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가난한 노동자 생활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방현석 2021. 11.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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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방현석 기자]

   
 
2

단풍이 언진산 골짜기까지 깊이 내려갔다.

벌채 작업도 막바지였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해는 짧아졌다. 작업을 마치고 파김치가 된 인부들이 대접을 들고 저녁 배식을 받았다. 고된 노동이 끝나고 주린 배를 채우는 시간, 인부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저녁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오늘이 그랬다. 배식 순서의 마지막이 우리 3조였다.

"개밥이네..."
숭늉을 끓이던 가마솥에 남은 감자밥과 짜게 무친 나물을 모두 쓸어 넣는 것을 본 상식이의 입이 삐죽 나왔다. 녀석의 나이 열한 살이었다. 품삯도 없이 세끼 얻어먹는 게 유일한 낙인 녀석의 입이 나올 만 했다.

"이런 육시럴, 계집들이 배식을 어떻게 쳐했길래 개밥을 만들어."
가마솥에 물을 양동이째 들이붓는 1조의 여자 일꾼에게 초지공장의 건조반장 주호삼이 욕설을 퍼부었다.

배식을 받으면서 자기 것이 많다고 하는 인부는 아무도 없었다. 적다고 따지며 눈알을 부라리는 인부들은 수도 없었다. 주걱을 잡은 식사조의 여자 일꾼들은 모르쇠하려고 애썼다. 더 달라는 대로 주면 마지막 조는 굶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행실이 험한 왈패들에게는 후환이 두려워 더 퍼주고 말았다. 겁박이 무서워 밥을 더 퍼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을 그렁거리며 밥그릇을 다시 내미는 이들이 애처로워 주걱을 한 번 더 쓸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밥을 퍼주게 되는 인부들은 거의 애 딸린 홀아비와 과부들이었다. 집안에 먹을 양식도, 거둬줄 식구도 없는 애들은 밥 때가 되면 에미, 아비를 찾아 총령으로 올라왔다. 직공장의 눈길을 피해 밥솥이 걸린 초막 주변을 서성거리다 에미, 아비가 타오는 밥 한 그릇을 식구대로 나눠 먹었다. 감자밥 한술 얻어먹으려고 오 리나 되는 산길을 걸어 올라온 아이들, 그 아이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제 주린 배를 견뎌야 하는 홀아비와 과부들의 사정을 모른 척 할 수 있는 여자 일꾼은 많지 않았다.

마음 약한 여자 일꾼이 배식을 하다보면 마지막에는 밥이 부족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남은 감자밥과 나물, 건건이를 있는 대로 모두 가마솥에 쓸어 넣고 물을 잔뜩 부어 양을 불렸다. 밥도 죽도, 국도 아니었다. 무슨 맛인지도 알 수가 없는 그 먹을거리의 이름을 인부들은 개밥이라고 불렀다.

"우린들 이거 먹고 싶어서 개밥 만들겠어요?"
주호삼의 계속되는 욕설을 듣고 있던 삼십 중반의 여자 일꾼이 더는 참지 못하고 한 마디 쏘아붙였다. 그랬다. 배식 주걱과 국자를 잡은 사람은 모든 배식이 끝난 다음 밥을 먹었다. 배식을 잘못하면 그들이야말로 굶어야 했다.

"이런 밑구녕을 찢어도 시원찮을 개잡년이 뭘 잘했다고, 어디다 대고 주둥아리를 놀려."

입이 더럽기로 소문난 주호삼은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졸지에 개잡년이 된 여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주호삼은 그 모습에 더 신이 나는지 열을 올렸다. 명색이 초지공장의 장판반장인데다 워낙 행실이 너저분해서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듣다 못한 내가 한마디 하려는데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그냥 처먹으라이."
장진댁이었다.

