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 셔터스톡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 셔터스톡
박상욱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팀장 연세대 토목공학 학사, 덴버대 MBA, 현 한국금융연수원 부동산 겸임교수
박상욱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팀장 연세대 토목공학 학사, 덴버대 MBA, 현 한국금융연수원 부동산 겸임교수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부동산 투자로 단기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투자 성공담을 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아파트나 중소형 빌딩뿐만 아니라 토지 가격도 오르면서 투자자들은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의 토지 투자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소위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성업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최근 YTN의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임야를 이용한 기획부동산 사기로 무려 3000명이 2500억원의 피해를 보았다. 피해자 중 유명 연예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획부동산이 정식 용어는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개발 호재 지역의 부동산 중 각종

개발 제한이 있는 토지를 낮은 가격에 사서, 개발 호재로 개발 제한이 풀려 큰 차익을 볼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불특정 다수에게 되파는 사기 형태를 총칭한다. 이번 하남시 사건이 유명 연예인으로 인해 더욱 부각되었지만, 뉴스를 찾아보면 수많은 피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론에 수시로 노출되는데도 투자자들은 왜 기획부동산의 사기에 걸려드는 걸까.


소액 투자 가능

부동산 투자는 주식 투자와 달리 최소 수억원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거주할 아파트 한 채 분양받는 것 이외에 다른 투자는 엄두도 낼 수가 없다. 부동산 투자 성공담에 자극받아 투자하고 싶어도 높은 투자금 장벽으로 부동산 투자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수천만원으로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고 이후에는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는 투자 상품은 일반 투자자에게 평생의 기회로 생각될 수 있다. 하남시 피해자는 3000명, 피해액은 2500억원. 1인당 투자금이 평균 8000만원 정도다. 유명 연예인처럼 수억원씩 투자한 투자자도 있기 때문에 단지 수천만원을 투자한 투자자도 많을 것이다. 실제 해당 필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본 결과 2000만~3000만원의 투자자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획부동산이 제공하는 투자는 대부분 면적이 큰 부동산을 지분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의 자금 사정에 맞게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 임야를 1㎡당 30만원에 매매했는데, 투자금이 3000만원이면 100㎡를 살 수  있다.


권유자의 집요한 설득⋯높은 판매 수수료

이번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지인이나 친척을 통해 투자를 권유받았다고 한다. ‘설마 저 친구가 나에게 나쁜 거 소개해 주겠어’라는 생각에 투자를 결정한 경우가 많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과거에는 전화 상담을 통한 텔레마케팅에 의존했는데, 최근에는 마케팅 방식도 다양화하는 듯하다. 텔레마케팅이든 지인 마케팅이든 이들이 열심히 해당 부동산을 팔려고 하는 이유는 높은 판매 수수료 때문이다. 매매 금액의 몇십 퍼센트를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보니 기획부동산의 직원이기보다는 개별 사업자 입장으로 집요하게 투자자를 설득하게 된다. 과거에 고객의 요청으로 기획부동산을 접해 볼 기회가 있었다. 투자를 극구 말렸는데도 고객은 한 번만 같이 가보고 결정해 주기를 요청했다. 해당 투자처는 강원도였는데, 현장까지 가는 2시간 동안 좁은 승용차 안에서 전문 상담원으로부터 해당 부동산의 투자 가치에 대해 지속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투자자라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발생한 하남시 기획부동산 사기 사건 투자처 중 한 곳의 ‘토지 이용계획확인원’ 일부. 사진 토지e음
최근 발생한 하남시 기획부동산 사기 사건 투자처 중 한 곳의 ‘토지 이용계획확인원’ 일부. 사진 토지e음

이해하기 어려운 부동산 관련 공적 장부

위 그림은 이번 사건 투자처 중 한 곳의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의 일부다. 부동산에 투자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부동산 관련 서류다. 개발이 가능한 토지인지, 건물은 얼마나 지을 수 있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의 내용을 이 서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에게 이 서류는 해독하기 너무 어려운 암호같이 느껴질 것이다. 부동산 중개인이나 전문 투자자라면 개발제한구역, 공익용산지, 보전산지 등의 단어 중 하나만 있어도 투자를 꺼리겠지만, 일반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상담원의 말을 반박하지 못하고 쉽게 수긍하게 된다.


기획부동산 투자는 꼭 실패로 끝나나

기획부동산에 투자하더라도 나중에 투자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업체가 홍보한 대로 진행된다면, 투자는 성공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로 투자 수익보다는 투자 피해 가능성이 더 크다.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첫 번째는 과도하게 비싼 매수 가격이다. 일반적으로 기획부동산의 판매 가격은 시세의 5~10배 정도다. 이번 하남시 토지의 경우 기획부동산이 2019년 7월에 사서 11월에 일괄 매각했는데, 업체가 산 가격의 5배 정도의 매도 가격으로 판매했다. 투자자는 시세보다 엄청 비싸게 샀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10년이 지나도 투자 원금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번째는 한정된 처분 방식이다. 투자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원활하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분 소유 토지는 매매가 수월하지 않다. 운 좋게 대규모 개발 사업에 수용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각은 요원해진다. 잘 팔리지도 않는 땅을 개발이라도 하려고 한다면, 수십 또는 수백 명에 이르는 공동 지분 투자자들의 전원 동의를 얻어야 한다. 소유권은 대상 소유물을 소유자 마음대로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동 지분 소유권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제한 소유권이다.

사실 기획부동산 사기와 합법적인 토지 투자 컨설팅 업체를 구분하기는 애매하다. 투자가 성공하면 좋은 토지 투자 컨설팅 업체이고, 실패하면 기획부동산인 것이다. 어느 쪽이든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임을 기억해야 한다. 요즘은 시중 은행이나 웬만한 증권사에서 부동산 전문가를 통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 결정 전에 전문가를 통해 해당 부동산에 대한 최소한의 내용은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