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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문자를 받은 건 3일 오후 1시쯤.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를 읽으면 010-XXXX-XXXX 이 번호 카톡 추가하고 카톡에 문자 남겨줘"라며 "급하게 부탁이 있어"라는 메시지가 왔다. 보이스피싱이나 메신저피싱 같은 사기 문자라는 직감이 왔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부모가 이런 문자를 받았다면 자녀에게 급한 일이 생긴줄 알고 답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문자에 답해봤다. 기자는 20대 남자다.
'23.5만원' 문화상품권 결제해달라..."엄마, 민증 사진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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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이 고장났다'며 문자를 보내 온 일당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언가 사야 하는데 엄마 명의로 대신 인증을 받아도 되느냐고 물었다./사진=김성진 기자 |
답은 10분 만에 왔다. 일당은 휴대폰을 떨어뜨렸더니 액정이 부서져서 수리를 맡겼고 컴퓨터로 카카오톡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어 "통화가 안되니 여기로 문자만 보내라"고 요구했다. 휴대폰으로 전화는 하지 말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용건은 간단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언가 사야 하는데 '문화상품권'으로 결제하면 30% 할인이 적용되니 문화상품권을 대신 사달라는 것이다. 구체적 금액을 물으니 일당은 "23.5만원"이라고 소수점을 섞어 답했다. '무얼 사려고 하느냐'는 질문에는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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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언가 사야 한다며 신용카드 사진과 주민등록증 사진을 요구했다./사진=김성진 기자 |
이어 각종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일당은 "BC, 기업, 우리, 농협, 롯데, 하나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많이 가능해. 지금 갖고 있는 카드 뭐뭐 있어"라며 신용카드 사진을 요구했다. 카드번호와 카드 뒷면의 CVC 번호를 빼내려는 수법이었다. 주민등록증 사진도 요구했다. 일당은 "회원가입할 때 엄마 개인정보가 필요해"라 문자를 보냈다.
카카오톡 상견례는 여기서 끝냈다. 피해자 개인정보를 빼내는 '피싱 범죄'란 심증이 굳어졌다. 일당이 보낸 메시지는 엄마와의 카톡 치고 건조했다. 10대들이 흔히 쓰는 'ㅋ'(웃음)이나 'ㅜ'도 없었다. "뭘 사는지 알려줘야 결제를 해주지"라며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자 일당은 울음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다. 식상했다. 따로 결제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카카오 친구들' 이모티콘이었다.
"개인정보 절대 제공 마세요...수상한 앱, 절대 깔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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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
메신저 피싱의 유형은 다양하다. 하지만 자녀가 다쳤거나, 급하게 결제할 것이 있다며 고령층을 노린 피싱 범죄가 가장 많다.
범죄 일당은 해외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카오톡이 해외 IP에서 개설된 프로필은 대표 사진에 '붉은 지구본'그림이 표시되고 경고 문구가 뜨게 조처했지만 무용지물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일당들이 국내 VPN(가상 사설망) 업체를 통해 IP를 우회하면 마치 국내 IP를 사용하는 것처럼 속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당이 외국에 있더라도 국제 협력 수사를 통해 검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만으로 사기죄 사건 접수를 할 수 있으니 꼭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자녀 전화번호로 확인 전화를 할 것 △카드 사본, 주민등록증 사진 등을 보내지 말 것을 충고했다.
특히, 일당이 설치하라고 요구한 어플리케이션(앱)을 절대 깔지 말라고 경고한다. 경찰 관계자는 "앱을 설치하면 상대방이 피해자 휴대폰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며 "이를 통해 새 휴대폰을 개통하거나 피해자 계좌의 돈을 가져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앱을 통한 피해는 피해자가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