 사설 갈무리
▲ 매일경제 기사와 서울경제 사설 갈무리

같은 날 이뤄진 다른 심의 조치와 비교한 보도도 있다. TV조선은 뉴스9에서 진중권 전 교수 발언을 다룬 보도에 주의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전한 뒤 “선관위는 ‘이 후보를 도와야 한다’고 지지 발언을 한 김어준씨 유튜브에 대해서는 ‘주의’ 아래 단계인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했다”고 비교했다. 

▲ TV조선 보도 갈무리
▲ TV조선 보도 갈무리

 

진중권 인용 ‘금지’ ‘위법 판단’ 표현 사실 아냐

이들 보도는 하나하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심의 주체는 선관위가 아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선관위 산하 기구이자 별도 위원회다. 직접적인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선관위와 달리 인터넷 보도에 대한 심의를 하는 기구로 역할에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결정 주체를 선관위라고 보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공직선거법 자체가 아닌 ‘인터넷선거보도 심의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심의하는 기구다. 즉, 제재를 결정한 언론 보도를 ‘위법’이라고 판단한 건 아니다. ‘심의규정 위반’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가 이들 보도를 ‘금지’할 수도 없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의 제재 규정에 따르면 ‘공정보도 협조요청’ ‘주의’ ‘경고’ ‘경고문 게재’ ‘반론보도’ ‘정정보도’ 순으로 수위가 높아진다. 

‘주의’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해당 보도가 심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판단이 있지만 특정 보도를 금지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강제성 있는 조치도 아니다. 예컨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정지도를 결정했다고 해서 언론에서 이를 ‘위법’이나 ‘금지’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인용 보도만 하면 주의 결정?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가 지난 15일 홈페이지에 올린 심의 결과에 따르면 이데일리는 진중권 전 교수 발언 가운데 ”그렇게 잔머리 굴리시면“ ”이재명 ‘대장동’ 몰랐으면 박근혜, 알았으면 이명박“ 등을 전한 대목이 문제가 돼 ‘주의’ 결정을 받았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언론 보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주의를 결정한 이유는 과거 동일 패턴의 보도로 인해 공정보도 협조 요청을 한 바 있기 때문”이라며 “같은 기준을 계속 위반한 경우 누적 조치를 해 수위가 상향되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반복된 이데일리 외의 다른 보도는 모두 공정보도 협조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데일리는 지난 10월 진중권 전 교수 인용 보도로 이미 공정보도 협조 요청을 받은 바 있다. 심의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언론 가운데는 이데일리가 과거 가장 낮은 수위의 조치를 받았지만 문제가 반복돼 수위가 올라갔다는 맥락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일부 언론은 방송인 김어준씨가 딴지일보에 게시된 유튜브 방송을 통해 ‘공정보도 협조 요청 ’ 조치를 받은 사례와 비교했는데 첫 심의 기준으로 보면 같은 수위의 제재를 받은 것이기도 하다.

▲ 위 표가 지난 10월 이데일리 심의 결과, 아래가 11월 심의 결과. 이데일리는 처음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받았지만 같은 문제가 반복돼 '주의'를 받게 됐다. '차별적 심의'를 주장하는 언론에서는 이 가튼 사실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 위 표가 지난 10월 이데일리 심의 결과, 아래가 11월 심의 결과. 이데일리는 처음 '공정보도 협조요청'을 받았지만 같은 문제가 반복돼 '주의'를 받게 됐다. '차별적 심의'를 주장하는 언론에서는 이 가튼 사실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진중권 인용 보도 주의 적절한가?

진중권 전 교수 인용 보도에 대한 제재에 심의 ‘적절성’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와 관련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관계자는 “사안마다 차이가 있다”면서 “일방적 주장을 반론 없이 전한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보다는 감정과 편견이 개입된 표현이 더 문제가 된다. 논객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언론은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지만 인용할 때 감정과 편견이 들어간 주장을 여과 없이 따옴표로 내보내면 문제라는 인식이 위원들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진중권 전 교수에 대한 인용 자체를 문제 삼은 게 아니라 누구를 인용하든 지나친 표현까지 여과 없이 인용하는 경우 심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실제 심의에 반영된 위원 개개인 입장은 알 수 없어 정치 성향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의혹 제기는 할 수 있다.  다만 심의 형평성을 지적하려면 단편적인 개별 심의뿐 아니라 대선 인터넷선거보도심의 전반의 경향을 파악해 비교해야 한다. 차기 대선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에서 이재명 후보가 화천대유 등 보도 40건에 심의 신청을 했지만 대다수가 ‘기각’된 맥락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심의 제재 적절성 논쟁과 별개로 이재명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적극적으로 심의 신청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에는 후보자가 직접 신청해 심의를 하는 ‘이의 신청’ 제도가 있는데 이는 절차에 따른 것이지만 과도하면 논란이 될 수 있다. 

2014년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 심의백서에서 당시 이은주 심의위원은 “정당·후보자의 이의신청 기각률이 50%에 이른다는 점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의신청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면서 “단순히 언론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이의신청이 오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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