"이년이... 뭐라는 거야?"
주호삼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냥 처먹으란 말입메."
장진댁의 목소리가 너무나 태연해서 나는 놀랐다. 말문이 막히는지 씩씩거리며 노려보는 주호삼의 눈길에도 여자 고공 중에서 최고참인 장진댁은 끄떡하지 않았다. 인부들은 일제히 마주 노려보고 선 두 사람의 눈길을 쫓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손과 발을 쳐다봤다. 장진댁의 손발은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주호삼의 손끝은 파들파들 떨렸고, 다리는 굳어 있었다.

"계집년이 어디 감히... 남자한테 기어오르려고 들어."
"무시기 스나이? 건건이가 워낙 모자란 걸 모르겠슴메? 스나이 값으 하려면 직공장, 사장한테 가서 밥이 모자라오, 양식으 더 내놓으오, 말으 하란 말임메."
사내임을 내세운 주호삼에게 코웃음을 치던 장진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마침 저기 오오."
직공장 유해생과 사장 유임생이 배식장 쪽으로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자, 그 잘난 스나이 값으 좀 해보기오."
직공장과 사장을 본 주호삼의 다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 후들거렸다.

"뭐야, 왜 소란스러워?"
유해생이 인부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자 장진댁이 주호삼을 쳐다보며 다그쳤다.

"말 하기오."
주호삼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장판반장, 무슨 일이 있으신가?"

그렇게 젊잖게 주호삼에게 물은 건 사장 유임생이었다. 유임생의 말투는 예의 독특한 반 올림과 반 내림이었다. 공장의 반장만 되어도 고공의 나이가 많건 작건 모두 하대를 했다. 하지만 사장 유임생은 말단 고공은 물론 한철 일꾼들에게도 하대를 하는 일이 없었다. 한 마디 안에 공대와 하대를 묘하게 뒤섞은 그의 말투는 아랫사람을 어렵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나도 처음에는 몰랐다. 유임생은 공대와 하대를 버무린 자신의 말투가 아랫사람에게 그를 어렵게 여기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즐겼다. 조지소의 누구와도 격이 다른 사장 유임생의 물음에 초지공장 장판반장 주호삼은 턱이 가슴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스나이가 왜 면바로 말으 못 하오. 건건이가 모자란다고 말으 하오다."
장진댁이 다시 몰아붙였지만 주호삼은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 채 곁눈길로 직공장과 사장 형제의 눈치만 보았다.

"밥이 모자라신다니 무슨 말이신가?"
가마솥 안의 개밥을 확인한 사장 유임생이 근엄한 눈길로 인부들을 둘러보며 인자하게 말했다. 그런데 하필 그의 눈에 금희네의 큰딸 금희와 동생 은희가 걸려들었다.

"저것들은 무엇인가?"
큰딸 금희의 손에 배식 대접이 들려 있었다.

"저 중생들도 일꾼이신가?"
사장이자 형인 유임생의 우아한 힐책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공장 유해생은 야차같이 달려들어 금희의 손에 들린 대접을 잡아챘다. 유해생의 손에 넘어간 대접을 붙들고 늘어진 것은 네 살 은희였다. 밥이 쏟아졌고, 땅바닥에 흩어진 밥알과 감자 덩어리를 본 은희가 울음을 터뜨렸다.

"뭘 잘했다고 울어, 도둑년들 주제에."
유해생이 소리쳤다.

"우리 도둑 아니에요. 이거 우리 우리 밥이란 말입니다."
울고 있는 네 살 동생을 껴안은 채 여섯 살 금희가 말했다. 울먹였지만 말끝이 야무졌다.

"우리 밥? 네깟 것들이 뭘 했는데."
유해생은 빈대접을 아이들 눈앞에 휘둘렀다. 돌아앉아 젖을 물리고 있던 금희네가 젖먹이를 안은 채 달려왔다.

