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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과학 영재' 출신 작곡가 김택수 "국악 할 때 더 실험해요"

등록 2021.11.18 10: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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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버를로우 작곡상 영예

6년만에 국립국악관현악단 '리컴포즈' 신작

'입타령'-'무궁동(Moto Perpetuo)' 선보여

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11.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1.11.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관객들이 웃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요. '입타령'의 끝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에요."

'과학 영재' 출신으로 올해 한국인 최초 버를로우 작곡상을 수상한 작곡가 김택수는 늘 새로운 실험에 도전한다.

지난 2015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작프로젝트 '리컴포즈'에서 '문묘제례악'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보여준 그는 6년 만에 다시 위촉 신작 두 곡을 선보인다. 공연은 오는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지난 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난 그는 "이번엔 두 곡을 쓰니까 부담감이 두 배였다. 국악은 아직도 어렵다. 알면 알수록 끝이 없다. 다시 새로 공부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국악을 할 때 더 실험해요. 국악 전문가가 아닌 제게 의뢰한 건 엉뚱하고 새로운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서겠죠. 제가 착한 사람이라서 기대가 있으면 만족을 시켜야 하거든요.(웃음)"

구음 활용한 '입타령'-미니멀리즘 국악관현악 '무궁동' 공개

이번 공연에서는 '입타령'과 '무궁동(Moto Perpetuo)'을 선보인다. '입타령'은 클래식의 보칼리제(Vocalise)나 재즈의 스캣(scat)처럼 사람의 입에서 내는 소리인 구음의 순우리말로, 정가 중 가사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나는 구음의 특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가곡 이수자인 가객 박민희가 함께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1.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1.18. [email protected]

그는 "박민희씨가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평범한 걸 하면 안 되겠다고, 더 이상한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곡을 비틀어서 '어떻게 이런 걸 했어?'라는 말이 나오기 직전까지 하면 좋겠다 싶었다"고 밝혔다.

여섯 개의 곡으로 구성된 '입타령'은 'Nong(농)-인☆가(feat. 권주가)-th ㅓ-스겅-(제목 없음)-입가심(feat. 매화가)'의 제목을 붙이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다. "과학자의 실험이나 성공한 논문은 '이건 더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로 끝나죠. 국악에 없는 발음이나 다양한 음역을 쓰면서 이게 국악처럼 들릴까 고민했어요."

그는 "'농'의 경우 국악에서 중요한 요소가 떨림인데, 어디까지 확장해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성악이 관현악과 어우러져 어떻게 증폭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인☆가'는 시간에 대한 실험이다. 인스타그램에 10초, 20초 영상인 릴스가 올라오는데, 음악의 아름다움을 10초 안에 어떻게 압축해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각종 길이로 실험해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3악장은 한국어에 없는 자음들을 썼고, 4악장 '스겅'은 가장 와일드한 느낌으로 입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했다. 5악장은 국악에서 잘 볼 수 없는 극단적인 음역을 사용했고, 일부러 제목을 안 지었다. 6악장은 국악에서 자주 쓰는 음계를 벗어났을 때 어느 정도 국악으로 보일 것인가를 실험했다. 숨겨진 미션도 하나 더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음악 장르인 미니멀리즘과 국악관현악을 접목한 '무궁동'은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표현했다.

그는 "'입타령'보다는 쉬운 곡을 쓰고자 했다. 미니멀리즘에서 중요한 건 패턴인데, 처음 나오는 패턴을 계속 변화시켜간다"며 "대금 소리는 네온사인 같고 아쟁 소리는 타임랩스로 보여주는 서울 야경 같은, 그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흘러가는 대로, 도시적인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1.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1.18. [email protected]


한국인 최초로 버를로우 작곡상 영예…"믿을 수 없어, 로또였다"

그는 화학 영재 출신의 이색 경력으로도 눈길을 끈다.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나가 은메달을 땄고,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했지만 음악에 뜻을 품고 다시 같은 대학 작곡과에 들어갔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원에서 작곡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바탕에 있는 '이과적 마인드'는 그의 실험 정신을 깨운다. 그는 "화학이 이것저것을 섞어 만들지 않나. 실제 '이 음악과 저 음악을 7대3으로 섞어보자'고 생각한다. 각각 가진 것을 분해해 녹인 다음에 섞는데, 그래서 합쳤을 때 새로운 게 나온다. 편곡자로 꽤 활동한 것도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독특해야 하고, 남들이 안 한 걸 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이라는 단어를 예체능계와 이공계가 보는 관점이 다르잖아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제 음악을 구별 짓게 만드는 요소죠."

클래식에 바탕을 두지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한국적 색채를 담은 일상적이고 친근한 소재로 재미를 더한다. 지난 3월 발표한 '짠!!(Zzan!!)'은 한국의 음주가무를 주제로 했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빨리! 빨리!(Pali-Pali)'는 한국의 '빨리 빨리' 정신을 녹여냈다. 합창곡 '찹쌀떡', '국민학교 환상곡' 등 일상의 기억과 한국의 풍경을 재치있게 담아냈다.

그는 "작곡은 제가 가진 모든 걸 갈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외에도 어렸을 때부터 K가요, 트로트, 재즈, 메탈 등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자랐고, 한국적인 뿌리가 빠질 수 없다. 재미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1.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김택수 작곡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11.18. [email protected]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 8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버를로우 작곡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40년 가까운 유서 깊은 국제적인 상으로 경쟁률은 500대1 정도로 높다. 농구공 튀는 소리에 착안한 '바운스'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아마빌레' 두 곡을 제출했다.

탈락 통보려니 하고 처음엔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는 그는 이내 수상 소식에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사실 왜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웃으며 "믿을 수가 없었다. 죽기 전에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로또였다"고 말했다.

뉴욕 필하모닉·LA 필하모닉·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등의 러브콜을 받아온 그는 연말과 내년에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12월에는 역사가 깊은 합창단인 멘델스존 코러스에서 '설까치타령'을 초연하고, 부산시향 공연도 예정돼 있다. 내년 2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에서 '바운스'를, 동양인 최초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음악감독이 된 김은선 지휘자가 초청받은 디트로이트 심포니에서 '더부산조'가 연주될 예정이다.

쉬지 않고 작업하는 그의 앞으로의 키워드는 '한국적인 것'이다. "현대음악 작곡가가 이렇게 관심받는 일은 없지 않나 싶어요. 항상 감사하죠. 국악을 하면서 엄청나게 배웠고, 양악(서양음악)에 실험해볼 여지가 많아졌어요. 한국적인 건 국악을 포함해 한국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있죠. 평생 해도 모르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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