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가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아 대출도 나오지 않는 아파트를 샀다는 보도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빚을 떠안고 살아가는 미성년자에 대한 보도는 쉽게 볼 수 없다. 어쩌면 사회의 무관심이 이런 현상을 만든 게 아닐까. 

지난 5일 KBS 1TV <시사 직격>에서는 '상속의 두 얼굴 – 미성년 파산을 아십니까'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부모로부터 빚을 상속받은 생후 27개월의 아이부터 20대 청년의 사례가 소개됐다. 우리와 유사한 상속법 체계를 가진 프랑스 법을 살펴보면서 대안 제시에 나서기도 했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상속의 두 얼굴 – 미성년 파산을 아십니까' 편을 취재한 서재덕 PD를 지난 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시사직격>의 한 장면

<시사직격>의 한 장면 ⓒ KBS

 
다음은 서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신가요.
"일단 섭외하는 게 힘들었거든요. 제가 계속 취재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빚을 진다는 게 죄를 짓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왜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빚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드러내지 않으니까 우리가 알 수도 없고요. 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것은 그분들만의 것으로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미성년자의 빚 상속에 대해 취재하셨잖아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작년에 미성년자의 빚 상속 관련해 대법원판결이 있었어요. 근데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 판결이었어요. 그러다 미성년자의 빚 상속 관련해서 이번에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관련 법안이 올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법안 통과에 조금 힘을 싣고 싶어서 제작하게 됐습니다."

- 생후 27개월 된 은지(가명) 이야기로 방송을 시작하셨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프로그램 제작할 때 시청자로부터 얼마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지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처음에 큰 울림을 주는 신을 배치하는데요. 제가 생각해 봤을 때 2살 은지와 고모할머니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배치했습니다."

- 은지의 경우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의 행방은 모르잖아요. 현재는 고모할머니와 살고 있고요. 고모할머니는 은지의 친권자가 아니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방법이 있긴 있어요. 고모할머니가 후견인 지정을 받아서 은지의 빚 상속을 포기하거나 고모할머니가 법정대리인으로 한정승인을 해주면 돼요. 근데 그 과정이 되게 길고 번거로운 거죠(기자 주 - 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한다고 조건 붙여 상속을 수락하는 것)"

- 빚 상속을 포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네요. 
"상속 포기는 한정승인하는 거에 비해서 간단해요. 상속을 포기하겠다고 법원에 신청하면 돼요. 근데 상속 포기만 하면 이 빚이 다른 상속 순위자에게 넘어갈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한정승인을 하면 안 넘어가거든요. 그래서 한정승인이 상속 포기에 비해서는 좀 더 안전한 거죠."

- 일반 사람들이 한정승인에 대해 잘 알까요? 
"잘 모를 거예요. 저도 이번에 한정승인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게 좀 더 알려질 필요도 있어요."

- 누군가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을 텐데요. 
"맞습니다. 이게 근데 평생에 한 번이나 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걸 경험해 볼 수도 없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순 있죠. 누군가 사망하게 되면 사망신고를 하잖아요. 그러면 구청에서는 사망자 자녀 중에 미성년자가 있는지 알 수 있죠. 그 시스템과 연계하면 되는데 그런 행정서비스가 안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죠."

- 방송에 보니, 현재 관련 법안이 4개 발의돼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내용인가요?
"제일 강력한 건, 미성년자는 무조건 한정승인을 원칙적으로 하자라는 법안이에요. 또 다른 법안은 미성년자가 성년이 될 때 다시 한번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자는 거고요."

- 12살 지호(가명)는 엄마의 사망으로 빚과 재산을 상속받았죠. 방송 보니 아파트 두 채가 있는 것 같은데.
"아파트가 두 채면 걱정 없을 것 같잖아요. 근데 엄마가 암으로 긴 시간 동안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거든요. 엄마가 암으로 투병하시는 동안 일을 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월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런데 서울이 아니다 보니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았어요. 그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갈 건데 경매액이 대출받은 것보다 더 적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 차이만큼 빚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외할머니가 아이에게 빚이 넘어가는 걸 막으려고 절차를 밟고 계신 거고요."

- 그럼 부모가 다 돌아가시면 무조건 후견인을 세워야 하나요?
"민법상 만 19세 이하 미성년자는 법률 행위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걸 법정대리인이 대신 하게 돼요. 그러려면 무조건 후견인이 있어야 돼요. 후견인이 법정대리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면 빚을 인지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해야 하잖아요. 너무 짧은 것 같아요.
"너무 짧죠. 특히 미성년자 경우에는 한정승인 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경우에 따라서는 친권 박탈·후견인 지정·한정승인 기일 연장 등 추가 절차가 더 있거든요.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하죠. 그런데 성인이나 미성년자 똑같이 3개월이 주어지는 거예요."

- 그럼 기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프랑스의 상속법이 우리나라랑 제일 비슷해요. 프랑스도 상속포기·한정승인 절차가 있어요. 근데 프랑스는 그 기간이 3개월이 아니라 10년이에요. 내가 상속 포기 할지 한정승인 할지 10년 동안 생각한 뒤 결정을 하고 진행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한국은 3개월이잖아요. 비교해보면 정말 짧은 거죠. 물론 프랑스와 한국의 상황이 다르니까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겠죠."

- 우리 사회는 미성년 파산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파악을 안 한 걸까요, 못한 걸까요.
"파악을 안한 것 같아요. 왜 안 했냐면 제가 보기에는 이런 일을 겪고 있는 미성년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본 거죠. 그래서 국회는 정부든 신경을 안 쓴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대법원 행정처에서 2016년도부터 2020년까지 파악한 미성년자 파산 신청 건수가 78명이거든요. 파산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파산하지 않고 자력으로 빚을 갚아 나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근데 그 수가 얼마가 되는지 몰라요. 그리고 대부분 부모가 빚을 남기고 사망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자기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부모가 빚을 남겼으면 상속 포기하든지 한정승인 하든지 해서 빚을 안 갚아도 돼요."

- 어린시절 상속된 빚 때문에 꿈도 없이 살아간다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실일 거 같아요.
"보통 20대 사회에 첫발을 내딛잖아요. 그런데 빚을 안고 시작한다면 너무 암울할 것 같아요. 빚에 눌려 꿈 꿀 기회도 못 가질 수도 있고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빚 상속과 관련해 미성년자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 주로 취약계층에서 발생해요. 내 이야기만 아니면 된다는 식은 안 되죠. 우리 사회가 조화롭게 굴러가려면 함께 잘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들의 아픔을 모른 척하면 안 되고 이건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취재했지만 방송에 담지 못한 내용이 있나요?
" 배달 일을 하면서 빚을 갚고 있다는 친구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친구가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자해도 여러 차례 했어요. 그 친구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도움 주신 분들이 계시거든요. 상담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대화도 많이 하면서 도움도 많이 받으셨대요. 지금도 가끔 그곳을 방문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장면을 담지는 않았어요.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도움을 주고 있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항상 주변을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서재덕 시사직격 미성년 빚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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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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