"내 아이들한테 그러지 마세요."
금희네의 볼 위로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젖먹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어미의 젖을 악착같이 물고 있었다. 밥그릇을 빼앗긴 네 살 은희는 금희네의 치맛자락 뒤로 숨었지만 여섯 살 금희는 제 어미를 지키려는 듯 입술을 앙다물고 금희네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저, 공밥 먹은 적 없어요. 저한테 밥 두 그릇 준 적 있어요?"
한기들린 사람처럼 덜덜 떨리는 턱과 함께 젖먹이를 안은 금희네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뭐야?"
유해생이 손에 든 빈 대접을 금희네의 눈앞에 흔들었다.

"누가 먹건 이건 내 밥이고, 굶어도 내가 굶어요. 우리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도둑질을 하고 살진 않았어요."

젖먹이를 가진 금희네는 먼저 배식을 받아 대접을 아이들에게 쥐어주고 막내에게 젖을 물렸다. 금희네 아이들이 따로 밥대접 하나를 차지한 줄 알았던 유해생은 머쓱한지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래?"
유해생이 들고 있던 대접으로 금희네를 가리키며 밥주걱을 든 배식조를 향해 명령했다.

"다 들었지. 저것들은 밥은 탔다니까 절대 다시 주면 안 돼."
금희네 온 가족을 굶기라는 소리였다. 더러운 놈, 일꾼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주호삼을 제외한 모두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우인 유해생과 달리 형인 유임생은 인부들의 눈빛을 읽을 줄 알았다.

"어찌 인심이 그러실 수가 있겠는가. 저 중생들도 드셔야지."
그래도 명색이 동학을 하는 사장 유임생이었다. 직공장인 동생 유해생과는 달리 점잖게 덧붙였다, 드셔야지. 하지만 밥을 더 주라는 말은 없었다. 부족한 양식을 늘리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도침공장은 오늘 야근이니 든든히들 드시게."
사장 유임생이 이 저녁에 공장에 나타난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벌채를 시작하기 전에 도침까지 끝내둔 백지 완제품의 재고가 모자라거나, 갑자기 큰 주문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유임생은 도침공장을 향해 팔자걸음을 옮겼다. 유해생도 유임생의 뒤를 따랐다. 그는 돌아서면서도 젖을 물리느라 옷고름을 풀어헤친 금희네의 가슴을 힐끔거리며 모진 소리를 했다.

"쥐뿔도 없는 게 젖통만 커서는."
금희네는 젖먹이를 안은 채 다시 돌아앉았다. 병아리 새끼들처럼 제 어미의 양쪽에 금희와 은희가 오종종 쪼그리고 앉았다. 이 가난한 고공 일가를 감싸주기에는 아직 저녁 어스름이 너무 옅었다. 사장과 직공장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대접을 든 여자 고공과 일꾼들이 한마디씩 했다. 든든히 드시게? 야차 같은 놈, 천벌을 받을 놈들. 하지만 남자 인부들은 사장과 직공장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도침공장의 다림질반 고공인 금희네는 야근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여섯 살 금희는 주린 배를 견디며 등에 젖먹이를 업고, 네 살 동생의 손을 잡은 채 캄캄한 밤길을 걸어 산을 내려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헤치고 내려가야 할 어두운 밤길보다 덜 캄캄한 날이 가난한 저 아이의 앞날에 며칠이나 될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금희야, 은희야."
나는 두 아이를 불렀다. 쭈삣쭈빗 다가온 금희에게 내가 받은 대접을 내밀었다. 두 녀석이 동시에 대접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스름 속에서도 녀석들의 초롱초롱한 눈은 빛이 났다. 머뭇거리는 두 녀석에게 나는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저씨는 개밥 안 좋아해."
"정말이에요?"
네 살 은희가 물었다.

"그럼. 아저씬 오늘 맛난 막걸리 사 마실 거야."
금희에게 대접을 안기고 돌아서는데 금희네가 불렀다.

"무철씨."
금희네가 무슨 말을 할지 뻔했다. 금희네의 눈빛이 저녁 어둠 속에서 아득했다. 나는 아이들을 가리키고 나서 돌아섰다. 가난하다고 어찌 자존심이 없겠는가. 금희네는 마음이 여린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이 없는 고공이 아니었다. 나는 금희네가 자신의 자존심과 두 아이의 목구멍 사이에서 더 갈등하지 못하도록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했다.

