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군영을 떠나다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방현석 2021. 11. 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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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방현석 기자]

   
 
21

잠결에 불려나온 이선엽의 면상에 사정없이 일격을 가했다.
억.
놈의 비명이 입 밖으로 채 기어 나오기 전에 옆구리를 가격했다.
"소리 지르려면 질러. 그 순간에 넌 끝이야."
나는 주저앉은 놈의 목을 틀어쥐고 일으켜 세웠다. 놈은 사색이 되어 파들파들 떨었다. 나는 겁에 질린 놈의 눈을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서워? 죽이진 않을 거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말을 마치자마자, 내 주먹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말의 속도와는 전혀 다르게 여섯 대의 주먹이 순식간에 놈의 가슴과 뱃가죽을 두드렸다. 신음을 토하는 놈의 옆구리를 손끝으로 찔렀다. 이미 부러졌을 갈비뼈의 끝을 파고 들어가는 내 손끝에 놈은 녹아내렸다.

"소리 내면 죽는다고 했다."
여전히 내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먹의 속도와 간격도 늦추었다. 주먹의 강도도 낮추었다.
"나보고 개 같은 놈이라고 했어?"
"잘못했어. 내가 다시는 안 그럴게."
"개 같은 놈이라고 했어, 안 했어?"
나는 발바닥으로 놈의 뺨을 때려주고 싶었다. 돌려차기로 놈의 턱이 돌아가게 뺨을 후려쳤다.

"잘못했어. 네가 아니고 내가 개 같은 놈이야."
"뭐, 네가 개 같은 놈이라고?"
나는 다시 전광석화처럼 네 대의 주먹을 날렸다. 놈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녀석의 표정으로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진 걸 확인했다.
"너같이 나쁜 놈의 개가 세상에 어딨어. 똑바로 말해 이 새끼야. 니가 개 같은 새끼야, 개만도 못한 새끼야?"
"잘못했어, 용서해줘. 난 개만도 못한 새끼야."

이선엽은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내게 빌었다. 약한 자에게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한 놈이었다.
"용서하지. 대신 날 때린 것의 딱 백 분의 일만 맞아라."
나는 놈의 온몸을 자근자근 두드려 나갔다. 급소는 피해가며 주먹의 강도를 조절했다. 죽어버리면 안 되었다. 이선엽이 나를 박민규를 죽인 범인으로 확신하고, 지목하게 만들어야 했다.

나는 곤죽이 되어 널부러진 이선엽을 일으켜 세워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나한테 당한 건 불어도 된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 친구들, 죄 없는 군졸들을 괴롭히는 날에는 내가 반드시 돌아와서 널 죽인다."
이제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하는 이선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대답해 새끼야."
나는 놈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손바닥과 손등으로 두 뺨을 차례로 후려쳤다.
"네."
이제 내게 말을 올리기까지 하는 놈이 가증스러웠다.
"내 말이 빈말인지 박민규를 보면 알게 될 거야."
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된 놈의 눈가에 의문이 번졌다.
"너도 박민규처럼 되지 않으려면 조심해."
나는 놈의 명치를 가격했다. 서너 시간은 깨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반년은 걸어 다니지 못할 것이었다.
사 년의 세월을 묻은 군영을 이렇게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미련은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22

백무아에게 나는 누군가를 죽였으며, 평양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내밀었다. 그녀는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반지 하나 값으론 너무 많은 것 같잖습니까?"
백무아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눈빛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잡히면 끝이니까, 나한텐 아무 쓸데도 없는 돈입니다."
"그래도 이런 큰돈을 줄 땐 그 어떤 요구가 있잖겠습니까. 돈은 반드시 발언을 한단 말입니다."
"지난번에 한 말은 거짓말이었습니까?"
백무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단 말입니까?"
"오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무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누이 사이에 어떤 요구가 왜 필요합니까. 무현 형이 돈을 주면서도 어떤 요구를 내세웠습니까. 지금은 내가 오라버니입니다."

나는 백무아에게서 옥희와 차이경을 느꼈다. 옥희도 차이경도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에 차 있었다. 옥희는 팔려가는 혼인을 피해 도망을 쳤고, 차이경은 이와 서캐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 참형을 당했다. 백무아는 그들과 달리,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녀를 만난 다음부터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백무현을 대신해서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건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는 백무아에게 그녀가 반지를 끼워준 손을 내밀었다.
"오누이가 아니면, 이건 뭐란 말입니까?"
"내 말은 그쪽이 오라버니가 아니라 내가 누나다, 이 말입니다."
내가 반지를 끼워준 손을 마주 내밀어 보이는 백무아를 향해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은반지를 낀 그 손에 돈 보자기를 쥐여주며 부탁했다.

"혹시, 이 돈으로 여유가 있으면 내 고향에 있는 옥남이라는 아이를 데려다 공부를 좀 시켜주세요."
옥희가 부탁하고 떠난 그녀의 동생을 언젠가 챙겨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기회는 내게 영원히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걱정 마시라요. 내 그 에미나이 전도를 하겠단 말입니다."
"옥남이는 여자애가 아니고 사내입니다."
"에미나이거나 머스나거나 그딴 건 상관없단 말입니다."

백무아는 내게 갈 곳을 물었다. 없다고 하는 내게 그녀는 황해도의 조지소(造紙所)를 알려 주었다. 그곳에 믿어도 좋을 사람이 공인으로 일하고 있으니 가서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종이 만드는 조지소를 의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로 총을 만지는 일이나 농사일을 하면 아이 된단 말임다."
백무아는 정말 자신이 누나인 양 영민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보통강 위로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돌아서야 했다.
몇 걸음을 옮겼을까.
"이보라요."
그녀가 불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백무아가 내게 달려왔다.
"팔 한 번 들어보시라요."
나는 영문을 모르고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들었고, 그녀가 나를 안았다.
"이제 그 팔 좀 내려놓으시라요."
내 등을 안은 그녀의 두 팔 바깥으로 나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오누이가 헤어질 때는 누나가 이렇게 안아주는 것이란 말입니다."
파닥파닥 뛰는 그녀의 심장이 명치를 타고 올라와 내 가슴으로 세차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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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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