금희네가 나를 찾아온 건 자시가 넘은 한밤중이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숙소 밖 평상에 혼자 누워 총령으로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숙소 밖 평상에는 밤이슬이 내렸다. 어느새 바람마저 쌀쌀해 평상에 나와 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도침공장 고공들은 야근에 들어가고 무지공장과 초지공장의 고공들은 모두 노동에 지쳐 깊은 잠에 빠진 그믐밤, 캄캄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모든 별은 고스란히 나의 차지였다.

높고 아득하게 빛나는 별은 수없이 많았다. 다섯 개의 대형을 이루어 밤하늘을 가르고 총령을 넘어가는 백 마리가 넘는 기러기의 숫자도 한눈에 셀 수 있었지만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다 셀 수 있었던 밤은 아직 없었다. 제대로 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길을 되돌리면 어느새 있던 별이 사라지고 없던 별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 수많은 별 중에서 다른 모든 별과 구별되는 단 하나의 별은 언제나 바로 찾아냈고, 잠들 때까지 바라보았다. 모든 별이 자리를 바꾸어도 언제나 한 자리를 지키며 밤을 가르고 비행하는 철새들의 항로를 안내하는 유일한 별.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며 반짝이는 그 별을 나는 무아별로 정했다. 오늘도 언진산맥 위로 떠오른 무아별은 나를 향해 빛났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내게 금희네가 한 번도 하지 않던 부탁을 했다.

"미안한데, 저 좀 데려다주면 안 될까요?"

가난한 고공들 중에서도 가난했지만 자존심이 여간하지 않은 것으로 소문난 금희네였다. 쉽게 곁을 주지 않는 금희네에게 서방 잡아먹은 과부 주제에 얼굴값을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인부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과 세 딸을 지키기 위한 금희네의 필사적인 발버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았다. 그녀에게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서방 없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들의 눈길이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자존심을 건드릴까 나도 저어될 만큼 누구의 도움도 한사코 마다하는 여자가 금희네였다.

"?"
나는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오늘 술을 한잔 했는데..."
나는 정말 막걸리를 사 마셨다. 공장에서 벌어지는 더럽고 야비한 꼴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견디기가 너무나 힘든 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막걸리를 마시고 나의 별을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정말, 미안한데. 오늘 한 번만 부탁해요."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금희네의 부탁이어서 두 말 않고 따라나섰지만 왜 그녀가 그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야근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한밤중에 귀가하는 것도 처음일 리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 앞서 내려가며 피해야 할 돌부리와 건너뛰어야 할 개울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녀가 왜 내게 동행을 부탁했는지를 안 것은 늑대바위에 이르러서였다. 늑대바위는 금희네가 사는 마을로 내려가는 마지막 산모퉁이에 있었다. 가축을 채러 내려온 늑대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밤이 깊기를 기다리는 바위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아랫마을에서 밤중에 우는 아이도 그치게 만드는 것이 늑대바위였다. 늑대바위에 데려간다고 하면 아이들이 울음을 그칠 만큼 무서워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늑대바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늑대가 아니었다. 바위 위에서 기다린다는 늑대 대신 바위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이었다. 앞선 금희네만큼 뒤따르던 나도 놀랐다. 사장 유임생이었다. 직공장 유해생이었으면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분명 사장 유임생이었다.

"초지반...장, 자네가... 어떤 일이신가?"
놀란 것은 금희네와 나만은 아니었다. 3년 넘도록 유임생이 말을 더듬는 것은 처음 보았다.

"총대께선 이 시간에 어떤 일이신지요?"

나는 늑대 앞에 선 것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는 금희네의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유임생은 조지소의 고공들에게 자신을 사장이 아닌 총대로 부르게 했다. 총대는 동학의 지역책임자였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었다. 하지만 여기는 산이었고, 선택과 결정권은 그가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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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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